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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아리랑 - 한과 설움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한 장면 - 어느 가족 이야기

연극 아리랑

 한과 설움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한 장면 - 어느 가족 이야기

 

 

 연극 아리랑은 인혁당 사건에 휘말린 남자의 가족이야기다. 극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인혁당 사건이 아니어도 무관하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수 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기에 어쩌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언론의 말만을 믿고 있는 지금도 반복되어지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아리랑이라는 제목만으로 극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할 것이라고 오해를 했었다. 아리랑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극이 恨과 설움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쩝쩝대며 탐욕스럽게 음식을 먹는 형사와 꽁꽁묶여 바닥을 뒹구는 사내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극은 시작된다. 초반 잦은 암전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은 극의 후반에 가서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긍정하게 된다. 극의 중반까지 이어지는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중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와 과하다 싶은 부부의 애정표현은 관객을 불편하게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남편은 아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따뜻하고 자상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들이 형사에게 말했듯 집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고 보수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기에 언제나 그녀 옆에서 그녀를 기쁘게 해줄 최고의 인물이 될 수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라는 대로 변하는 것 같다. 극은 유난히 먹는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60년대는 먹는 행위에 의한 생존이 중요시되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시점이 분명하다. 그래서 함께 음식을 공유한다는 것이 그들을 식구로 만들고 결속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여자는 이미 죽은 남편과 끊임없이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짐의 순간에는 술을 나눈다.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한다. 그가 떠나지 않도록 우리는 식구임을 강하게 주장하듯이. 딸은 불량학생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아들은 형사와 빵과 우유를 나누어 마시며 묘한 교감을 이룬다. 연극 아리랑은 여백이 많은 극이다. 대사가 없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존재한다.

 가족의 방 구실을 하는 곳은 바닥보다 2단 높이에 있으며 무대의 앞과 뒤로 움직이는데 사실 그것은 뒤에 고정되어 있고 방이 아닌 공간만 그 앞에서 공연되어져도 무관하다. 단지 그것이 암전을 틈타 앞 뒤로 움직이는 것은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자신들의 연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인 듯 하다. 극은 심각하고 무거우며 빠른 연극들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느리기에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딸의 친구들이다. 태기의 말과 행동은 너무나 진지해서 더 웃기다. 전형적인 블랙코미디물에 나올 법한 인물로 진지할 수록 코믹해진다. 그의 말은 티비드라마 주인공만 할 법한 대사들이기에 치기어린 아이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해보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이 장면을 보는 관객은 폭소하게 된다. 조명과 소품의 사용은 단순하고 깔끔하다. 일상에서 그대로 가져왔을 것 같은 실제 음식과 소품들이 극을 더 단백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좋았다. 음향효과의 사용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적절했다.  

 극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살아감을 이야기하며 끝을 맽는다. 용서란 참 좋은 단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분명 이런 일은 조금 형태만 바뀔 뿐 반복될 것 이다. 망각은 그런 일들이 더욱 별거 아닌 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만들어버린다. 어리석은 인류가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만 형사가 느끼던 수치스러움과 옳지 않은 권력에 대한 분노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