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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열개의 인디언 인형 - 연극으로 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연극 열개의 인디언 인형

 연극으로 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연극 <열개의 인디언 인형>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것을 원작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면을 띄고 있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과 10명의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는 것 때문에 연극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작품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극단 우석레퍼토리의 <열개의 인디언 인형>은 이야기의 구성, 각색, 연출, 무대 디자인과 소품, 음향, 조명, 연기등 모든 면에서 조금씩 아쉬운면이 존재했다. 한 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에는 장점도 있지만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하물며 연극으로 만드는 것은 더 큰 한계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도전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극이 끝나고 잠깐 이 공연이 가진 한계가 거기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공연시간은 70분이 넘는 수준이었다. 결코 길지 않다. 얼마전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무대에 올린 작품이 있었다. 그들은 굉장한 욕심을 내어 공연시간은 120분이 넘었다.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공연이 120분이상이어졌지만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생길 정도였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도 그렇게 욕심을 내야 하지 않았을까? 극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우당탕탕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분절되는 듯한 연기와 대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암전이 되는 장면이 꽤 많았는데 관객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고 긴장감을 극도로 한다는 것에는 장점을 가지지만 장면을 보여줄 능력이 없어 암전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대의 한쪽면에는 경치가 보이는 베란다가 존재한다. 아무리 전기가 나가고 천둥번개가 쳐서 밖이 어두워도 그곳에서 옅은 빛이 들어오는 것은 정당한 일이므로 그곳으로부터 배우들의 윤곽만 보이는 빛이 존재하는 건 어떨까? 암전도 괜찮지만 너무 많은 경향이 있다. 무대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함부로 할 수 없다. 각 극장의 특성과 한계가 있으니까. 특히 소극장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소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작은 뿔과 그 아래 텐바이텐에서 팔 법한 도끼 액자는 정말 구색 맞추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좀 더 그럴싸한 것을 사용하는 것은 힘들었을까? 뿔 달린 사슴의 머리와 장총이 벽에 있어야만 했다. 물론 이것도 무대가 협소해서 무대를 좁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앙증맞은 뿔과 도끼는 조금 웃겼다. 입구에 걸려있는 액자는 문제가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너무 한국적이었다. 무대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많은 양의 술병이 위엄(?)을 달성하고 있어서 다른 면의 무대가 더 눈에 거슬리는 지도 모르겠다. 상징적인 것이라곤 인디언 노래와 인형 뿐이다. 열 명이 죽는데 극이 시작되면서 이미 많은 복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 만큼 많은 상징을 넣어 극을 보는 재미를 추가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급하게 극을 무대에 올린 것인지 더 멋진 공연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한 것인지... 각 부분에 좀 더 열의를 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