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온 미디어

 

 메디아가 미디어를 보여주는가, 미디어가 메디아를 보여주는가.

 

  메디아 온 미디어는 유리피데스의 그리스극 <메디아>를 원작으로 해서 김현탁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유리피데스는 기원전 400년 전 사람이니 즉 이 연극은 2400년전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메디아가 겪은 비극은 오이디푸스가 겪은 것과는 다르다. 메디아가 모든 것을 알면서 스스로 선택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메디아는 이아손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이성을 잃었는 지도 모른다. 이아손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었던 것이다. 콜키스 왕국의 왕이었던 아버지를 죽이고 남동생도 죽이고 조국을 버린다. 이아손의 정적 펠리아스 또한 죽인다. 그렇게 이아손을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었던 메디아를 두고 이아손은 크레온 왕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도한다. 이에 메디아는 크레온 왕과 딸을 죽인다. 그리고 이아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두 아들마저 죽인다. 

 이 엄청난 이야기를 무겁고 시종일관 비장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 하지만 메디아 온 미디어는 마치 우리가 집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듯이 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예 프로그램, 영화 채널, 게임 채널, 스포츠 채널, 토론 프로그램, 가요 프로그램 등으로 우리는 쉴새없이 리모콘 버튼을 누른다. 메디아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진다. 각각의 장면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장면 전환 또한 인상적인데 암전과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다. 하얀무대와 그 밖의 검은 무대 밖의 구분은 그저 바닥에 하얀 종이가 붙어있다는 것 뿐이다. 하나의 씬(연극이지만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하나의 씬과는 모습을 보인다)이 끝나면 배우들은 하얀 무대에서 나와 옆에 놓여져 있는 옷을 갈아입고 소품을 치우고 새로운 소품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이 암전 없이 이루어지므로 관객은 그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다양한 채널을 보는 느낌에 장면 전환 시 암전을 넣고 tv 화면을 트는 것 같은 효과를 넣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암전없이 이루어지는 모습들이 대단히 연극적이어서 인상적이긴 하다.  

 

 

메디아 온 미디어의 장면은 10여개 정도다. 첫 장면은 메디아의 기자회견이고 이후 신파영화와 이아손과 메디아의 토크쇼가 이아손의 정략결혼 대상인 글로체와의 이종격투기로 바뀐다.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리는 시사프로그램도 되고 애니메이션도 된다. 메디아가 일을 도모하기 전 훗날 자신을 의탁하기 권력자에게 몸을 파는 장면은 건강 프로그램의 요가로 나타난다. 메디아를 잡기 위해 쳐 들어오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총격전이 벌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엔카를 부르는 가요 프로그램으로 끝난다. 다소 높은 소음(?)에 불편해 하는 관객도 있긴 하지만 이러한 화면 전환이 연극을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신파 영화같은 모습에서는 물을 뿌리고 바닥을 닦는 모습은 사실 스크린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다. 배우의 얼굴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영화를 찍는다면 그 주변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연극 또한 물을 천장에 설치하고 장면 전환을 위해 암전되었을 때 바닥을 닦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메디아 온 미디어는 그 주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브라운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같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심각한 시사 보고 프로그램을 보다가 채널을 돌려 코디미 프로를 보며 웃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메디아 온 미디어도 극장 문을 나서며 잊게 될까? 어차피 2400년 전 이야기이니까? 비극이 오랜 시간 살아남는 것은 그것이 허무맹랑한 외계행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자신의 아이 셋을 죽인 엄마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다양한 장면으로 가볍고 재밌지만 인상적으로 처리되었던 이야기들은 실제로는 남편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오랜시간 고통받으면서 공황상태에 빠진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을 베게로 짓눌러 죽게 만드는 끔찍한 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사건이 현실임에도 우리는 채널을 돌리고 누군가를 매도하고 왜곡하며 토론회 방청객처럼 즐기다가 새로운 즐길거리를 위해 곧 새로운 이슈를 찾아나설 것이다. 

 

 

 뭔가 굉장한 사건이 터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눈에 메디아는 좋은 먹이가 된다. 미디어 속의 메디아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제목을 보면 MEDIA ON MEDIA다. 메디아와 미디어의 스펠링이 같다. 그래서 혹 미디어의 어원이 메디아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와 관련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연출가는 메디아의 이름이 미디어와 같음을 발견하면서 이런 형식의 각색과 연출을 생각하게 된 것일까?  

 

 

 

 사람들의 기대감이 들끊는 기자회견장에서 메디아가 미디어를 만나는 순간에서 시작된 극은 마치 사회면 흑백 사진 한장처럼 사건이 벌어진 사건 현장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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