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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필리핀 여행기

필리핀 북부 여행기 - 필리핀 북부지방의 중심 바기오, 미라를 볼 수 있는 카바얀, 절벽에 매달린 관 사가다, 세계문화유산의 바나웨이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과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비치다. 세부와 보홀은 신혼여행지와 휴가지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최근 각광 받는 필리핀의 팔라완도 아름다운 바다로 인해서다. 내게도 론리플래닛을 펼쳐보기 전에는 필리핀의 여행지란 그런 이미지였다.

 

 바나웨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라이스테라스가 있는 곳이어서 유명하지만 다른지역은 생소하기만 한 지역들이었다. 날 단숨에 사로 잡은 것은 미라였다. 필리핀에 미라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는 당장 여행가방을 꾸린 것이다. 그리고 그 루트에는 절벽에 관을 매달아 놓는 마을도 있었다. 사실 필리핀 북부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비간인데 따로 여행을 갔기 때문에 제외했다. (필리핀에서 찍은 사진 5기가를 분실해서 비간에서 찍은 사진은 없다. )      

 

 루트는 마닐라에서 버스를 타고 바기오-카바얀-사가다-본톡-바나웨이-마닐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론리플래닛에 쓰여있는 버스터미널에 바기오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메트로마닐라 안에서 한참을 헤맨 끝에 출발할 수 있다.

 

 버스가 바기오에 가까워지면 확실히 고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들이 많아지고 기온도 떨어진다.해발 1500미터에 위치해 있어서 연평균기온이 18°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인들의 피서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도시라고 하는데 확실히 숨막히는 마닐라를 벗어나 바기오에 발을 내려놓으면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과 밤이면 쌀쌀함을 느낄 정도다. 긴팔 옷을 챙겨가야한다. 바기오에는 특별하게 볼 것이 없다. 외곽에 뭔가 있다고 했는데 혼자 이동하기는 번거러울 것이 뻔하므로 도심에 있는 여행사에서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시장을 거닐다보면 정말 싱싱한 야채들에 홀딱 빠지게 된다. 열대과일따위는 안중에서 멀어진지 오래인 것이다(우리나라에서 먹는 바나나는 죄다 필리핀산인데 왜 필리핀에서 먹는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 먹는 바나나보다 맛이 없는걸까?! 그리 싸지도 않고 말이다). 결국 싱싱해 보이는 당근 한 봉지를 사와서 깎아먹었다. 맛있어   

 

  

 바기오의 최대 장점은 날씨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어학원들이 바기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숙소는 YMCA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1층은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서 저렴했고 2층은 각방에 화장실이 달려 있어서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 나는 물론 1층을 사용했다. 공용화장실의 문 잠그고 샤워까지 하는 뻔뻔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화장실에 샤워시설이 되어있었기에 한 일이다.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던 바기오에서 떠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약도상으로는 맞는데 푯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주위를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커다란 배낭을 맨 서양인이 다가와 잠시 짐을 맡아주겠냐고 했다. 물론 그러겠다고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인은 그녀와 나 단 둘 뿐이었다. 그녀와 난 같은 버스를 탔고 결국 카바얀에서 투어를 같이 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 얘기는 잠시 미루어두고!! 카바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필리핀 아주머니가 카바얀에 가는 거라면 자기가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필리핀 가정집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솔깃하여 고맙다면서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내리려면 정류장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이었는데 필리핀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우리나라의 동사무소 같은 곳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중 아주머니에게서 온 문자... 그 사람이 못 나온다고... (필리핀은 전화요금이 비싸서 왠만하면 모두 문자를 사용한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는데 정말 가까웠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버스 같이 타고 온 그녀가 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인사했는데 민망하다.   

 

 

 

 

 

 

 

 내가 내린 그 마을에 게스트하우스는 단 한 곳이었기에 이 마을에 있는 여행객은 S와 나 뿐이 것이다. 방은 2층에만 있는데 각 방마다 2층침대 2개씩이 놓여있다. 방에 들어서면 한기가 느껴진다. 화장실에서는 얼음장같은 물이 나오는데 그 물로 씻어야한다. 방안에는 모포가 있지만 밤에는 너무 춥기때문에 충분한 방한용품이 없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추워서 여러번 깼다. 필리핀에서 옷을 여러겹 입고 이불을 덮어쓰고 자는데도 추워서 깨야하다니... 방에 콘센트가 없어 작은 테이블이 있는 복도 끝에 앉아 컴퓨터를 하는데 S가 나왔다. 사실 여기 오는 모든 여행객은 미라를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절대 미라를 볼 수 없다. 그 지역 출신의 가이드를 고용해야한다. 이 마을이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기에 어떻게 가이드를 구하지라고 생각했지만 게스트하우스에 요금표가 적혀있었다. 가이드비용까지 적혀있으니 흥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지방정부에서 공시한 가격이다. 혼자 가이드를 고용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면이 있었는데 S가 함께 가이드를 고용하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S는 일본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휴가기간에 필리핀을 놀러온 것이라는데 전문가 포스의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한국에도 와 본 적이 있다고 하니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밥을 먹을 곳은 게스트하우스 옆에 있는 가게뿐으로 보였다.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난 양의 밥과 닭고기탕?을 주었다. 이것이 시골인심이라는 것인가!!! 밤에 배고파지면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저걸 다 먹었다. 

 

 

 아침에 되니 정말 왠지 원주민 느낌이 나는 가이드가 왔다. 그리고 걷는다. 생각보다 가파른 곳을 오른다. 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그 마을 사람에게 열쇠를 받아드는 가이드 아저씨. 그리고는 철책이 되어 있는 곳의 문을 연다. 관이 놓여있다. 난 사실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근데 가이드 아저씨가 관 뚜껑이 고정되어있는 말뚝을 빼더니 관을 여신다. 저렇게 해맑게 웃으시면서... 그리곤 관을 들어서 앞에 놓고 보여주시기까지 한다. 아... 이 친절하고 끝까지 보여주겠다는 서비스정신... 최...고.

 많은 국가들의 여행지에는 죽은 자들이 만들어낸 문화유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근데 이건 죽은 자 자체가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외국에서 온 낯선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자손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S는 왔던 길을 되돌아 마닐라로 돌아갔다. 나는 산을 넘어서 고속도로로 나가기로 했다. 거기서 사가다와 본톡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길은 힘들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고랭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 트럭 농산물을 실고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태워주었다.  이미 트럭에 탄 사람은 10여명이었고 농산물로 가득차 있었기에 트럭 뒤에 매달려갔지만 이 트럭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걸었을까 싶게 많은 거리가 가 주었고 고속도로와 자신들이 가야할 길의 갈림길에서는 다른 트럭을 픽업해서 태워주기까지 했다. 정말 고마웠던 사람들이다. 안개가 뿌옇게 끼었던 당근밭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을 찍은 사진도 역시나 분실. 고속도로에 도착하면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잡아타면 된다. 여기서 굉장히 초조했다. 정류장에는 나 밖에 없었고 그곳은 산으로 둘러쌓인 곳인데다 해는 1시간 이내로 떨어질 것 같은데 버스는 나를 보고 세워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이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버스가 나타났고 나를 태웠다.

 버스에서는 스무살이라는 여자아이 옆에 앉았는데 그 아이 옆에는 그 아이의 할아버지도 앉아있었다(필리핀의 로컬버스는 한 줄에 3명-통로-2명이 타는 것이 많다). 가는 내내 그 아이와 이야기를 했는데 주제가 좋지 않았다. 주제가 종교였던 것이다. 대다수의 필리핀 사람들은 카톨릭이다. 나도 카톨릭에서 다니엘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종교따위!'라는 마음을 먹은지 10년이나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지는 대화였지만 이해심 많은 아이와 할아버지가 이해해 주신 것 같다. 

 

 사가다는 작은 마을임에도 많은 외국인들과 그들은 위한 숙소, 음식점들이 많다. 20페소에 잘 만들어진 약도를 팔고 있으니 사서 들고 다니면 좋다. 뭐니 뭐니해도 사가다의 가장 큰 포인트는 절벽에 매달려있는 관들이다. 오래된 관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교적 새것처럼 보이는 관도 있었다. 관들이 매달려 있는 절벽도 꽤나 멋드러져있다. 행잉 커핀 이외에 여행객들이 보는 것도 관이다. 동굴 속에 겹겹이 관들이 겹쳐져 쌓여있다. 바카얀에서 미라가 들어있던 관들과 비슷한 관들이 굉장히 많이 쌓여있다. 항상 개방되는 것은 아니고 이것도 이 동물 바로 앞에 사는 집에서 열쇠를 얻어서 열고 들어가야 한다. 물론 직접 열쇠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말하면 나와서 열어주는 시스템이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마닐라에서 대학에 다닌다는 그 집 아이가 열쇠를 들고 앞장을 섰는데 방학을 맞아서 고향에 내려왔다고 한다. 입장료나 도네이션 같은 것은 없다. 서양 여행객 두명도 나와 같이 갔었는데 그들은 보고서 휭 가버렸고 나는 이 번거로운 일을... 단지 그 동굴 앞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해내는 그들에게 미안해져서 도네이션이라면 작은 돈을 건네었다. 작은 돈이라 주기 민망했는데 그것을 뿌리치는데 억지로 주기는 더 민망했다. 그래도 결국 도네이션이라며 주고왔다. 

 

 

 

  

 

 사가다에 가는 버스에서 흘깃 얼굴을 보았던 한국인을 사가다 길거리에서 또 마주쳐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톡과 바나웨이에 같이 가게 되었다. 세부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혼자 여행을 하고 싶어서 오게 되었단다.  

 

 

 본톡에서 구한 게스트하우스는 단돈 100페소! 굉장히 어둡지만 트윈 침대여서 동행과 50페소씩 냈다. 지금까지 사용한 게스트하우스 중에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동행이 있다는 것은 항상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는다.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것을 공유하기에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용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과 혼자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곳을 동행이 있다는 것만으로 갈 수 있기도 하다. 단점은 가고자 하는 곳이 다를 수 있고, 혼자 여행하므로써 만날 수 있는 우연한 현지사람들과의 만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톡 시장에서 씹는 담배를 샀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씹고 길바닥에 뱉어서 시장 길거리는 온통 붉은 색이었다. 그냥 이사람 저사람 다 하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씹으니 술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통이 생겼다.

 

 마닐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 지프니 지붕에 타고 가는 모습이다. 팔라완에 갔을 때는 직접 지프니 지붕에 탈 수도 있었다(그 사진들도 전부 분실... )

 

 본톡 박물관에는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들을 잘 보여준다. 카운터에 안내원도 있어서 설명도 해준다. 바나웨이로 가서 라이스테라스를 볼 예정이었기에 전혀 예정에 없던 본톡의 라이스테라스!!! 일행이 된 K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결국 가게 되었다. 바나우에와 다른 점은 이곳은 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찻길에 나 있는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아래와 같이 논길만을 걸어야 하는 시점이 나온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지점이 걷기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다.  

 

 

 K와 내가 끝이 어딘지 모를 논길을 걷고 있자니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짐을 한가득 들고 논길을 뛰따라 오고 있었다. 나이드신 분들이 무거운 것을 들고 가는 모습이 결국 K와 나는 그들의 짐을 건네받아서 걷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가는 사람들이었다. 꼬불꼬불 좁은 논길을 생각보다 오래 걸어갔다. 저 언덕 너무에도 마을이 있는데 지붕이 전부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것 같아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쌀 저장창고로 보이는 건물들이었다. 마을은 그저 논농사를 짓는 시골마을이었고 왠지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결국 다시 그 논길을 되돌아 나왔다.

 

 논길을 되돌아나와 산길을 거슬러 내려올 때는 이미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차들이 다니지 않았기에 얻어 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K가 있었서 그리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행이 있다는 건 마음 든든한 일이다.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바나웨이에 도착했지만 경외감을 갖게 되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논에 푸르게 벼가 있는 것도, 잘 익은 노란 벼들이 넘실 거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래 있는 논일 수록 오래된 것이고 올라갈 수록 최근에 만들어진 논들이다. 라이스테라스는 2천년전 말레이시아에서 온 이푸가오족이 원주민들의 배척 때문에 산으로 들어가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땅이 없어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수상가옥마을과 비슷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평평한 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결국 산비탈에 논을 만들고 그것도 못 가지는 사람들이 계속 산위로 올라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뷰포인트라는 곳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니 그 모습은 경이롭기 보다는 안쓰러움이 짙어진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느낌이다. 다행이 내가 갔을 때는 논위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작은 다랭이논들이 겹쳐 있어서 기계를 사용할 수 없고 논 하나씩의 높이가 사람 키보다 높은 곳도 있었다. 바나웨이 라이스테라스도 본톡처럼 그 사이로 트레킹이 가능한 논길이 있다. 이 길을 통해서 많은 여행객들이 트레킹을 한다. 농사의 고단함은 세계 어딜가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노동은 그 강도가 남다를 것 같았다.

 

 라이스테라스를 잘 볼 수 있는 곳마다 이렇게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에는 부족민 복장을 한 어르신들이 용돈벌이 위해 서 계신다. 여행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팁을 받는다.

 

 

 

 아름다운 비치만을 보고, 스페인의 400년 식민지 잔재들만 보고서 필리핀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수천년을 이어온 필리피노들의 삶을 들어다봐야 필리핀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