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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염쟁이 유씨 - 염쟁이 유씨의 마지막 염

염쟁이 유씨

 

 염쟁이 유씨의 마지막 염

 

 염쟁이는 장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작가가 스스로를 글쓰는 글쟁이라 하듯 염쟁이는 자신을 염하는 염쟁이라고 부른다. 의사가 산 사람을 위해 존재하듯 장의사는 죽은 이를 위해 존재한다. 염쟁이는 죽은 이가 이승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죽은이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그가 저승에서 처음으로 만날 저승사자에게 망자를 건네준다. 작은 공간에서 죽은이를 다루는 것이 직업이기에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보다는 제사장과 같은, 죽은이를 향한 의식들이 염쟁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염쟁이 유씨>는 오랫동안 호평을 받으면서 공연되어지고 있어서 보고 싶었던 무대였다. 세번째 보는 모노드라마였고 일인극이다보니 배우가 누구고 그의 역량이 어떤가에 따라서 극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듯 싶었다. 관객과의 경계가 지어져있지 않다는 점에서 배우의 센스가 중요하다. 내가 본 공연의 배우도 배테랑이고 이 공연을 오랫동안 해 오던 배우였는데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너무 익숙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에 명확한 대사전달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장, 차장, 부장, 사장, 회장.... 다음엔 송장. 무얼 위해 그리 악착같이 사누.

 

 <염쟁이 유씨>의 이야기는 유씨가 염을 하는 과정을 담은 것을 큰 줄기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살아있지만 늘 죽음과 맞닿아있는 사람이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굉장히 넓고 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의 죽음은 다른이가 겪는 가족의 죽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부모를 염하고 아내를 염하고 자식을 염해야하는 유씨는 더 이상 염을 할 수 없다. 직업으로서의 염쟁이, 노동으로서의 염이 너무나 큰 감정적 소모를 요구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유씨는 자신이 더 이상 죽은이를 염하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닫고 마지막 염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한발짝 떨어져서 본다면 몰입이 강한 배우라면 이 연극을 계속 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매번 마지막 염을 해야한다. 무대에 설 때마다 자식이 죽어나간다. 이건 어쩌면 염쟁이 유씨보다 감정의 노동이 격하지 않을까.

 

 

<염쟁이 유씨>는 접하기 힘든 염의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눈에 띄지만 이야기의 구조에서는 굉장히 단조로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