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를 여행하는 가장 저렴하는 방법은 '자전거'다. 물론 만달레이 주변부에 있는 사가잉과 밍군을 가기 위해서는 배와 버스를 타는 것이 좋지만 다른 볼거리는 모두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다. 밍군을 가기 위한 항구(?)도 자전거로 가고 마하무니 사원, 우베인다리, 만달레이힐, 꾸도더 파야, 만달레이성, 시장도 모두 자전거를 대여해서 다녀왔다. 물론 체력과 시간을 넉넉할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달레이를 한 눈에 보기 위해서는 어떤 고층빌딩에 오르는 것보다 만달레이힐에 오르는 것이 좋다. 만달레이힐은 만달레이 성벽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240미터의 언덕이다. 만달레이의 도시 이름도 사실 이 언덕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만달레이힐은 많은 사원과 수도원으로 유명해서 지난 200년간 미얀마 불교신자들의 순례 장소였다.  정상에는 소원을 성취해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수타웅피아(Sutaungpyei) 파고다가 있다. 일출과 일몰 때 많이 정상으로 오르는데 만달레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달레이힐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쪽, 남동쪽, 서쪽, 북쪽으로 나 있는 saungdan라 불리는 긴 계단을 올라야한다. 편하게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를 이용해서 상당부분 올라가고 그 후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방법도 있어서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도 있다. 난 배낭여행자이므로 차가 갈 수 있는데까지 태워주겠다는 오토바이들을 멀리하고 3~40분의 시간을 더 들여 계단을 올라간다. 올라가는 계단 사이사이에 커다란 불상들이 있어서 다 왔나? 하는 착각으로 희망고문을 준다. 그리고 그 불상 뒤로 이어지는 계단을 보게되면 헛웃음을 짓게된다.



남쪽 입구에는 커다란 흰색 사자가 두마리 서 있는데 신떼(chinthe)라 불린다. 신떼는 이곳 뿐 아니라 미얀마의 많은 사원 입구와 미얀마 지폐에서도 볼 수 있다. 신떼는 사원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거의 대부분 한쌍으로 놓여진다. 대부분 동물의 얼굴이지만 가끔 사람을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한다. 신떼에 얽힌 이야기는 얼핏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 전 공주가 사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을 얻는다. 그 후 사자는 버림받았고 사람들은 그 사자 때문에 겁에 질렸다. 시간이 흐른후 공주의 아들이 그 사자를 죽이게 된다. 그 후 그는 그 사자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그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로 사원 앞에 사자상인 신떼를 세웠다고 한다. 신떼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고 미얀마 왕실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계단을 오르며 만나는 수 많은 불상 중 초반에 만나게 되는 chedawya pagoda


 


미얀마 곳곳에서 이런 물통을 보게 된다. 누구나 여기서 물을 떠 먹을 수 있다. 이 모습이 참 예쁘고 동양스럽다고 느껴지는데 여행자들은 아무도 떠먹지 않고 물을 사먹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기념품과 음료수 가게가 있다. 너무 어울리는 않는 화려한 포토존을 세워두고 사진을 인화해 주는 곳도 있다. 그나마 올라가는 계단에 뚜껑이라도 덮혀있어서 발바닥이 뜨겁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정상의 코 앞에 다다르면 불상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pyilone chamtha pagoda(좌) byardeik paye pagoda(우)


 


과거에 만달레이힐이 더 신성시 되었던 이유는 부처의 뼈 3조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3년 세계 2차대전 중 그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정상에 다다르면 쉐야타(Shweyattaw)라 불리는 부처상이 서 있는데 오른쪽 손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부처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언덕 아래 거대한 도시가 지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풍경이 보이는 곳에 도착! 아~ 정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근데 사람이 너무 없다. 나와 외국인 하나가 전부다. 그곳에서 꽤 시간을 보낸 후에야 'to the top'이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더 올라 갈 곳이 남은 곳이다. 그렇게 더 올라가면 'to the summit'이라는 이정표를 또 발견하게 된다.  


 

myatsawnyinaungpagoda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조각은 오거킹과 그의 군대라고 한다. 오거킹이 태국 만화라는 점이 가장 크게 검색되는데 계속 검색해보니 전설 속의 괴물이다. 근데 오거라는 단어는 프랑스에서 왔다고 한다. 이 오거킹 조각의 모습은 참 태국스럽다. 미얀마의 옆나라고 많은 전쟁과 교류가 있었으니 이상할 건 없긴하다. 잔인하고 무서운 전설 속의 괴물도 결국은 부처에게 무릅 꿇고 그를 위해 산다는 의미일 것 같다. 




만달레이힐 정상에 위치한 수타웅피아 파고다는 수 많은 기둥이 격자 모양으로 세워져 있는 화려한 사원이다. 사방으로 발코니가 나 있어서 만들레이의 한가운데 거대한 녹색의 사각형을 만들고 있는 만들레이성부터 주변의 만들레이 건물들을 볼 수 있고 서쪽으로 2000km에 이르는 이라와디강의 단편을 볼 수 있다. 저 강이 양곤까지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녹색의 평야가 펼쳐지는데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하필 날이 흐려서 제대로 된 일몰을 볼 수는 없었다. 날이 흐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이라 해도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충분히 만달레이힐을 오르는 노력과 시간에 대한 보답을 해준다. 




 


마치 미얀마의 미인상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싶은 석가모니였다. 흰피부에 빨간입술, 얇은 눈썹. 살아생전 부처는 빛나는 보석들이 가득한 왕궁에서 나와 아무것도 없는 길거리로 나왔는데 죽은 후에는 그의 분신들이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공간에 놓여져있다. 뭐~지?




해가 질 때까지 정상에 있다가 내려간다. 아무도 없네. 계단을 이용해서 아래에서 끝까지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만달레이 왕궁


만달레이는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다. 이곳이 이렇게 큰 도시가 된 것은 아마도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콘바운 왕조는 1700년대 중반 얼라웅퍼야에 의해 세워졌고 한때 태국의 아유타야까지 원정을 했을 정도로 크게 확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1800년대말 전세계가 제국주의의 팽창과 전쟁의 소용돌이 휩싸일 때 영국이 만달레이를 공격했다. 그리고 1885년 영국군이 콘바웅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되어버린 시보왕을 포로로 잡으면서 멸망하게된다. 만달레이 왕궁은 콘바웅 왕조가 망하기 불과 24년전에 완성된다. 가로 세로 3km의 거대한 성벽을 가지고 있고 그 주위는 해자로 둘러쌓여있다. 해자의 넓이도 70미터 깊이는 3미터에 달한다. 근데 이건 복원해서 만들어진 해자인가보다. 10년전에 만달레이를 여행한 사람의 사진을 보니 해자가 없더군. 만달레이 왕궁의 입장료는 10달러다. 가이드북에 별 볼거리도 없고 관리도 잘 안되어서 들어갈 필요 없다길래 들어가지 않았다. 왕궁 내부에 군인들이 훈련하는 곳이 있어서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의 발전이 가속화된다면 아마 왕궁을 관광지로 개발하게 되고 150년전 왕궁의 모습을 찾게 되겠지?



해자 주변 길에 비둘기가 어마어마하다!!! 꼬마는 이 비둘기들에 익숙한가보다. 난 너무 많은 비둘기에 소름이 돋았다.


 

 콘바웅 왕조가 영국군에게 패배하면서 만달레이 궁전은 영국군의 군사 주둔지가 되었다. 지금의 미얀마군 주둔도 그때의 모습을 이어오는 건가보다. 우리나라도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 잔재가 남아있으니 미얀마의 이런 모습에 왈가불가하기는 어렵다. 



꾸도더 파고다

1857년 민돈 왕의 명을 받아 승려 2,400명이 동원돼 6개월에 걸쳐 경전이 새겨진 석판이 들어 있는 동일한 크기의 흰색 석탑 729개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전이 만들어진 시기는 콘바웅 왕조가 영국의 침입을 받던 시점이다. 이는 경전이 새겨진 흰 석탑들이 우리의 팔만대장경과 같은 염원에서 만들어진 것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심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자는 것! 하지만 그 염원은 부질없이 무너진다. 만달레이힐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보면 꾸도더 파고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산다무니 파고다와 꾸도더 파고다가 같은 모습으로 마주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맞다면 가운데 사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져있는 것일 듯.



 

사원 안에 작게 만들어진 사원모형이 있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맡겨두는 곳이 있다. 별로 맡기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니 가져오라고 손짓한다. 물론 돈을 내야한다. 둥글둥글 어지러운 미얀마 글로 적힌 석가의 가르침이 가득하다.



동자승 둘이 무술(?)을 하고 있다.



the shrine of the grand patron load of mandalay citadal



미얀마의 부처는 참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는 미소가 매력적인 부처.


 



 


만달레이 풍경


만달레이는 큰 도시답게 굉장히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시장구경이 가장 재밌다. 바구니에 얼음을 가득 산 아주머니는 자전거 탄 아저씨에게 몇 백짯을 주며 집으로 향한다. 밤이 되면 번화가 주변 인도에 노천 레스토랑이 생긴다. 그곳에서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는 하는데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만드는 모기들 때문에 급히 일어선다. 사원 주변에는 새장이 많은데 돈을 주면 방생을 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 새들은 훈련된 것일까? 혹 다시 돌아와 새장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어도 곧 다시 잡혀서 방생용 새장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



 


미얀마에는 태국의 썽태우처럼 트럭을 개조한 이동수단이 많이 눈에 띈다. 안가는 곳 없이 만달레이 곳곳을 다니므로 잘만 이용하면 자전거를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사가잉에 갈 때 4-50분 거리에 500짯을 내고 탔다. 양곤은 시끄럽다는 이유로 고위 군관계자가 오토바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이유가 사실이든 아니든 실제로 거리에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는다. 반면 만달레이는 많은 오토바이가 다닌다. 여행자를 실어나르는 수단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미얀마에서도 축구는 꽤 인기있는 스포츠인 듯하다. 만달레이 버스터미널 앞의 호프집에서는 유럽 프로축구를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보고 있었고 더운 날씨에 미얀마 비어 한병 마시러 들어간 만달레이 시내의 호프집도 의자를 티비 방향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호프집 앞에는 시간대별 경기시간이 적혀있었다. 다 함께 모여 축구를 보기 위함인 듯 하다.



 


만달레이 시장은 소매점 뿐 아니라 도매점들도 많다. 그래서 한가지 과일을 어마어마하게 쌓아두고 파는 가게들도 많이 보인다. 근데 그런 가게는 의외로 중국인이 사장이 경우가 많다. 1980년대에 만달레이에 도시가 전부 타버릴 정도의 불이 났다고 한다. 그 후에 중국 운남성에서 수십만명의 중국 이민자들이 몰려들어서 정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만달레이 인구의 40%가 중국인이라고 한다. 어딜가나 중국인들이 많다. 중국어와 영어만 잘하면 세계 어디서나 대화가 안될 일이 없는 세상.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오는 새련된 대형슈퍼마켓도 있다. 하지만 과일이 거리에서 파는 것보다 상당히 비싼 편이다. 김밥과 김치도 판다!! 한류 열풍 때문에 팔고 있는 것 같다. 여러가지 과일을 섞어서 먹기 좋게 포장해 놓은 것이 저렴하고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자주 사 먹었다.


  

Posted by 어바웃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