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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란저우 여행, 황토고원 위 황하가 흐르는 회색도시


나의 중국여행에서 서쪽으로 달리던 1800km의 길이 끝나는 곳이 란저우다. 란저우 이후로는 남쪽으로 향했다가 동쪽으로 가게된다. 가이드북을 보았을 때 란저우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룻밤을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야간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에 도착했기 때문에 반나절만 돌아다니다가 샤허로 향하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나절 동안 간수성 박물관바이타산 백탑을 보고 바로 버스 터미널에 갈 생각이었다. 그데 기차역 앞에서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1번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았지만 당최보이지 않았다. 결국 기차역 뒤로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여서 그리로 가기로 했다. 물론 케이블카를 타려는 생각은 없다. 케이블카가 있는 것을 보니 유명한 곳이거나 란저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곳을 등산(!)하기 위해서 그리로 향했다.



한참 아이들의 등교시간이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거리에는 아침밥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유독 이 동네에 눈에 띄는 것이 있어서 나도 그것으로 아침을 먹었다. 빵 사이에 여러가지 반찬을 껴주는 것이었다. 반찬은 우리의 나물반찬들이었다. 가격은 5위엔 정도로 저렴하다. 티벳지역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ATM 기기가 별로 없을 거 같아 비록 시티은행이 없었지만 중국은행에 들려서 위엔화를 뽑았다. 한번 오류가 나서 두번째에 뽑았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돈이 두번이 인출되었더라. 다행히 한달 뒤에 다시 입금되었다. 만약 중국 은행의 오류로 입금되지 않았다면 얄짤없이 그냥 떼이고 마는 것이다. 이걸 받자고 다시 란저우에 올 수도 없고 온다고 해도 말이 안통하는데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었겠는가.



기차역 바로 뒤에 있는 산이었는데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산을 돌아 한참을 걸은 후에야 올라갈 수 있었다. 역시나 이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올라서 보니 산 앞의 공원도 상당히 크고 란저우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단지 지평선 너머가 너무 뿌옇다. 그나마 위로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 다행이랄까?! 선명한 시야가 확보되었다면 황무지 같은 산들 사이로 빌딩들이 솟아있는 란저우의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란저우의 이런 날씨는 아무래도 공업도시라는 특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중국 동부에서 한참을 떨어졌는데도 이런 날씨인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중국의 날씨는 티벳으로 향하면 거짓말 처럼 사라진다. 역시 티벳은 중국이 아닌 것이다. 뿌연 하늘 아래 중국여행을 하다가 새파랗고 깨끗한 하늘만으로 티벳은 감동이 된다.



황하강이 시작되는 곳이고 지리적으로는 중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서안만큼의 풍부한 문화자원은 보이지 않지만 란저우는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내가 오른 산도 오래전부터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한글 자료를 찾을 수 없고 그곳에서 본 정보는 중국어로 되어있으니 알 길이 없다.




호랑이와 해태의 머리 장식등에서 보이는 표정과 디테일이 마음에 든다. 



이 산과 그 안의 건물들, 공원에 얽힌 이야기를 알 수 없으니 내게는 그저 동네에 있는 근린공원에 지나지 않는다. 뭐, 이 동네 사람들에게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의 첫 중국여행에서 보았던 공원의 중국인들을 다시 반복해서 볼 뿐이었다. 물로 공원 바닥에 한자를 쓰는 할아버지들, 마치 운동선수처럼 엄청난 내공으로 배드민턴을 치고 제기차기를 하는 어르신들, 걸그룹 뺨치는 칼군무를 선보이는 수 많은 댄스 모임(?)들.




이 동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품들이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같은 소품을 활용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한 그룹은 빨간 스카프, 다른 그룹은 커다란 칼을 들고 춤을 추고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춤을 추는 그룹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소품이 화려해지는 경쟁이 붙어버린 건지 정말 다양한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건 중국을 찾는 외국인의 눈에만 특별히 눈에 띄는 것만은 아닌지 중국인들도 그들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할머니는 사실 커다란 칼을 들고 춤을 춘다. 게다가 고수인지 함께 칼을 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가르침을 준다.



공원에서 내려오니 시내버스 종점인지 많은 버스들이 서 있길래 지도를 보고 바이타산 근처로 가는 버스를 하나 잡아타고 이동했다. 황하강 앞에서 내리니 중산교(중산차오)가 보인다. 1907년에 난주황하철교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는 역사있는 다리다. 차량은 좀 떨어진 다른 다리로 다니고 중산교로는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다. 다리 건너로 바로 산이 하나보이는데 그것이 백탑이 있는 바이타산이다.



바이타산과 그 앞을 흐르는 황하가 새겨져있다. 황하 위에 수차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많은 수차가 즐비한 저곳에 란저우 수차 공원이 있다.  



바이타산에 있는 사원은 특별할 것이 없다. 열흘간 수 없이 보아온 화려한 색을 뽑내는 정형적인 중국 사원으로 보였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천왕이 눈에 띌 뿐이다.



중국은 긴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유물이 많은데 우습게도 그 유물 대신 새로운 것을 만들어놓은 곳도 많다. 바이타산의 많은 건물들도 아마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이타산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바로 백탑이다. 이 백탑은 칭기스칸이 중원을 제패해서 원나라를 세웠을 때 티벳 승려가 몽골에 가서 칭기스칸을 알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 후에 파괴되었는지 현재 세워져 있는 것은 명나라 때인 1450년쯤 세워졌다고 한다. 17미터의 높이에 8각형 모양으로 지어졌다. 독특한 것은 복발식과 누각식이 결함되었다는 것인데 보통은 아랫쪽을 누각식으로 짓는데 이 백탑은 윗쪽을 누각식으로 지어져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탑으로 손에 꼽힌다고 한다.



란저우 백탑의 아름다운은 아래의 둥그런 부분과 윗부분의 조화인데 아랫부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니 아예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지금 보수 작업이 한창이어서 멀리서 봐야만 했다.



란저우가 날씨만 티벳처럼 새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를 갖는다면 특별한 것이 없어도 지리적 위치 때문에 머무르기에 꽤 괜찮은 도시일 지도 모르겠다. 5500km를 흘러 우리의 황해까지 흐르는 황하를 끼고 있는 도시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맛있는 커피와 란저우 라면을 파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을 오르고 헤맨 시간이 길어서 이미 점심 때가 되었다. 이제 슬슬 란저우를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터미널로 가서 샤허행 티켓을 샀다. 버스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아서 다시 터미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무슬림 시장으로 갔다. 골목골목 다양한 물건을 파는 큰 시장으로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다.  



란저우가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중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보니 다양한 민족 분포를 보인다. 장사를 하는 여인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독특한 모자 하나하나가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신선한 과일을 먹고 싶지만 과일은 먼 남부지방에서 가져오는지 전혀 싸지 않다.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직접 만드는 수제 요거트 하나를 거리에 앉아 먹고 거리를 헤매다가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란저우 라면을 한그릇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란저우에서 가고 싶은 곳이 한 곳 있었다. 빙링사석굴이었다. 근데 접근성이 너무 안좋았다. 란저우에서 하루에 갔다오기도 힘든데다가 과연 이 길을 혼자 갔다올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드는 비용도 적지 않고... 버스를 타고 2시간 반을 가서 그곳에서 보트를 또 갈아타야했다. 게다가 조각들 하나하나 닫혀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중국은 넓고 볼 것은 많으니 이렇게 어렵게 가지 않아도 볼 것은 많다는 위안을 가지며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나 여행이 끝나고 나면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 가지 않아서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