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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대전 원도심은 진화하고 있다



 대전원도심은 대전의 오랜 도심으로서 많은 부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옛 모습이 화려하게 변신하거나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속은 완전히 새로워져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곳들도 곳곳에 생겨났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대전원도심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으로 이어지는 길에 놓여진 목척교는 그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하나의 다리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척교는 대전 원도심의 역사와 그 시간을 함께해와서 상징적인 다리다. 물론 현재의 멋진 다리는 지난 2009년 새롭게 놓여진 것이다. 대전 시민의 애환과 추억이 서려있는 목척교가 사라진 지 35년 만에 2009년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100여 년 전 지금의 목척교 자리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이 징검다리를 오가던 새우젓 장사가 세워놓은 지게가 마치 나무로 만든 자의 눈금과 같다고 하여 목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마을이름 목척리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후 1912년 4월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폭 3간, 길이 38간의 나무다리로 축조되었고 대전교라 불이었다. 





 1932년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긴 후 중앙로가 확장되면서 대전교는 콘크리트교량으로 건설 되었고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대전교의 명칭도 자연스럽게 목척교로 바뀌었다. 6.25전쟁 중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피난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목척교는 애환의 다리로 전국 유명세를 탔다. 당시 유명가수인안다성의 '못잊을 대전의 밤'이란 노래 무대이기도 했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겪으면서 대전천은 오폐수로 인해 생태계가 죽어가고 하천이 메말라서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음의 하천으로 변해갔다. 1974년 하천이 복개되면서 목척교는 다리로서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정감 어린 옛 모습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하천, 홍수 및 가뭄 피해가 없는 하천, 언제나 찾고 싶은 하천으로 복원하고자 복개건축물인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철거하고 현재 모습의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목척교 아래 놓여진 아래 기둥은 1974년부터 2009년까지 존치되어 있던 옛 홍명상가 및 중앙데파트의 복개구조물 교각 총 461개 중의 1개로 홍명상가 철거시 남겨둔 기둥이라고 한다.





 현재의 목척교는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확실이 낮보다는 밤에 조명이 들어왔을 때가 더 예쁜 것 같다. 스카이로드와 함께 밤에 대전 원도심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목척교 수변광장에서는 금,토,일에 공연을 하기도 한다.






 대전 원도심 여행의 시작은 대전역이다. 작은 시골이었던 대전이 현재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된 지점이기도 하다. KTX를 타면 서울역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아 하루가 꽉 찬 당일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대전역 앞에는 [대전부르스 꽃시계]와 [대전사랑 추억의 노래비]가 있다. 대전시는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한민국의 중심 사통팔달의 교통과 과학의 도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과거 이곳에 있었던 시계탑이 시민들로부터 만남과 약속의 장소로 사랑받았던 옛 추엇이 있어 시민정서를 담아 꽃시계를 설치하였다. 꽃시계 주위를 도는 사랑열차는 우리나라에 처음도입되었던 증기기관차와 유사한 모델인 미국 허드슨기관차로써 실물크기의 1/32 크기로 축소제작(레일길이 약 75m)하여 꽃시계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시민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하여 준다는 의미로 운행하고 있다. 노래비의 경우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졌는데 100년의 세월동안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대전을 오가며 많은 이들이 역사의 아픔을 이겨내며 살아왔고 그 가운데 대전역이 특별해졌고 그 내용을 담은 음악 대전부르스를 새겨넣었다고 한다.

운행시간 : 3월~11월 / 동절기(12~2월)에는 운행이 중단될 수 있음.

운행간격 :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 시간 정시에 약 15분간씩 운행.




 대전역 광장이 아닌 반대편으로 나가면 오래되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새 건물이 보인다. 바로 대전전통나래관이다. 


홈페이지   http://www.djichc.or.kr/

전화번호 : 042-636-8008

주소       : 대전 동구 소제동 299-34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

관람료    : 무료





 대전전통나래관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된다. 대전의 무형문화재에 대한 전시실은 언제나 가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제도는 무형문화재의 안정적인 전승과 체계적인 전승활동을 위해 보유자 - 전수교육조교 - 이수자 - 전수장학생(일반전수생)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전승체계를 갖추고 있다. 보유자(보유단체)의 주된 의무는 '전통문화의 확산과 세대간 전승'이다. 따라서 보유자(보유단체)로 인정되면 자신의 기능과 예능을 전수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 자질과 뜻이 있는 전수생을 선발하여 교육하며 이들 가운데 3년 이상의 전수교육을 받아 일정한 기량에 이르면 이수자로 인정받게 된다.




 대전무형문화제 제12호 악기장(북메우기) 보유자 김관식은 충남 논산에서 30여년간 북을 제작해온 할아버지와 대전에서 50여년간 북을 제작한 아버지를 이어 3대째 북메우기를 하고 있는 악기장이다. 김관식은 가죽의 선별과 가죽 처리, 통 제작, 북메우는 과정을 전통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개회식에 사용한 용고와 청와대 춘추관 고각의 용고는 그가 제작한 북이다. 대전무형문화재 제6호 불상조각장 보유자는 이진형 선생이다. 불상조각장이란 불상을 조각하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보유자 이진형은 전국에 있는 크고 작은 사찰의 불상을 조각하는 일에 참여하였고, 불교조각의 형태, 비례, 색채 등 조각기능을 전수, 연마함으로써 전문적인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진불교미술관을 설립하여 전통문화 보급 및 지역문화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1호 단청장은 이정호 선생이다. 단청은 광물성 안료인 진채로 건조물에나 공예품 등에 채색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단청장 이정오는 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였던 고 일섭 스님에게 사사 받았으며, 1974년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 시험에 최연소(만 26세)로 합격되었다. 작품으로는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현충각,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이 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0호 연안이씨가 각색편 장인은 이만희 선생이다. 각색편이란 떡가루에 다른 재료를 섞어 색이나 향을 첨가해 찌는 떡(시루떡)을 말한다. 보통 백편, 꿀편, 승검초편을 각색편 혹은 갖은떡이라고 한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모양이 화려하며 품위가 있다. 보유자인 이만희는 연안이씨가 각색편 제조법으로 2000년 대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9호 송순주 보유자는 윤자덕 선생이다. 전통주인 송순주 보유자 윤자덕은 25살 때 서천에서 대전으로 시집을 왔다. 시댁은 대전의 대표적 명문가인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의 12대 종손가이다. 시어머니로부터 종가의 제례 등 대소사에 소용된 각종 음식기능을 전수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송순주이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6호 초고장(짚풀공예) 장인은 양중규 선생이다. 초고공예는 재료에 따라 왕골공예, 초물공예, 짚공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초고장이라고 한다. 양중규는 2003년 전통공예한국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만큼 전국적인 장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8호 악기장(가야금 제작)은 표재선 선생이다. 악기장 표태선은 중요무형문화제 제42호 악기장 김광주의 제자인 김종기와 조대석에게 가야금 전통 제작 기법을 사사하였으며, 지금도 거의 모든 작업을 수작업에 의한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1985년 대전에 정착하여 현재 '명인국악기'를 설립, 전통 악기 제작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기획전시관에서는 전시가 열리고 있지 않아서 전통나래관 상설전시관을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이 오픈되어있어서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수십년동안 대전역 옆에 자리잡고 있던 오래된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제동 관사촌도 보인다.





 대전 원도심에서 가장 북적이는 거리는 대전 스카이로드가 있는 으릉정이거리다. 대전 스카이로드는 으릉정이 250미터 거리에 LED 영상아케이드를 설치하여 야간에 화려한 영상쇼를 펼치고 주간에는 스마트 기반의 콘텐츠들을 즐길 수 있는 세계 3번째 국가이자 국내 최초의 도심 속 영상시설이다. 스카이로드가 설치된 으릉정이 거리는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대전역 앞 중앙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전의 명동으로 주변에 백화점, 지하상가, 갤러리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젊은층이 많이 찾는 쇼핑, 문화의 중심지다.





 LED 영상 SHOW 시간이 아닐 때는 조금 한산하다가 6~7시쯤부터 북적이기 시작한다. 뭐, 반대로 한산할 때는 영상쇼를 하지 않다가 사람들이 북적일 시간에 운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LED 영상 SHOW 운영시간

메인 영상쇼 : 동절기 18시 ~ 22시. 하절기 19시~23시.

                   일일 4~5회 30분씩 상영 (메인영상 15분, 공익/상업광고 15분)

* 메인 영상쇼 상영시간은 사정에 따라 다소 변경 될 수 있다고 한다.






 옛 충남도청의 변화가 대전 원도심이 문화공간으로의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싶다. 2012년 12월 충청남도는 80년간의 대전청사 시대를 마감하고 예산의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였다. 2013년 10월 충남도정의 상징적 공간이며, 충남도청 대전 8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지사실을 국민의 문화공간으로 개방하였다. 건물은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과  '도지사실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두 전시관은 운영주체가 다른 것인지 관람시간도 조금 다르다. 30분 정도 차이이기 때문에 조금 여유있게 생각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아래는 도지사실 전시관 안내사항이다.


관람시간 :  3월 ~ 10월 /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11월 ~  2월 / 오전 10시 ~ 오후 5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및 기타 사유 발생시

관람료   : 무료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

전화번호 : 042-226-8385(안내실), 042-222-8385(관리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인 옛 충남도청사 본관(등록문화재 18호)에 자리한 [대전근현대사 전시관]은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 약 100년간 대전의 역사와 발전상, 원도심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역사는 물론 건축, 디자인, 민속 등 여러 분야의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으며, 그 외 옛 충남도청사 본관을 활용한 근대건축 투어 등 시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전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이다. 크게 아래의 8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

2. 구한말 대전의 구국운동

3. 근대도시 대전의 탄생과 성장

4. 대전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5. 대전, 근대를 걷다

6. 한국전쟁과 내전

7. 폐허에서 일어나다

8. 대한민국의 신중심도시 대전



 도지사실은 충청남도의 도지사가 1932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정 업무를 수행하던 집무실과 그 부속공간이다. 충남도청은 1896년 충청남도가 탄생한 이래 공주에 있었으나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1932년 10월 대전으로 이전하였다. 공주는 1603년부터 1932년까지 충청 감영이 자리하여 329년간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대전의 충남도청은 1932년 2층 벽돌 건물로 신축되었다. 충청남도는 일제강점기 박중양 초대 충남도장관을 시작으로 5명의 일본인과 11명의 한국인 도지사가 취임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미군 1명과 한국인 1명이 공동으로 도지사직을 수행하다가 1947년 2월 15일 이후 한국인이 도지사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1948년 정부수립 전까지 한국인으로 도지사직을 수행한 이는 모두 3명이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초대 이영진 지사로부터 8대 김양현 지사까지 임명직 도지사가 부임하였다. 1960년 지방자치제 도입에 의해 이기세 지사가 당선되어 1961년 취임하였으나 5.16 발발로 재임 4개월 만에 지사직에서 물러나고 군사정부에 의해 육군 제32사단장이었던 윤태호 준장이 제 10대 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1963년 제11대 노명우 지사로부터 다시 민간인이 도지사직을 수행하게 되어 1995년 31대 박중배 지사까지 임명직 도지사가 도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지방자치법 제도가 부활되어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제32대 심대평 지사가 선출되었다. 이후 현재 제36대 안희정 지사까지 선출직 도지사가 도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에 보면 거대한 금고 사진이 있는데 도지사실 한쪽에 놓여있다. 일제강점기 공주청사 시절부터 사용되었던 금고다. 공주, 대전, 내포 3곳의 도청사를 모두 겪으며 90년 가까운 세월을 충청남도와 함께했다. 1920년대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록 충남반세기]에 따르면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할 때 금고의 무게(약 1톤)가 엄청나 기중기와 대형트럭이 없던 당시 소형트럭으로 옮기기엔 벅차서 공주군청에 기증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금고가 명물이었고 특별히 일본에서 주문 제작한 것이라 어렵더라도 대전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트럭 1대는 금고를 싣고 다른 트럭 1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인부들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비탈길을 돌거나 고개를 오를 때마다 트럭이 비틀거려 아슬아슬했다고 한다. 결국 금고는 무사히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당시 일본인 도지사가 금고를 이송한 인부들에게 상여금으로 20원(당시 쌀 2가마)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는 본래 도서관 건물이었다. 도서관이 많이 생기면서 그 용도를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 겸 창작센터로 바꾼 것이다. 건물 뒷편에 예쁜 산길이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좋다. 작은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예술관련 책을 볼 수도 있다.


홈페이지  http://www.temi.or.kr 

전화번호  042-253-9810

주소        대전 중구 대흥동 326-475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는 근대문화유산이 건물을 활용해서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민들이 예술작품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오래된 건물이 활용되므로서 그 생명을 더 오래 지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화번호 : 042-255-4700

주소       : 대전 중구 은행동 161






 마침 독특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카이스트 연구원들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과학과 예술이 융합되었으니 배로 어려워진 느낌이 들었지만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영감을 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사이의 접점을 절묘한 은유로 영상작품에 구현한다. 작가가 받아들이는 세상은 물질적 현상세계, 가상세계, 그리고 이 둘이 중첩되는 비물질적 세계이며, 작품속에서 각각의 세계는 조직적으로 상호 매개화된다. 현실에서는 도덕적 범주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이 가상의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현실과 비교해 덤덤하게 혹은 극단적으로 피드백한다. 작가는 특히 인터넷과 같은 가상세계에서 드러나는 '악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실재의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펄스신호'를 가시화하고 이것이 움직이는 과정들을 작품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또한 우리의 감각이 가지는 수용한계를 넘어서는 인터넷 스펙터클의 이미지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이번 영상작품에서 작가는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시각 정도들이 채 해석되지 못하고 정보를 다운로드-업로드 혹은 댓글달기 등 일련의 인터넷 활동 속도에 밀려 뭉치고 엉킨 결과를 재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최근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은 작가가 은유하는 악의 평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점점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신해가고 있는 대전 원도심이지만 중앙시장을 비롯해서 많은 시장들은 편의성만 조금 더해졌을 뿐 옛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그 모습이 계속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대전에는 맛집이 참 많은데도 대전역에서 내리면 항상 중앙시장에 가서 순대국밥을 먹게된다. 오랜시간 반복해서 버릇이 되어버렸다. 





 지나 온 역사가 아니라 100년을 시간을 그대로 안고 있는 것 같은 대전 원도심은 그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문득 대전 원도심의 골목을 헤매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