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안동 여행의 꽃, 안동 하회마을과 부용대

 

안동 여행의 중심은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 빠진 안동 여행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물 하 河, 돌아갈 회 回를 쓰는 마을의 이름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부용대다.

부용대에 오르면 낙동강이 마을을 굽이쳐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용대는 마을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북애로 불리다가 중국 고사에서 연꽃을 의미하는 부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64미터의 부용대에 오르면 마을이 강에 감사여서 물 위의 연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054-856-3013.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16-2

 

   하회마을 관람료
 어른            개인 3천원     단체 2,500원
 청소년/군경  개인 1,500원  단체 1천원
 어린이         개인 1천원      단체 9백원
 * 안동시민은 1/3 가격
 * 6세 이하 와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은 무료

 

  http://www.hahoe.or.kr/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49-1 번지  ☏ 054-853-4331 

  마을관광안내전화 : 054-852-3588 

  문화관광해설 / 통역안내 : 054-840-6974
  안동하회마을관리사무소 : 054-854-3669

 

 

 

 하회마을에서 바라본 부용대의 모습이다.  몇 해 전에는 이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부용대 절벽에 영사를 하고 물 위에 무대가 설치된 야외공연이었다.

 

 

부용대에서 내려와 병산서원에 들렀다 하회마을로 왔다.

하회마을은 입장료를 내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한다.

 

 

하회마을은 작은 마을이 아니다. 구한말에는 350가구가 살았고 지금도 150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관광안내도에 나와있듯이 1시간 30분 코스, 2시간 코스, 반나절 코스로 되어있다.

우리는 부용대에서 왔기 때문에 2시간 코스로 구경을 했지만 더 오랜시간을 머물렀다.

하회탈춤놀이와 점심으로 고등어구이를 이곳에서 모두 보고 먹었기 때문이다.

 

 

티켓을 끊고 무료 셔틀버스를 탄다. 정말 코 앞이다. 걸어가도 20분정도면 갈 듯 하다.

 

 

 

겨울을 맞아서 초가집을 새로운 노~란 짚으로 올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안동 하회마을이 좋은 것이 민속촌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 것일 거다.

그래서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한 것이겠지.

물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편할 것 같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하기 힘들고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류씨 아저씨가 경운기로 볏단을 실어다가 마당에 옮겨서 쌓어둔다.

오늘 내일 안에 초가 지붕을 덮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왠지 류씨 아저씨~~ 하고 소리 질러보고 싶더라. ㅋㅋ

전부 류씨 아저씨야 ㅋ

 

 

 

과거 양반네들은 글만 읽었을 테고 농사를 짓는 것은 평민과 노비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빙 둘러서 갇힌 동네라 할 만한 곳에서도 신분제에 반발하지 않고 잘 살아갔다는 것은 상상력의 한계 때문일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사회에서는 다른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무엇가가 먼 훗날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겠지?

누군가는 상상했을 지도 모른다. 단지 입 밖으로 그 상상을 뱉어내기에는 세상은 너무 무서운 곳이었을 거다.

 

종일 뙤약볕에서 노동을 하고 초가집에 들어가야 했을 노비는 기와집의 대청마루가 부러웠을까?

아니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까? 근데 이 초가집이 왜 이렇게 생겼남?

 

 

화경당은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사랑채, 큰 사랑채, 사당, 안채, 별당채, 대문가채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화경당은 마을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렸다고 한다. 물론 류씨 집안의 사대부 집이다.

 

 

 마당에 뜬끔없이 담벼락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건 사랑채 문 앞에 세워져서

대가집 여인들이 지나가는 외간남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의 하렘이 떠오르게 한다. 뭐 그것보다는 양반이긴 하다. 이 동네 사는 여자들은 정말 숨 막이 막혔을 것 같다.

동네의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인데 뭐하나 자유롭게 하기도 힘든 마당에 제사도 많고 어른도 많아서 할 일은 완전 많은니.. 

 

 

굳게 닫히 큰 기와집이 있어서 문 틈새로 안을 들어다 보았는데...

볼보 포크레인이 마당에 서 있었다. -_-a

 

 

 

삼신당 신목 주위로 하얀색 소원 종이가 잔뜩 달려있다.

삼신당 신목은 600년전 마을의 정중앙에 류종혜가 심은 나무로 안동 하회마을만큼 오래된 나무다.

거대한 나무는 지난 6백년간 수천, 수만의 소원을 들어왔기 때문인지 아직도 건강하다.

정월대보름 다음날이면 이 신목에서 소원을 빌고 하회탈놀이가 시작된다.

 

 

 

까만 잉크가 수백날동안 시간이 흐르며 증발해버리고 흰 종이만 수천, 수만이 묶여있다.

사라진 소원은 하늘에 접수된 건가? 나무에게 물어도 나무는 답이 없다.

소원을 먹고 자라는 것인지 이제는 소원이 버거운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가 돌아간 어두운 밤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 읽어보고 지우는 것이 이 신목일 지도 모를일이다.

모두가 단 하루 잠깐 이곳을 오고 가는 객일 뿐다.

6백년간 한 자리에 서서 수 많은 사람들의 비슷한 소원을 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그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보물 306호의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다. 입암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고도 부른다.

독특하게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고택이라고 한다.

정남향 집인데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드문 형태라고 한다. 본래 99칸 대저택이었는데 지금은 53칸이 남아있다. 

 

 

충효당은 류성룡의 종택이다. 대문 앞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왔을 때 심은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한옥이 참 예쁘다. 보기에는 예쁜데 살려고 하면 꽤 불편할거다. 환상과 현실은 다르니까.

다음엔 천천히 걷고 다른 각도에서 보며 둘러보고 싶다. 연꽃과 필 적에 혹은 벚꽃이 필 때와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