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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하얀앵두 - 긴 호흡의 특별하지 않지만 인상적인 이야기

연극 하얀앵두

 

 긴 호흡의 특별하지 않지만 인상적인 이야기

 

  <하얀앵두>는 인터미션 없이 140분이 공연되어지는 연극이다. 공연 시작 전 원할한 공연관람을 위해 가습장치가 틀어진다고 했지만 그것이 에어콘은 아니니 시간이 갈 수록 더웠다. 하지만 내 바로 앞에서 겨울 옷을 입고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 앞에서 덥다고 표 낼 수 없는 일이다.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전에 공연이 열흘밖에 안 남았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천하는 연극이다. 좁지 않은 무대가 흙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도 얇게 위에만 덮어 놓은 것이 아닌 두께로 말이다. 한 가운데 평상과 오른쪽의 개집과 개나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어 무대는 넓어보인다. 둥그런 무대 뒤쪽으로 벽 앞에 공간이 남아 있어서 극 후반에 그 쪽으로 가득(!) 꽃과 나무들이 자리잡을 거라고 상상했으나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무대 변화는 없다. 연극 <하얀앵두>의 단백함을 무대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연극 <하얀앵두>는 곳곳에 슬픔의 늪을 파두고 관객을 기다린다. 연극 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들에서 슬픔을 주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면 그 작위성에 짜증이 치미는 것이 사실이다. <하얀앵두>에서는 그 모습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음악이 사용되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고조시켜 관객을 울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음악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하얀앵두>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이 정적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실처럼 말이다. 우리의 현실에는 그 어떤 조명도 배경음악도 진행요원도 없지 않은가. 배우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공감이 되었다. 그건 관객이 보던 보지 않던 이어지는 이야기 속 그 주인공의 감정이었다. 조용히 흐느끼지만 눈물과 긴 콧물이 쭈~욱 흐르는...

 

 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배우들의 눈과 조명으로만 등장하는 원백이와 할아버지가 긴 연극과 담담한 스토리를 지루 할 새 없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요즘 많은 이야기를 접하니 바로 리뷰를 쓰지 않으면 느낌을 말하기 힘들구나 >.<)

 

 

 문득 드는 생각은... 하얀 앵두는 흔치 않다. 하지만 화석이 되어 발견된다면? 그것이 붉은 앵두인지 하얀 앵두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고등학생인 딸이 아이를 갖고, 생계를 위해 졸작인 소설을 쓰는 그는 지금 비록 괴롭지만 먼 훗날 그것이 화석이 되면... 그 구분이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이고 무엇이 붉고 하얀지 말이다. 물론 그들은 지금 괴롭지 않다. 해피엔딩이니까.

 

 음... 구분이 된다면? 그건 더 특별하다. 교수가 발견한 화석은 너무나 흔해 값어치가 없다. 빨간 앵두와 같다. 하지만 하얀앵두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교수가 발견한 화석은 비록 그 자체로 특별하지는 않지만 조급증병을 고치는 효능(?)을 나타내면서 특별해지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