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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거제 여행] 칠천량해전공원, 다크투어리즘의 명소



 영화 '명량'이 1700만명의 관객수를 돌파하며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오로지 13척의 배만으로 전투에 나서야했던 이유가 거제도 칠전도에 있다. 이번 거제 여행에서 찾아간 칠전도에 위치한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은 칠천량 해전에 대해 그 어느 곳에서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전시관이다. 역사에서 기억되어야할 것은 승리만이 아니다. 패배도 기억되어야 한다.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해전은 모두 이순신 장군 덕분이고 끔찍하게 져버린 칠천량 해전은 원균 장군 때문으로 이분법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칠천량 전투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원균 장군에 대한 불만이 워낙 많이 쓰여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원균 장군이 처한 상황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런 오해는 쉽게 풀릴 것이다. 칠천량해전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당장 거제의 칠전도로 떠나자.





관람시간   09:00 ~ 18:00

휴관일      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관람요금   어른 2천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천원


홈페이지 http://www.chilcheonryang.or.kr/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칠천로 265-39

전화번호 055-639-8250





 칠천량해전공원은 다크투어리즘의 명소로 떠오르고 그 동안 국내의 다크투어리즘 장소는 제주 4.3평화공원,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거제에 있는 거제 포로수용소가 대표적인 곳이었다. 다크투어리즘이라고 하면 과거에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곳들을 사람들이 찾고 그것을 기억하는 여행을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크투어리즘의 장소들로 꼽히는 곳을 여행하는 것은 그 어떤 곳을 여행하는 것도 강렬한 인상을 가지게 된다. 제주의 4.3 평화공원, 서대문 형무소, 거제 포로수용소, 난징 학살 공원 등 그 동안 여행 했던 다크투어리즘 장소들은 함께 여행 했던 주변의 다른 장소보다 더 오래 인상적으로 기억되어지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다크투어리즘 장소들은 많다. 지난 2013년 영국 텔레그래프 발표 세계 다크 투어리즘 장소 10곳을 언급하면 


1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25년 이상 버려진 도시 프리피야트

2위 말도 되지 않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백만명을 학살한 캄보디아 킬링필드

3위 9.11 테러가 일어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4위 우리의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지난 2012년 침몰한 이탈리아의 초대형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5위 나치에 의한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 장소였던 아우슈비츠

6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이었던 카트리나가 덮친 뉴올리언스

7위 뉴스에서 소식을 들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지난 2010년 폭발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8위 최초의 원폭 투하장소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9위 26년간 7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스리랑카 내전 유적지

10위 베트남 전쟁 중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있었던 베트남 밀라이


 국내에 다크투어리즘 장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잔혹한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승리와 영광, 기쁨의 순간들만이 기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좌절했던 순간, 끔찍했던 장소들도 기억되어야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좌)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을 거라고 예상되는 칠천교 주변 (우) 칠천량해전공원에서 바라본 바다


 칠천량해전공원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전시품이 있다. 황연환 작가의 평화의 바다라는 작품은 칠전도 언덕에서 평화롭게 바다를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형상을 통해 과거 참혹한 전쟁 속에 왜적과 맞서 장렬하게 전사했던 조선 수군들을 추모하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이 땅에 다시는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린 아이를 평화의 메신저로 의미화하여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의 전시물들도 흥미롭지만 칠천량 전투의 전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영상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20분간 상영되는 3D 영상은 도치라는 노비가 전쟁에 나갔다오면 면천을 시켜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군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의 아이만은 노비로서 살아가게 만들고 싶지 않은, 도치와 같은 이들이 전쟁에 나섰다. 조선의 백성에게 전쟁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의 입장에서 그려진 영상이어서 더 흥미로웠다.


아이라이너 상영시간(약 20분) 10:30, 11:30, 13:00, 14:00, 15:00, 16:00, 17:00





 원균 장군의 적은 일본군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선조 또한 적과 다를 바 없었다. 아쉬운 점은 원균은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면 왕의 말을 거역할만큼 강단이 센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음을 조선군과 일본군 모두 직감하고 있었다.






 도치에게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기도 한 칠복이라는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칠천량 전투에서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일로 그는 각성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된다.





 도치가 주인공이어서 일까? 일본 병졸이 아닌 일본 장수와 도치가 싸우고 결국 일본 장수를 무찌른다. 하지만 일본군에게는 조총이 있다. 근접전에서는 일본군은 이기기 어려운 상대다. 이순신 장군도 일본군과의 근접전은 최대한 피하지 않았던가. 결국 도치는 총알에 맞아 죽고 만다.





 상영관 입구에는 도치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당시에는 도치처럼 지원을 해서 군인이 된 이들도 있었지만 병력이 부족했던 조선 수군은 젊은 남자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병력을 보충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3층 구조로 된 거북선 내부를 엿보는 것은 조선 수군의 삶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흔들리는 배속에서 먹고 자고 싸웠던 이들. 일상을 살아가고 죽음도 맞이해야 했던 배. 그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을까.





 하나의 전투를 두고 이렇게 다이나믹한 전시물들을 만들어 내었다는게 흥미롭다. 모형 또한 단순히 당시의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에서 벗어나 소리와 조명이 변화하면서 조금이나마 전쟁 당시의 그 장소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준다.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 정면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로비에 있는 추모의 불이다. 1만명의 조선 수군이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들의 영혼은 전쟁이 끝나고 오늘도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후손들을 보면서 편히 하늘로 올라갔을까? 그들을 달래는 불이 밤낮으로 불탄다.





 단층의 작은 전시관이지만 굉장히 알찬 전시관이어서 트릭아트 그림도 있다. 도치가 되어보는 체험존이라고 하는데 조선 수군의 옷을 갈아입고 그림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칠천량 해전의 수장_원균의 딜레마와 위기

원균(1540~1597)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뒤 수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라는 선조의 명을 받게 되었다. 원균도 통제사가 되기 전에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 수군이 단독으로 바다에 나아가 일본군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원균은 통제사가 되고 난 뒤 수군 단독으로 일본군을 제압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균은 조선 육군을 동원하여 앞세우고 수군이 그 뒤를 따라 진격하자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선조는 원균에게 계속 수군이 단돈으로 나아가 싸울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원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아갔으며, 칠천량의 패전은 그렇게 비롯되었다. 게다가 원균은 이순신에 비해서 수군 생활이 턱 없이 짧았다. 그는 육군 장수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조선 수군이 1만여명이 사망하고 160여척의 배가 침몰한 곳. 하늘도 꾸물꾸물하기만 하다.





 칠천량해전공원 앞에는 오토캠핑장이 있고 근처에는 해수욕장도 있다. 아직도 군사적 요충지인지 전시되어지는 것인지 모를 군함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