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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부산 동구 곳곳을 누벼라] 시간이 쉬어가는 매축지마을



 시간은 상대적이다. 모두가 각자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다른데 그것은 종종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허허벌판에 낮은 주택이 들어서고 그 주택들을 밀고 낮은 빌딩들이 세워지더니 언젠부터는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는 곳이 있는가하면 수십년, 수백년 넘는 시간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있는 곳도 있다. 부산 동구의 매축지마을은 평평한 넒은 마을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은 흔히 산동네라도 말하는 비탈진 곳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평평하다. 그것은 이 마을의 이름과 직결되어있다. 매축지란 바닷가나 강가 등에 있는 우묵한 곳을 흙으로 메워 만든 땅을 말한다. 부산 동구의 매축지 마을은 부산에 남은 마지막 매축지 마을이다. 바닷가나 강가 주위에 있다면 교통과 경치가 좋을 것이고 게다가 평평하다면 개발하기 더할 나위 없으니 매축지 마을이 남아있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곳은 그 오랜 시간을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좌천역 4번 출구로 나와 직진




 범일동에 자리하고 있는 매축지 마을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해안 주변에 평지가 없자 만들어졌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매축지 마을은 당시에는 부두에서 내린 마부와 말, 짐꾼들이 쉬어가던 곳이었다. 독립을 한 후에는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갈 곳 없는 이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 동안에는 피난민들이 몰려왔고 70,80년대에는 시골에서 대도시로 몰려온 가난한 농민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매축지 마을에 함께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지금은 미군 부대, 고가도로, 부두, 철길에 둘러쌓인 도심 속 섬이 되었다.





 매축지마을의 낡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앞에 서 있는 영화포스터 때문이다. 영화 '아저씨' 전당포 장면이 촬영된 곳이 이 건물인가보다. 시간이 멈춰버린 매축지마을은 이제 다른 곳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모습을 간직하게 되어서 많은 영화들의 촬영장소가 되었다. 영화 아저씨, 하류인생, 친구, 마더 등이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고 골목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매축지마을의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정말 많은 사진을 찍게 된다.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곳이 매축지마을이다. 벽화로 꾸며진 공간들이 곳곳에 있지만 그와 함께 삶의 날것이 그대로 전시되어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된다. 물론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공간이므로 소란을 피우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20세기초 항구에서 물건을 옮기는 것은 말들의 역할이었고 이곳에는 많은 말들이 키워졌다. 그래서 독립 후에는 말들이 살던 마굿간을 개조해 여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으며, 지금도 마굿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가옥이 남아있다.




 매축지마을로 향할 때만해도 작은 마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매축지마을은 굉장히 큰 마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가게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 가게들도 이 마을과 잘 어울리는 작고 허름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보림연탄판매소의 문을 드르르 열면 연탄이 가득 쌓여있을거다. 연우수리점에 들어가면 왠지 100년은 되었을 것 같은 전축이 한 구석에서 자신이 고쳐질 차례를 20년째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내부 구조가 어떻게 생겼을까 너무나 궁금한 집들이 많았다. 물론 그것은 호기심으로 그쳐야 한다. 그리고 상상을 하면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즐겁다.






허름한 건물들로 가득찬 마을이지만 계획도시처럼 큰 길과 좁은 길이 바둑판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작은 시장도 있다!!





 마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매축지 문화원은 지난 3월 리모델링 후 개관했다. 매축지 마을의 역사, 마을에 얽힌 이야기등을 알 수 있는 곳으로 마을 해설사도 있어서 매축지 마을을 탐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매축지 마을은 고양이들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래서 해질녘 골목 사이를 누비는 고양이들이 눈에 띌 때마다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부산 동구 곳곳을 누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