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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좌파하라 - 탈자본주의 세계를 꿈꾸다

좌파하라

 

 탈자본주의 세계를 꿈꾸다

 

<좌파하라>는 지승호의 질문과 박노자의 대답으로 이루어진 대담집이다. 오랜만에 읽게 되는 박노자의 글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이야기에 바로 이해하고 수긍하는 면들이 많았다. 반면 <좌파하라>에서는 움찔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최고 통치자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과거 대통령들의 과오를 나열하며 김대중과 노무현이 들어있었던 점과 두번째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을 국유화 해야된다는 점이었다. 전자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동조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기만이 정권의 주된 무기였던 거다. 후자의 경우 그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 이런 의문을 예상했는지 박노자는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이야 자본주의는 우리한테 당연한 현실이고, 우리는 그 현실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사고하기가 쉬운데, 세상은 바뀌거든요.1 노예제가 당연했던 시절처럼 자본주의가 당연히 되고 있을 뿐이란다. <좌파하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인 자본주의는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하라>를 읽으며 순간 생각이 정리 안 될 때가 있었는데 그건 내가 별 생각없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혼란이었다. 박노자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건 한낱 신화에 불과하며 이건 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오랜시간 지속되어오고 있음에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연대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그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피착취자 계급의 수직적 분산이 우리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시면 한국 노조 중에서 70퍼센트 정도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든요.2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원과 중간 관리자 등 모두가 같은 피착취자임에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연대가 불가능해진다.

 비슷한 행동으로 보여도 그 의도로 인해 방향과 현실은 달라진다. 박노자는 소비에트를 굉장히 이상적으로 그려낸다. 반면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만들어내는 과정 중 하나로 본다. 겉모습만 본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과 과정이 너무나 상이하다. 결국은 사회주의 혹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빚들을 취소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갚는 것이 아니라 취소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자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회구조적인 잘못으로 빚이 쌓였다면 그것은 사회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없앨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동안 빚을 내 흥청망청 쓴 사람이 그동안 노동만을 한 사람과 같은 위치가 되어버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온당한것일까. 물론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빚을 그냥(!)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것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온다면 이건 그리 간단히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좌파하라>의 후반부에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좀 부끄러워졌다. 통일이 된다면 무엇을 해야 돈을 벌수 있을까만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건설업, 여행업들을 떠올리고 북한 인민의 싼 노동력의 이용등을 생각한 거다. 피착취자인 내가 마치 착취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조선 정권이 무너지고 '흡수통일'과 같은 악몽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무(無)권리의 유사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남한 기업인들은 그들의 저임금과 무권리 상태의 보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권 신장이나 생활수준 제고에 다소 무관심할 것으로 보입니다.3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좌파해야한다. 자본가와 부국 시민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불행지거나 덜 행복해 지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건 결국 내가 국가와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는 데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책갈피

 

이명박은 끝나도 이건희는 끝나지 않죠. 이재용도 끝나지 않고. 이명박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이명박은 교체가 되거든요. '다음 이병박'이 어차피 들어올 건데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잖아요.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는 거죠. 최고 통치자가 누군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P.21

 

상식이 없는 사회에서는 안철수 정도의 상식을 보유하면 희소가치가 높은 거죠. P.27

 

사실은 자유주의적인 대통령은 진짜 진보계한테는 재앙일 수 있는 거죠. 자유주의적 대통령은 시민사회를 기만할 능력이 큽니다. 농민이라든가 하급 노동자들을 때려눕히면서도 시민사회의 고급, 중간급 활동가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탁월하죠. 그런데 이명박 같은 돌대가리는(웃음) 무식한 탄압정책을 펼쳐서 노동자, 농민, 지식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P.31

 

 실제로는 소련이 몰락했다고 해서 자본주의 위기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어차피 궁극적으로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데요. 자본주의 이후가 무엇이냐, 그런 고민이 소련 몰락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P.45

  

비정규직 양산이 15년 전부터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체 노동 인구의 56-57퍼센트가 비정규직으로 그 숫자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이 정도의 비정규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윤추구가 불가능해진 구조, 그러니까 철저한 노동착취 구조가 완전히 자리 잡힌 겁니다. P.49

  

학생도 학습노동자인데, 노동자는 노동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해야지, 집에서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의한 개인 시간의 식민화예요. 노동 시간과 개인 시간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게 원칙이어야죠. P. 96

 

미래에 세계적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된다면 '나머지 세계'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는 동시에 노르웨이와 같은 예외적 부국들의 소비 수준은 조금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즉, 노르웨이가 국제적인 혁명적 노선으로 간다면, 이는 자신들과 동류들의 생활수준 제고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반대로 안락한 '부국 시민' 생활의 (적어도 부분적) 포기입니다. p.137

 

정치적인 사회 운영이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사회주의가 되는 것이거든요.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극대화죠. p.154

 

박정희 시절에 미제의 보조적 용병으로 월남에 간 남한 군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시죠. 소련 문서에 의하면 침략 전쟁의 부당성과 박정희 정권의 범죄성을 결국 인식하게 된 그 중의 몇 명이 결국 침략을 포기하고 북월 측에 항복하고 사죄를 하는(나중에 북조선에 넘어가서 살았습니다)등 용감한 탈영을 감행했지만, 다수의 '돌아온 김상사'들에게는 지금도 침략의 부당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p.199

 

삼성에서 노조를 조직하려다가 결국 감옥까지 간 김성환 노동자의 '휴대폰을 통한 위치추적' 사건 당시 보였듯이, 정보통신기술은 탄압자들에게도 우리 쪽을 감시할 절호의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p. 202

 

  1. p63
  2. p.46
  3.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