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라바나벨라골라는 굉장히 작은 동네다. 인도에서 가장 큰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크지는 않다. 워낙 힌두사원들이 크다보니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산 위에 위치해 있으니 산까지 포함하면 정말 큰 거지만.  자이나교는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의 일파로 시작되었다. 자이나교의 여러면에서 불교, 힌두교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극단적인 무소유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들이 모시는 신상도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며 종종 나체수행자를 볼 수 있다. 근데 재밌는 건 자이나교의 신도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러니의 이유는 충분히 멋진 것인데 자이나교의 교리는 극단적인 무소유만큼 철저히 살생을 금하고 있다. 그러므로 군인이나 동물을 죽이는 일, 가죽을 다루는 일을 할 수 없는데 놀라운 것은 농업도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일은 상업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멋진 이유 때문일까? 이들은 높은 신용을 가진 상인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인도에서 부유한 계층 중 하나가 되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극단적 무소유라며?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했는데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자이나교에서의 종교적 실천방식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철저한 고행과 자발적 가난을 중시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가정에 충실한 방법이 두번째다. 그러니 다수는 가정에 충실한 부류인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는 옷을 욕심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소유하는 최초의 것이 바로 옷일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것을 버린다고 해도 몸에 걸치고 있는 옷만은 남기 마련이므로 옷을 벗어던지므로써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겠지. 1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자이나교 축제에 100만의 인파가 몰린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자이나교에서 본 호텔은 하나뿐인데?! 근처 도시인 하싼이나 마이소르에 숙소를 잡고 왔다가는 건가? 내가 스라바나벨라골라에서 본 나체수행자는 단 한명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이는 자이나교가 백의파(Svetambara)와 공의파(Digambara)로 나뉘기 때문인데 백의파는 나체를 거부하고 흰옷 착용을 인정하는 보다 대중적인 모습으로 북인도를 중심으로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한 것이다. 반면 공의파는 남인도를 중심으로 수도승은 옷을 입지 말아야한다는 보수적인면을 띤다. 음.. 스라바나벨라골라는 남인도인데? 물론 나체수행은 대중적이기 힘드니 일반대중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것은 백의파일 것이다.





 빈디야기리는 스리바나벨라골라를 대표하는 이미지와 장소이기도 하고 자이나교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라가는 길에 바위에 쓰여진 오래된 글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를 설치해 두었다. 아래 사진 속에 보이는 소년들이 주위를 맴돌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돈을 교환하기도 했다. 한국돈을 원했지만 한국돈이 없으니 스리랑카돈으로. 






 빈디야기리는 거대한 반라의 석상으로 대표되는 곳이지만 거대한 석상 딱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눈에 띄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오르는데 꽤 품을 들여야하기에 그냥 내려가기에 아쉽기도 하고. 사원의 스타일은 힌두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자이나교와 불교라는 것이 힌두교에 대적해서 나온 종교라 건축양식을 새롭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대신 산 위에 뻥 뚫린 하늘을 지붕삼아 가지고 있어서 힌두사원의 어두컴컴하고 음침하며 나를 무섭게 하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다.





 기둥을 비롯한 곳곳에 숨겨진(?) 조각들이 매력적이다. 아래 조각처럼 요염한 조각을 찾는 것도 기쁨(?)이랄까. ㅋ





 신상의 높이는 17미터다. 그래서 신전에 들어가기전 담장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그(?)가 보인다. 거대 신상이 있는 사원은 Vindhyagiri로 그 맞은편 산에는 Chandragiri가 있다. 사원에 입장료 같은 건 없는데 우습게도 힌두사원들에서 신발을 맡겨놓고 찾을 때 돈을 요구하듯이 여기서도 요구했다. 이곳이 힌두사원이었다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여긴 자이나교사원이잖아. 무소유와 정직...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무명무실이 된 종교가 된 자이나교의 본산지로 온 건가 하는 생각에 당시에는 기분이 살짝 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건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사원의 입장료는 없다. 그런데 관리인들은 있다. 종교인이라면 기부로 살아가겠지만 신발을 맡아주는 이들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아마 자이교인일 것이다. 그들이 돈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들도 기부금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발 관리비로 그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것 같다. 사실 몇백원인걸.





 사람이 없어서 뭔가 썰렁한 분위기다. 딱벌어진 어깨 ㅋ 구글에서 축제 장면을 찾아보면 정말 장난아니다. 다양한 색의 물감이 석상 위로 뿌려지면서 붉게, 노랗게 변하는 모습은 굉장해 보였다.




 볼 것도 많지 않고 할 일도 별로 없는 스리바나벨라골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창밖을 보니 사원으로 올라가는 사제들이 보였다. 빈디야기리는 한번도 올라가면 족한 곳이다. 근데 계속보니 빈디야기리를 오르는 사제들의 수가 적지 않다. 뭔가 하나보다고 생각되어서 얼른 씻고 다시 바위산을 올랐다. 오늘은 호텔에서 나갈때부터 맨발. 절대 팁 따위 주지 않겠어라는 맘 가짐으로 ㅋ 호텔과 빈디야기리 입구는 가깝다.




  오, 어제 내가 기대했던 게 이런 거였어. 아침에 가야 볼 수 있나보다. 사원 앞마당에 테이블을 놓고 자리를 잡은 이들도 보인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사제들은 사진 찍는다고 포즈를 취해준다.






 평소에는 이렇게 작은 그릇에 깨끗한 물을 받아서 신상의 발등과 다리에 뿌리나보다. 축제 때는 구조물을 설치해서 신상 머리 위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흘리지만 평상시에는 깨끗한 물로도 설치 구조물 없이 신상 머리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런식의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불교에서도 석가탄신일이면 작은 석가모니상 위에 물을 흘리지 않나?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것의 기원도 힌두교일까? 힌두교에서도 이런 의식이 있는 걸까?






관광객들과 함께 어울리며 가볍게 보였던 그들이 순간 진진해지기도 한다.







 날 충격에 바뜨린 사제들의 손!!! 한 손에 반지를 2개씩 끼고 있다. 자이나교 신도들이 잘 산다더니 반지도 큼직하다. 사제들의 옷을 보면 헤진데 한군데 없는 새옷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소유라는 그들의 교리말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아니면 다큐멘터리나 외부인들이 만들어낸 환상 혹은 믿고 싶은 던 것 뿐인가. 그런 건 정말 많으니까. 사실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 지역에서 촬영의도와 정반대되는 것을 많이 겪을 테지만 자신이 의도하거나 방송국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할 테니까....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뭐... 분위기는 이렇다. 





 아침 예배(?)가 끝나고 산을 내려오는데 산 아래에서 한 걸음씩 올라오는 나체의 수행자. 차마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못하고 뒤에서 살짝. 얼굴을 보니 어제 마을에 있던 사원에서 보았던 분이다. 그 때는 책상 뒤에 앉아 계셔서 나체인 줄 몰랐는데...





Posted by 어바웃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