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

 끊임없는 웃음에도 가볍지 않은 연극

 

 연극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는 가족이야기다. 수상한 가족도 무서운 가족도 아닌 우리네 평범한 가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극은 시종 웃음을 띄게 만든다. 그렇다고 극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 것으로 연극을 만들고자 할 때에 그 연극이 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너무 개그코드를 앞세우거나 진부해서 따분해지는 경우 혹은 진부해지지 않기 위해 상징과 생략의 남발로 난해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상적 소재(?)의 어려움 속에서 연극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는 균형을 잘 잡아서 관객들에게 가볍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연극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극은 닐 사이먼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지만 중년의 부부가 가질 수 있는 감정들과 사건들로 이질감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사회주의자인 할아버지, 코메디 작가를 꿈꾸는 형제, 따뜻한 지방으로의 이사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숙연해 지고 미안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자식이니까. 그런데 참 이기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재의 의미를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했기에 그 무엇보다 그것을 앞세워 살아온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나는 이만큼 행동했는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하지 않는냐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모든 이타적행위는 이기적 생각에서 나온다. 물론 이기적인 행위는 더욱 더 이기적이 생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무대에서 떨어져 객석에서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큰 아들 스탠리처럼 화가 날 것이다. 케이트는 잭에게 어떻게 그 여자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냐고 소리친다. 행위에 대한 분노였다면 동조할 수 있겠지만 감정에 대한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은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것처럼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륜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도덕적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이 도덕적인가.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과 관습의 대립처럼 보인다. 잭이 평생 케이트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꺼다. 그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한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케이트는 매일 식탁을 닦고 잭을 매일 회사에서 일을 하며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반복되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잭이 바람핀 나쁜 놈이라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어려운 일이기에 넋두리가 길었다. 

 

 내용적인면에서는 젊은이들보다 중년의 관객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만한 것이어서 나를 포함한 일부 젊은 관객은 촌스럽다고 느끼는 대사와 상황설정이 존재한다. 이것을 알았는지 극장과 극단은 타킷 관람층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는 듯하다. 평일 공연은 모두 오후 3시 일회공연뿐이다. 결국은 전업주부이거나 은퇴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십대 중반의 부모를 둔 젊은이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된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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