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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중국 시디춘, 흑백의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 마을


 시디마을(시디춘 西遞村)은 홍춘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황산 근처에 있어서 턴시와 황산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왠만하면 들르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턴시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데 홍춘은 20~30분쯤 더 가야한다. 시디마을에 가는 버스도 특정시간 1시간마다 있기 때문에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창 밖으로 시디춘과 홍춘에 있는 건물들과 같은 집들이 많이 눈에 띈다. 시디춘과 홍춘은 마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게 되는 것 같다. 주변의 다른 마을들도 오래되고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는데 단지 규모가 조금 작은 것 같다. 홍춘과 시디춘 또한 닮아 있기 때문에 대부분 둘 중에 한 곳만 다녀오게 된다. 특히 홍춘을 많이 가는데 반달 모양의 연못이 있어서 그곳에 비치는 마을의 모습, 와호장룡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욕심 같아서는 홍춘과 시디춘에 모두 가고 싶은데 내게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입장료가 비싸다. 패키지 티켓이 아니라 각각 104위엔을 내야한다. 홍춘은 붐빌 것 같아 시디춘으로 향했다.


 시디춘에 도착하니 왠 학생들이 수백명 보인다. 모두 스케치북과 캔버스를 하나씩 들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온 것이다. 마을 곳곳, 풍경 좋은 곳이면 학생들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오랜 시간 풍경을 그려나가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치며 사진을 한 장 찍고 지나갈 뿐이다. 시디춘은 송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마을이다. 명나라 때 후씨 일가의 장사가 크게 성공하면서 크게 확장되었고 청나라때는 600가구에 이르기 까지 팽창했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만들어진 200개의 주택들 사이로 수 많은 골목이 이어져 있다. 사실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모든 건물이 일제히 한 시대에 지어졌지 수백년 차이가 날 것 보이지 않는다. 그건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얀색의 외벽과 검은 지붕으로 마을 전체가 일관된 색상을 가졌기 때문이다.중국 여행이 길어지면서 보이는 건물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마을이나 골목들도 큰 감흥이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만난 시디춘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가 방콕의 로하 쁘라삿을 좋아하는 이유도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태국의 현란한 건물들에 질릴 때 만난 로하 쁘라삿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시디춘도 마찬가지다. 단조로운 색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패방을 지나면 왼쪽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주마루다. 능운각이라고도 불리며 청나라 건륭(1787년)에 세워졌으며 명경 호씨의 24대 선조이자 강남 6대 부호 중 한 사람인 호관삼이 3대 왕조의 원로재상이었던 사돈 조진용을 모시기 위하여 세웠다. 모든 건물은 아니지만 많은 건물들 앞에 안내판이 서 있는데 그 안내판이 서 있는 건물들에게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해도 들어가도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비싼 입장료는 상당부분 여행자들로 인해 불편을 겪는데다가 마음대로 개조 따위 할 수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안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장사치들의 극성 따위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척일테고 마을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비싼 입장료를 계속 받기를 원할테니... 이들의 경쟁 상대는 홍춘이겠다.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집 앞에 나와 앉아있는 주민들이 꽤 있다. 아예 문 옆에 돌의자가 만들어져있기도 하다. 그저 집안이 답답해서 밖에 나와 있는 거겠지만 그 풍경이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속촌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래된 마을은 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독특한 향기와 이질감이 존재한다.




누군가 놓고간 팔레트와 돌이 놓여져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솟아나 버린 가지. 하루 중 햇볕 드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열심히 햇빛이 드는 곳으로 향해 가는 담쟁이. 



커다란 항아리들이 가득한 가게. 밤 늦도록 시디춘 골목에 나와 앉아 항아리 하나 바닥 날 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건히 취해가는 마을 사람들이 그려진다.




사람들이 오가던 문은 어느날 단단한 콘크리트로 막혀버리고...




마을도 예쁘고 집들도, 골목길도, 느릿느릿한 고양이와 사람들도 좋다. 겉모습은 좋아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살짝 열린 문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꽤나 짙은 어둠이다. 조명을 켜 두어도 그리 밝지는 않다. 시디춘에 산다면 앞에서 봤던 동네 사람들처럼 골목길에 나와 앉아있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골목을 돌아 또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려는데 어느 집 앞에 여자가 서서 가슴을 치면서 울고 있었다. 메인(?) 골목 길이 아닌 골목들은 길이 좋아서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피하며 걸어야 한다. 그녀를 가슴 아프게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여행자의 호기심은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골목길로 향했다.






서원. 청나라 도광 4년(1824년)에 세워졌으며 원래 4품관 이자 하남개봉의 부지사인 호문조의 생가로 대문은 벽돌로 이루어진 팔자형의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내부의 주택은 3개이고 3개의 현관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원은 전형적인 수저우 조경식 건축방식. 서원 안에 있는 석조 공예품이나 비석 등은 서체촌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진귀한 문화재이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넓은 정원이 보였다. 이런 곳도 있네 하고 보니 '시디 트래블 롯지'라는 푯말이 보인다.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따로 지어진 것은 아니고 기존의 건물을 호텔로 이용하는 것일텐데 참 괜찮은 곳을 숙소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턴시에 이틀치 숙박비를 내고 짐을 놓고 오지 않았다면 이 곳에 하룻밤 머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디춘의 밤은 또 얼마나 낭만적이겠는가.



앙고당. 명나라 만력년간(1600년)에 세워졌으며 3층 건물로 꼭대기에 올라가면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지금은 식당과 호텔로 이용되는 것 같다. 앙고당이 아니어도 건물의 옥상에 오르면 마을 풍경이 보이는 곳이 몇 군데 되는 것 같다. 골목을 걷다보면 자기 집 옥상에 올라가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물론 유료. 10위엔을 내면 된다고 한다. 근데 그리 건물이 높아보이지 않아서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마을 옆 산에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어서 그리고 향하기로 했다.



응복당. 청나라 강희 3년(1664년)에 세워졌으며 명경 호씨 25대 선조이며 종 2품 호부상서를 지낸. 호여천의 생가인 동시에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큰 대문과 끝이 올라간 처마, 정방형의 기둥, 달처럼 둥근 마룻대 등 그 조각 하나하나의 섬세함과 웅대함이 있어 보통 관료의 저택과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조상대대로 계속 집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들어가자 안에서 먹고 있던 밥 그룻을 가지고 나와서 마당에 앉아서 먹었다. 




이복당. 청나라 강희 23년(1684년)에 지어졌으며 서체촌 중에서도 전형적인 학자풍 저택으로 대청의 장식이 독특하며 대청에 여러 대련이 많이 붙여져 있는데 그 글귀가 철학적이고 그 내포된 뜻도 깊어서 서체의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추모당. 청나라 건륭 59년(1794년)에 세워졌으며 명경호씨 24대 선조 호관삼이 일생 동안 문학과 의리를 숭배하고 선행을 베풀었던 조부 병배공과 부친 응해공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내부에는 이 세 명의 초상화와 동상이 모셔져 있다.



벽에 새겨진 이 그림들에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을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은 이 그림의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을까? 외국인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마을 옆 산에 오르면 정자가 나온다. 처음부터 여행자들에게 마을 전경을 보라고 지어놓은 것이다. 시디춘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강추. 







턴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홍춘에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가 왔는데 가득찼단다. 서서라고 가겠다니까 안된단다. 다음 차를 타라고 한다. 아... 버스는 1시간에 한대씩 다닌다. 다음 차가 full이 아니라는 장담은 있는 것인가? 게다가 4시쯤이 마지막 버스인데 이걸 어쩌지. 택시 기사는 계속 나를 꼬신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중국인 부부와 함께 타란다. 버스비의 2배 정도를 제시한다. 나쁘지 않다. 근데 이 부부가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면 나도 기다릴 수 밖에. 한 시간을 기다리면서 도시 바깥 도로를 걸어다니는데 그 길에도 입구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 것 같다.  이 길로 오가면 공짜다!!! 그래서 티켓 오피스를 이용하라는 표지판도 붙여 놓았다. 내가 이 길로 가자 어느 순간 누군가 멀찍이에서 쫓아온다. 내가 돈 안내고 들어가는 감시하는 듯... 그렇게 한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버스에 자리가 있어서 턴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배를 움켜잡으며 가야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