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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두더지의 태양 - 싸워보지 않고 몰랐으면 더 좋았을 지도...

두더지의 태양

 싸워보지 않고 몰랐으면 더 좋았을 지도...

 

연극 두더지의 태양은 좋다거나 별로라고 말하기보다는 당황스럽다는 감상을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포스터를 보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에 관객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게 된다. 포스터는 그 어떤 연극보다도 이 극이 명랑극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 연극은 폭력이 난무하는데 성매매, 왕따, 욕지거리, 주먹질과 발길질, 칼부림에 이어 살인, 시체절단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문득 이 어둠침침함만 없애고 본다면 가볍게 읽히는 요즘 일본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극의 가장 큰 장점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재야 특별할 것이 없는 것들이어서 청소년들을 둘러싼 문제를 종합선물세트로 묶어 놓아서 보여주는 형식인데 이것의 결말이 우리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 것이다.

 극에서는 청소년 드라마에서 보는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많다. 포스터와 그 속의 문구 '싸워보지 않고는 모른다!' 또한 그렇다. 그런데 이 문구가 극을 다 보고나면 황당하게 다가온다. 나를 억누르는 '적'이라도 그를 죽이고 토막내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싸워보라고, 싸워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일까? 주인공은 죽지 않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 보통은 이런 극단적이 결말에 처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기 힘들 것 같지 않은가. 우리의 상상력은 관습 안에서 철저히 통제되어진다. 이 사회엔 도덕률이 존재하고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그것을 채득해 왔다. 그래서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 희곡을 쓴 작가는 그것들을 모두 개나 줘버리라고 던져버리고 의식이 가는데로 글을 써내려간 듯하다. 그는 주인공이 되어 움직였기에 이런 극단적인 결말까지 가게 된 것이 아닐까.

 

 소극장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큰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무대는 쇠사슬과 블라인드가 둘러쳐져 있다. 블라인드는 조명을 그대로 반사하여 조명의 색을 담고 있어 쇠사슬과 함께 시종 극의 하드고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등장인물이 많고 무대가 넓어서 마임을 보여주기에 좋은데 극에서 보여준 우산을 이용한 몸짓은 조금 식상한 편이었으며 극 전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에 비해서 그 효과는 의심스러웠다. 철구조물을 이용한 문이 인상적이었고 별거 아니지만 흔히 듣는 가요가 극장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우리의 두더지 세진이는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처음엔 10층에서 떨어질 것 같았는데 나중엔 200층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락한다. 200층... 193층.. 182층.. 147층... 92층... 37층... 2층... 1층... 그리곤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두더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