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예기치 않은

 여행은 예기치 않은 나를 만든다

 

 

 연극 <예기치 않은>은 <컵을 깨다>라는 가제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극의 후반 수정이 컵을 깨는 행위가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이것이 예기치 않은 수정의 행위와 모습이었기에 두 제목은 다르지 않다.

 극은 프롤로그처럼 네 명의 배우가 무대에 서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명의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다가가 입 맞춘다. 그 배우는 또 다른 배우에게 다가가 입 맞춘다. 이 장면만 본다면 이 극이 꼬이고 꼬인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이 끝난 후엔 그 장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그들은 사회적 표정을 하고는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이렇게 시작된 극이 결국엔 모두가 개인적 표정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컵을 깨고 떠나버린다. 이건 잘 된 일일까?

 극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이지만 각자의 언어인 영어, 베트남어, 한국어를 표현하기 위한 독특한 억양과 분절된 단어들의 사용이 처음에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 불편함과 어색함은 결국 여행자들이 갖는 소통의 힘듦을 그대로 관객에서 투사하게 된다. 같은 언어를 주고 받는 우리도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전달받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난 시간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왔고 언어조차 다른 여행객들 사이와 현지인과 여행객들 사이는 오죽하겠는가.

 극은 여행자의 시선뿐 아니라 여행자를 맞는 사람들의 시선을 베트남 호텔 카운터에서 일하는 트촨이라는 인물로 보여준다. 그는 카운터에 놓인 작은 지구본을 보며 언젠가는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평생 이루어지지 않을 꿈일지도 모른다. 해외여행은커녕 하롱베이도 가본 적 없는 그는 북반구에서 온 사람들이 몇 초에 써버릴 1달라를 벌기위해 하루를 일해야 하니까.

 

 

 극은 몰입 요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수정의 죽은 절친 인혜에 대한 이야기는 겉돌기만 하고 장면들은 분절되고 나열되어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누군가의 블로그 속 포스트를 하나씩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사람은 자신이 한 베트남 여행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배낭여행을 해 본 사람에게는 많은 장면들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불편한 감정은 막 서른이 된 사람의 자서전을 읽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초반에 베트남 음악의 과도한 사용이 있었다. 바퀴 하나로 시클로를 표현한 장면과 안에 손을 넣어 남자의 옷이 늘어나도록 밀어내 옷 속의 손이 부각되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극이 끝나고 드는 개인적 궁금함은 하나다. 라울은 진짜 라울이었을까. 헤어질 때 수정은 자신이 티파니가 아닌 수정임을 말하는데 라울은 자신의 이름이 라울이라고 한다. 그는 진짜 라울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스쳐지나갈 인연에게는 라울일 뿐이길 바래서일까. 수정은 처음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티파니라고 했는데 라울이 만약 진짜 라울이라면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열었던 것일까.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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