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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소설] 잉여인간 안나 - 영원한 삶, 빛과 그림자

잉여인간 안나

 영원한 삶, 빛과 그림자

 

<잉여인간 안나>는 누구나 한 번 상상해 보았을 생각에서 태어난 이야기다.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떨까?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현재 노인들의 평균 수명이 여든이니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얼마나 더 살게 될 지,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인해 쉽게 예상할 수 없다. 더 오래 살게 된다면 정말 많은 일을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적인 것만을 생각했었다. 당연하게도 생명 연장이 한 개인에게만 적용될 리 만무하니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는 게 당연한데도 그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잉여인간 안나>처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설정이 아니어도 수명이 지금의 2,3배 늘어난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 세상 중 하나가 안나가 살고 있는 2140년의 영국이다.

 

 어떤 세계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존재한다. 세상이 평평해 지고 권력이 분산된다고 해도 기득권은 존재한다. <잉여인간 안나>에서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 기득권을 가진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권리를 그들이 나누어 가지고 새로 태어나는 자들에게는 그 권리가 없다.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사회 시스템은 돌아간다. 영원한 삶이라는 권리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사회의 대다수가 그에 따르는 부작용을 묵인 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다수가 누리는 기득권 때문에 그런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이곳에 먼저 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왜 합법적 인간들이 약을 먹어야 하나요? 그건 좀 부당한 것 아닌가요?'1라는 질문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은 지금의 체제가 최선의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예제조차 100년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는 쉽게 문제점을 발견한다. 과거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의 문제점은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어쩌면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안나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부조리하지만 그 시대를 사는 다수가 그걸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에 그것을 쉽게 부정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단지 다른 생각들에 대한 것을 광장에서 열어놓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시대가 변해도 항상 불변하지 않을까 싶다. 다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지하로 숨어들어야 하는 건 온당치 않다.

 

<잉여인간 안나>가 주니어김영사에서 출판 되었고 표지에 2009년 프랑스 청소년 상상력 대상 도서라고 쓰여있는, 누가 봐도 청소년을 타겟으로 하는 책임에도 집어 들었던 것은 잉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삶이 잉여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사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내 가슴에 비수를 꼽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 세상에 짐이 된다는 점과,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대단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존재의 죄를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 아래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라는 내용들이었다.2 난 지구의 에너지를 낭비하며 내 부모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잉여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식물이 되었어야 한다. 식물로 태어났어야 한다. 흙 위에 떨어진 씨앗이 새싹이 되고 풀이나 나무가 되어서 광합성과 빗물을 먹고 사라나고 시간이 흘러 죽어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어버리는 바로 그런 식물로 말이다. 마치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 같잖아. 어쨌거나 인간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거다. 녀석들의 실제 사정이야 어떻든 난 그들과 대화가 되지 않으니까.

 

 

 <잉여인간 안나>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다. '더 오래 살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과연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더 오래 살아 마땅한 사람들인가. 죄를 지은 사람은 짧게 살아 마땅한 사람들인가.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세상은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사형제도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까. 과학발달로 수명을 마음껏 늘릴 수 있게 된다면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게 훈장과 함께 5년, 10년의 삶을 더 살 수 있는 권한을 주게 될까. 지금도 돈과 명예를 가진 이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테니 사실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지 지금도 수명을 늘리고 줄이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만은 아니다.

 

 

 줄리아는 이따금 장수약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고 단기간의 이익에 관심을 덜 갖게 해준 덕에 범죄의 심각성을 덜어준 걸까, 아니면 범죄 행위가 정말로 젊은이들의 소관이라서 그들을 근절시킨 게 거리의 안전에 도움이 된 걸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헛갈리곤 했다. 그녀의 남편은 후자에 동의하면서 이 세상 모든 불행의 만병통치약으로 포고령을 들먹였지만 줄리아는 꼭 그렇다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오늘날 사람들이 너무 늙어서 범죄를 저지를 만한 상상력이나 기력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3

 

 

 이 소설이 청소년 도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주인공이 청소년들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마거릿 핀센트 소장과 피터와의 관계 설정에서 아... 이 책이 청소년을 위한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든다. 물론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그걸 픽션 안에까지 가져오는 것은 조금 촌스러운 드라마, 영화, 어린이나 청소년용 이야기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세상엔 이유없이 나쁜 사람이 있다. 소장과 피터와의 관계가 드러나려고 무럭무럭 분위기를 피울 때 문득 아... 이거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 장면들과 오버랩됨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잉여인간 안나>는 잘 읽힌다. 책의 한 챕터이기도 한 '잉여인간 놀이'등을 읽을 때는 섬뜩함을 느꼈다. 안나의 일기가 안네의 일기와 같은 역할을 했을테고 그것이 글을 쓰는 행위가 즐거움인 동시에 치유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 것, 그로 인해 안나가 성숙해져 가는 모습에 빠져들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많은 부분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된다. 난 잉여인간인 채로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생각을 조금 바꿔 덜 불행할 순 있겠지만 말이다.

 

 

 잉여인간이란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필요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를 필요로 할 경우, 그는 더 이상 잉여인간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잉여인간이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4

 

  1. P. 218
  2. P. 74
  3. P. 238
  4. P.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