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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

 

 사나이 와타나베의 삶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의 세번째가 바로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이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려졌고 흥행이 잘 되서 인지 다음 무대를 위한 감독을 섭외하지 못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캐스팅이 바뀌어 다시 공연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확히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 시즌2>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목과 포스터에서 극이 코믹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삐질이'로서의 와타나베 모습이 극 전체를 대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가볍게 티켓을 구매하게 만들려고 만든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근데... 포스터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즘 공연 포스터들은 참 멋진데 말이야...

 

내가 본 공연은 이준혁(멀티맨), 정은표(와타나베), 정진(박만춘)이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포스터를 보고 저 배우들이 모두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블캐스팅이었다. 꽤 큰 무대인데 단 세명의 배우들이 공연을 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하지만 적은 출연진이 큰 무대를 텅 빈 공간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멀티맨으로 나오는 이준혁은 박만춘(정진 분)의 선배 '공형진'에서 와타나베의 집사와 게이샤로, 결국엔 와타나베를 살해하는 인물로까지 분해서 종횡무진하기 때문에 세명의 출연진때문에 무대가 비어보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는 이 연극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첫 장면은 박찬욱, 김기덕, 임권택 감독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장면을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준다. 공연을 다 본 지금까지도 왜 그 부분이 들어갔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이 정도예요~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하지만 장항준감독님... 감독님의 작품이 그런건 아니잖아요. (아, 미안.)

 

 

 전면 스크린과 오른쪽 구석에 있는 박만춘의 작은 집으로 연극이 시작되어서 매우 이상한(?) 연극이 되는 건가 싶었다. 영상으로 배경을 처리하고 작은 세트와 텅빈공간으로 이루어진 연극말이다. 하지만 박만춘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었고, 암전과 함께 곧 무대 전체를 꽉 채우는 세트가 등장했다. 무대가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루 바닥과 뒤의 창호지창과 창호지창 뒤의 배경(꽃밭), 무대 오른쪽에 작은 세트가 통째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드러나는 욕실과 현관등으로 이루어진 무대가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다. 특히 바닥이 마루바닥으로 되어있는데 그 사이 사이에 흠이 자연스럽게 처리되어있으면서도 그 사이로 (와타나베의 회상씬에서) 빨강조명이 올라오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무대 전체의 울긋불긋하게 꽃밭을 연상시키는 조명은 자연스럽고 장히 예뻤다.

 

 

 와타나베. 그는 제일교포로 야쿠자다. 그의 모습에서 영화 <피와 뼈>의 기타노 타케시가 떠올랐다. <피와 뼈>는 제일교포인 감독(맞나?)에 의해 만들어졌고, 기타노 타케시가 생고기(?)를 씹어먹는 등의 강력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비록 정은표씨가 부드럽고 코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극중 캐릭터인 와타나베는 누가 뭐라해도 극악무도한 야쿠자이기에 그의 모습에서 기타노 타케시가 떠올랐다. 솔직히 이 연극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기타노 다케시다. 그는 많은 영화에서 잔인무도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몇몇 영화에서 코믹한 모습도 함께 보여주었으니까.

 삶에는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다. 그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낸다. 와타나베 역시 그 순간의 선택들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제는 선택의 순간에 놓여지기 보다는 지난 선택이 옳았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와타나베는 자신을 삶을 정리 할 일대기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다. 결국엔 파행을 맞게 되어버리는 영화제작이지만 그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싶지 않았을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온전히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타인에게 말을 할 때, 자신을 보여줄 때... 특히 그것이 자신의 삶 전체를 대변한다면?

 

 

 연극의 마지막 스크린에 와타나베의 삶에서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영화감독이 만든 연극이예요를 말하기 위해서 였을까? 무대가 커서 실제로 보여주어도 되었을 것 같은데(물론 세트의 문제가 있긴 하다) 영상으로 보여준다(그가 선택하고 싶었지만 과거엔 반대로 선택하고 말았던 그 순간을 그의 바람대로 바꾸어 보여준다.) 영화 감독이 연극을 만들었기 때문에 연극만 해 오던 연출가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양한 시도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화계의 거장들이 만드는 연극을 보고 싶어할 것 같다. 나도 김기덕이 만든 연극이라면 꼭 볼 것 같다. 박찬욱도 좋구... 홍상수가 만든 연극은 보고 싶지 않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