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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영화처럼

인류멸망보고서 -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어깨에 힘을 너무 주었거나 너무 뺐거나.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어깨에 힘을 너무 주었거나 너무 뺐거나.

 

<인류멸망보고서>는 흥행과 완성도면에서 모두 실패했다. 그렇다고 어찌해 볼 수 없는 졸작이라고 평할만한 영화도 아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SF영화 전체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SF영화는 별로라는 인식을 더 강하게 만들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옴니버스 영화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점과 단편영화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부각된 것도 문제로 보인다.

 <인류멸망보고서>에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나았던 영화는 <해피버스데이>였다. 코믹한 부분이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멋진신세계>에서 보여주는 영화와 어우러지지 않는 듯한 개그는 아니었다. 소재면에서는 <천상의 피조물>이 좋았다. <인류멸망보고서>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 영화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길지 않은 런닝타임에 영화를 잘라내야 했던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게다가 연기가 눈에 거슬리는 부분(특히 UR의 직원들과 RU의 대치상황에서.)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천상의 피조물>을 장편영화로 확장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강우와 김규리에게 과거 이야기를 넣어줌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이로봇>을 연상케 하는 로봇의 형상과 김강우의 왼팔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김강우의 한쪽 팔만이 로봇이 아니라 그가 과거에 만들어진 인조인간이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 <멋진신세계>는 한 알의 사과가 가져다주는 고통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강하게 어필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만들어내었다. 이야기의 신선함도 없고 눈에 띄는 이미지도 없다. 이 영화는 마치 아마추어가 만든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피조물>은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다. SF 영화에서는 로봇의 위치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건 단순히 로봇이 권력과 힘이 있고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로봇의 권리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권리로 인권이라는 말을 써가며 이 사회에 강력하게 어필한다. 소외되고 힘든 이들을 위해 그들은 인간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다면 로봇은 어떨까? 우선 공장에서 단순 조립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팔 같은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인공지능과 감정을 가진 로봇의 등장이다. <천상의 피조물>에 나오는 로봇처럼 로봇은 점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겉모습을 인간과 닮도록 만들고 생각을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까지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로봇은 그저 OFF 버튼 하나에 고철로 만들어도 괜찮은 존재인가. 100년이 갓 넘은 시절, 흑인 노예는 그 어떤 권리도 없었다. 인간에 분류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어린이들은 어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그래서 부모에 마음대로 아이의 삶을 결정하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묵인되어졌다. 로봇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는 어린아이, 주인의 노동을 대신한다는 점에서는 흑인노예를 닮았다. 동물에 대한 생각도 비슷한 계보를 가지고 있다. 자, 그렇다면 로봇은 피와 살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야 할 존재가 맞는 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뭐...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될 것 같지는 않지만. 미래 사회에 UR이 로봇들에게 YOU ARE A SLAVE라고 말할 수 있을까나. 그럼 로봇인 RU는 인간에게 묻겠지 ARE YOU......? 너는 뭐냐고? 나와 너는 무엇이 다르냐고. 그 다름이 인간이 로봇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간이 로봇을 다스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