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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베트남 여행기

다낭 참박물관 - 참파왕국의 흔적

 

 참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참파왕조의 유물만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1915년 7월 프랑스 학술 조사단이 참파왕국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프랑스 극동연구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설립하였다. 참박물관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의 집을 개조하여 만들어서 처음에는 앙리 파르망티에 박물관으로 불리었다. 참박물관은 참족의 조각상이 주로 전시되어있다. 서기 2세기때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진 참족은 4세기부터 13세기의 남부 베트남에서 번영했던 참족의 예술품을 전시되고 있다. 주로 다낭 주변의 미손을 비롯한 참파유적지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미손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서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처럼 복원된다면 참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 것 같다. 누가 앙코르 유적을 놓아두고 앙코르 박물관을 가겠는가. 시간이 없고 시원한 박물관을 원한다면 앙코르 박물관을 찾겠지만 참박물관은 그렇지도 않다. 덥다.

설명을 위한 장치들도 부족하다.

 

 

 참족의 문화는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참족은 말레이 계열의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베트남 중부지방으로 올 때부터 인도문화를 가지고 있었거나 직접 인도에서 선진문화를 받아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전 반해버렸다. 참파의 조각상은 참 멋진다. 조각상들의 표정도 마음에 든다.

수백, 수천년전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굉장하다. 기술이 발달하듯이 미적 감각이 발달하는 건 아닌가보다.

 

 

 

 이거... 새로 만든 거 아니고 유적지에서 떼어 온 거 맞나?

 

 

 참파는 한 때 큰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중국의 지배를 받던 베트남이 독립을 한 후에 참파와 500년 가까이 싸웠는데 세 차례나 베트남 수도를 점령했다고 한다.

당시에 베트남의 왕을 살해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베트남을 망하게 할 뻔 한 것은 중국, 프랑스, 일본이 아닌 참파였던 것이다.

참파는 캄보이아의 수도를 초토화시키기도 했고 중국 남부 지방을 침범하기도 했다고 한다.

음... 군사국가냐? ㅋㅋ 

 

 

하지만 이렇게 힘이 막강하던 참파는 약탈전쟁에만 관심이 많았다.

영토를 차분히 늘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1471년 조금씩 영토를 늘려가던 베트남에게 패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800년대초까지 참족 공동체가 명맥을 이어가면서 존재했지만 그 후 베트남에 녹아가고 있었다.

그때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게 되면서 참족이 베트남에 동화되는 것을 막고 지켜주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힌두교의 코끼리신 가네샤다. 우습게도 내가 힌두교를 처음 겪게 되는 것이 참박물관이었다.

아, 하노이 국립 박물관에서도 보기는 했지만 강렬한 인상은 이곳에서 받았다.

그리고 캄보디아, 말레이시아를 지나면서 동남아시아에도 힌두교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스리랑카, 인도로 가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힌두 유적들은 싸그릴 잊게 된다.

인도의 힌두교는 워낙 거대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것들과 비교할 것이 안된다. 종주국의 힘인가?

 

  

 참박물관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전시물을 벽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아니 이건 유적을 보호하겠다는 건지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아... 정말 포즈하고 표정이 ㅋㅋㅋ 유머 센스. 아무리 천년전이라도 이걸 무서우라고 만들지는 않았겠지. 이 녀석은 도깨비가 아닌 사자 =ㅁ=

사자를 본 적이 없는 걸까? 그림이나 이야기로만 전해들었는지도 모른다. 호랑이는 보았겠지만 사자는 먼나라 이야기였던거지.

 

  

 

 난 이 여인들의 몸짓과 라인에 감읍했다니까. 멋지다를 연발했었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볼 여인들의 라인을 생각치 못했던 거지.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을 보기 전이었기 때문에 참 유적에 홀딱 반하고 만거야.

 

 

 

 이 남자의 조각상을 보고 나는 단박에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지? 브이 포 벤데타는 참족이었던 거야 ㅋㅋㅋㅋㅋ

조각상을 보아하면 많은 장식을 하고 있어서 꽤 지체 높으신 양반으로 보인다.

 

 

 

 저 셈세한 무늬와 역동적인 모습의 사람들.. 감동... 근데 인도가니까 이 정도 조각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더라. ㅋ

 

 

 나는 이런 거에 굉장히 끌리는 편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일상을 조각으로 남겨 놓은 것들.

그 형태와 모습이 매력적이다. 이 하나의 조각으로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

저들의 이름과 마을, 살아가는 이야기, 참족의 전쟁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옆에서 노인이 악기를 들고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노래하겠지.

 

 

밀림의 유적지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박물관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으니 생경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건 도대체 무슨 조합이냐. ㅋㅋㅋㅋㅋ

그냥 막 올려놨어.

 

 

참족들이 1800년이라는 긴 시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역할도 컸다.

비옥한 평온과 광물이 풍부한 산맥이 함께 있고 무역을 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항아리 가득 넣어두었다. 이걸 보면서 든 생각은... 그래 죽으면 아무소용없어 돈 열심히 써야지 하는 생각. ㅎ

 

  

 

 

 

 돌조각이 아닌 유물들도 조금 있다. 그래.. 오래 남길 수 있는 것은 돌에 조각을 해야하는 거였어.

0과 1로 이루어진 블로그 따위 클릭 한 번으로 다 날라가는 걸. 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자!.....ㅋㅋㅋ

 

 

 

 

 참파 왕국에도 왕이 있었다. 베트남의 공부가 참파의 왕과 정략결혼을 했는데 왕이 죽었다.

근데 참파에는 고위층 사이에 부인을 죽은 남편과 함께 순장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공주는 베트남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 일로 참파와 베트남 사이에 다시 전쟁이 났다.

 

 

 타라 여신의 청동상이다.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로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타라여신은 특히 티벳에서 크게 섬겨지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생들을 가엽게 여겨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타라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살짝 이야기가 다르긴 한데 골격은 비슷함 ㅋ) 그래서 불교에서는 타라여신이 중생을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여신으로 그려진다.

 

 

아.. 정말 ㅋㅋ 부리가 나온 새의 다부진 표정! 맘에 든다. 이 녀석도 나름 신일 텐데.

 

 

 

참박물관은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뭔가 유적이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참파의 유적지를 찾지 않은 내게는 너무나 좋았던 박물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