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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중국 청두 무후사, 제갈량과 유비의 사당 그리고 촉한의 영웅들


무후사는 제갈량의 시호인 '무후'에서 온 말이다. 즉, 이곳은 제갈량의 사당이다. 동시에 유비의 사당이기도 하며 유비의 묘 혜릉이 있기도 하다. 촉한의 영웅들 동상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기도 하다. 무후사는 청두가 촉한의 수도였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 이미 중국 곳곳에 무후사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앞에서 이곳에 유비의 무덤도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촉한의 수도였던 청두와 함께 충칭시 펑제, 사천성 메이산 펑산현 이렇게 3곳이 유비가 묻힌 곳으로 거론된다.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가 청두에 묻히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그는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가 죽은 곳이 청두와 너무 먼 거리였기에 근처에 묻었다는 것이다. 유비의 무덤 찾기는 계속되고 있는데 2009년 조조의 무덤이 발견된 허난성의 시가오쉐촌이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되자 더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황제인 유비의 사당이나 무덤이 아닌 제갈량의 사당으로 더 널리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은 중국인들이 그를 더 높게 쳐 주기 때문이다. 황제인 유비보다 그 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했던 제갈량이 단지 황제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을 뿐 이라고 보는 것 같다.



무후사는 중국에 있는 삼국시대 관련 유적지 중 최대라고 하는데 1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주 건물은 1672년에 세워졌다. 무후사 들어가는 입구 양쪽으로 오른쪽에는 문신 14명, 왼쪽으로 무신 14명이 서 있는 것을 비록해서 촉한의 주요인물 50구의 동상이 무후사에 있다. 삼국지를 재밌게 읽고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무후사에서의 시간이 더 즐거울 수 있다. 


▲ 809년 당나라 때 세워진 당비와 그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1547년 세워진 명비



한국에서도 청두와 구채구를 묶어 놓은 중국 패키지 여행 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한국 사람들도 꽤 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유물에 한글 설명도 함께 표시되어 있어 관람하기가 편하다.



어렸을 때 삼국지를 읽은 적이 있었다. 10권이 넘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른다. 수 많은 동상들을 보며 떠오르는 장면이나 스토리가 없는 것이다. 

정기(?~222년). 자는 계연으로 파서량중에서 태어났다. 유비를 따라 오나라를 토벌하였는데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정기의 석상은 청나라 도광 29년(1849)에 세워진 것이다. 마량(187~222년). 자는 계상으로 상양의성에서 태어났다. 마속의 형으로 재능이 뛰어난 자로 높은 명성을 날렸다. 오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받아 손권의 존경을 받았으며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하면서 마량은 오계만과의 연락을 책임졌다. 유비가 패배하면서 전사하였다. 마량의 석상은 청나라 도광 29년(1840년)에 세워진 것이다. 동윤(?~246년). 자는 휴소로 동화의 아들이다. 정직한 자로 아첨하지 않으며 유선이 첩을 더 두고자 하니 그는 여러번 말렸다. 후세들은 동윤을 제갈량, 장완, 비의 등과 함께 "4영"이라 불렀다. 동윤의 석상은 청나라 강희 11년(1672년)에 세워진 것이다.



유비(161~223년). 자는 현덕으로 탁군 탁현에서 태어났다. 한나라 말기에 군대를 이끌고 중원지역에서 주둥하였다가 221년에 청두에서 황제자리에 올랐다. 오나라를 토벌하다가 실패하여 백제성에서 사망하였다. 유비의 석상은 청나라 강희 11년(1672년)에 세워진 것이다.

관우(?~219년). 자는 운장으로 하동해에서 태어났다. 유비를 따라 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높은 명성을 떨쳤다. 그후 손오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명나라 시기에 관우를 '관제'로 높게 모셨다. 관우의 석상은 청나라 건륭 53년(1788년)에 세워진 것이다. 관우의 석상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동상들의 배치에서도 제갈량이 가장 떠받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제갈량과 그의 자손들. 제갈량(181~234년) 자는 공명으로 랑사양도에서 태어났다. 유비의 세차례 간곡한 요청을 받고 오나라와 같이 손잡고 조조에 대항하였으며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었는데 현명한 재상으로 후세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234년에 위나라를 토벌하던 전쟁터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섬서 면현 정군산에 매장되었다. 제갈량의 석상은 청나라 강희 11년(1672년)에 세워진 것이다. 동상들은 모두 유리관 안에 넣어 두었는데 모두 뽀얀 먼지를 온 몸에 덮고 있다. 오래된 유물이어서 청소가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삼의묘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삼결의를 기념하는 사찰로 전에는 제독가에 위치해 있었으나 삼의사로 불리우기도 한다. 청나라 강희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청두시 시급 문화재 보호 대상지다. 중국인들에게도 무려 2천년 전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영웅시 되는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때문이겠지? 당시 시대상이 워낙 드라마틱하고 인물들이 매력적이기도 했겠지만 나관중의 글에 수십억의 사람들이 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후사는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물론 산책 하기에는 무척 비싼 곳이다.

입장료 : 60위엔

운영시간 : 8am ~ 18pm


여름에는 밤에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마 2014년 여름에도 나이트 투어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무후사(wuhou shrine) 나이트 투어

2013년 7월 1일 ~ 10월 7일

18:00~21:00 (마지막 입장 20시 30분)

http://www.wuhouci.net.cn





무후사 내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문화박물관에서는 재밌는 토기들을 구경할 수 있다. 왼쪽에 보이는 토기가 대표 토기인 듯 다른 곳에서도 이 익살맞은 토기의 모형이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특별전을 하는 전시실에서는 청나라 때의 의복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보았다면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흔히 생각되는 화려한 옷들과 의외로 소박한 옷들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