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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철수영희 - 스물아홉의 청춘별곡,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 건 없어

연극 철수영희

 스물아홉의 청춘별곡,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 건 없어

 

 

 철수영희를 봤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 철수와 영희가 오늘 본 연극의 제목이자 두 주인공의 이름이다. 솔직히 그랬나?하는 생각이 든다. 국어 교과서에 그들의 이름이 있었던가? 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랬나보다하지만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두 주인공의 이름이 철수와 영희이고 이 연극의 제목이 <철수영희>인 것은 그들이 이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군이라는 설정 때문이다. 그들의 상황이 그 누군가 겪고 있는, 누군가 갑자기 겪게 되어도 이상 할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은 철수이고 영희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은 나와는 무관한... 뜨거운 청춘이 저물고 보수진영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지나는 자꾸자꾸 흘러 나도 서른 즈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뭔가 엄청난 것이 될 것만 같았지만 어린 시절 보아왔던 평범한 사람, 어쩌면 그 마저도 되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서른이 되면,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건 없다는 걸 깨닫게 돼.

 

 

 아마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마찬가지 일 것만 같아 한숨이 나온다. 지금은 백수이지만 한 때 뜨거웠을 철수가 부럽기까지 한 건 나뿐인가... 철수가 반복하여 고전이라 불리는 영화들의 대사와 감독 이름을 읆조릴 때는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떠올랐다. 이제 서른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벌써 직장 경력이 십여년이 되어가는 영희가 부러운 건... 지금 내가 백수여서 일꺼다.

 

연극 포스터 아래를 보면 알겠지만 이 연극의 협찬은 농심과 진로다. 진로는 수 많은 소주병으로 철수의 수 많은 날들을 현실로부터 도피시켜주면서 등장하는 것이고, <철수영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나나킥이다. 바나나킥은 영희에게 진짜 바나나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대체물로서 가짜 바나나 역할을 하는 대상이 된다. 비록 가짜이지만 진짜보다 더 달콤하고 좋다. 영희에게 진짜는 주환이었지만 바나나가 너무 비싸 넘 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처럼 그는 유부남이 되었기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영희에게는 진짜보다 달콤하고 좋은 철수가 있다. 

 극 초반에 철수는 오징어집(지금까지 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배신감이 >.<)을 먹고 영희는 바나나킥을 먹는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진짜를 가질 수 없는 그들의 위치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오징어와 바나나가 아닌 향만이 첨가된 과자는 그들의 경제적 궁핍을 드러내지만 진짜 오징어와 바나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꿈꾼다. 포기하지 않는다. 바나나를 먹을 수 없다면 사과를 먹으면 될 것을 그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영희는 철수를 선택할 수 없고, 철수는 영화를 포기하지 못 할 것이다.

 철수와 영희는 밀리고 밀려 신월동 옥탑방(현실에서 옥탑방은 싸지 않다 -0-)으로 내몰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다. 한 해 한 해 지나 스물아홉인 철수와 영희는 이십대의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이십대는 없다. 철수에게는 소주가 영희에게는 바나나킥이 그들에게 환상을 제공해주면서 그들을 현실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근근이 잡아주고 있다. 스물 아홉인 그들에게 결혼은 철수의 그녀와 영희의 그를 마음 속에서도 떠나게 해 버리고 그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는 도우미 활동을 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의 대상이다.

 <철수영희>는 마치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두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싼 조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습같다.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가 작품을 빛낸다. 철수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영희가 살고 있지만 다가가기에는 힘들다. 만약 그가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의 관계는 또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성큼 영희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종종 조금은 작위적이고 닭살인 대사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시설이 좋았다. 단지 자리가 출구와는 정반대편이었는데 규모와는 달리 그 부분에 아래로 이어지는 통로가 없어서 내가 앉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두 일어나게 하고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무대디자인이 정말 훌륭했다. 철수와 영희의 방과 그 앞의 옥상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잘 만든 팜플렛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

결국 철수는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 철수가 참여하는 영화가 크랭크인하는 날 영희는 노르웨이로 떠난다. 스물아홉. 결코 어리다고 할 수 없다. 곧 서른이니까. 하지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이보다 적당한 나이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시는 시작 할 용기를 내지 못 할지도 모른다. 철수와 영희의 행운을 빈다.

 

 아, 뒤늦게 생각 난 건데 이 연극에서 비틀즈의 음악이 배경으로 쓰인다는 점... 대.단.한.데? 일본에 있는 광고사는 비틀즈 노래 한 곡 사용했다가 회사가 파산했다. 비틀즈 노래의 저작권의 정말 철저히 관리되어서 영화에서도 원곡은 사용되지 못한다. 리메이크 곡만 사용되어진다. 이 연극의 사용되어진 음악이 리메이크곡이 아니라면... 이 연극의 기획사와 극단이 소송에 휘말린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