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익숙한 이야기의 한계를 극복한 강렬한 이미지

 

소포클래스가 쓴 이 이야기는 2천년이 넘는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야기다. 즉 예수보다 오래된 이야기다. 문학과 심리학 수업에서도 자주 들을 수도 있었다. 매년 무대에 오르기에 연극으로 몇 번 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익숙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다시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비극적인 이야기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이기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 장면과 그의 딸이 그를 따르는 장면등 일부 장면을 생략하고 독특한 무대구조로 이 익숙함을 상쇄하려고 했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테베 시민들의 눈물을 만들던 백묵은 무대 한가운데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잔인한 삶을 결정짓게 된 세갈래 길을 만든다. 그것은 흡사 사람 인人 처럼 보인다. 세상에 놓여진 세갈래길. 그 위에 오버랩되는 사람 인. 그 한 가운데 오이디푸스는 선다. 그것은 사람이란 결국 운명이 만들어 놓은 것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인간은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이미 그 순간부터 운명과 신은 인간의 미래를 모두 정해 놓은 것처럼 보이거든.

   

 

 운명론은 왜 이리도 슬픈가. 인간을 너무나 무기력하게 만든다. 왠만한 운명이라면 체념이란 단어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누가 그것을 체념이란 단어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오이디푸스는 괴로워하고 싸웠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운명이 놓아 둔 길을 지나 세갈래길에 서게 만드는 것을 도울 뿐이었다.

 

 

무대디자인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무대디자인이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벽면에 수십개의 쇠파이프가 달려있고 그 위에 코러스 역할도 하는 시민들이 매달려 있다. 그들은 극 내내 그곳에서 연기를 한다.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그 벽면엔 해골들이 그려져 있는데 백묵으로 더 강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고통받는 테베의 울음소리에 그 얼굴에 눈물이 그려지기도 한다. 중심 인물들이 서 있는 메인 무대도 기울어져있기는 매한가지다. 무대는 관객을 향해서 기울어져 있고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삼각형의 정점은 권력의 정점과 통한다. 극 중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때 굳이 무대를 거슬러올라 삼각형의 꼭지점에 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기울어진 벽과 바닥은 무대위에 있는 모든 배우를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은 사실 평평하지 않다. 기울어진 세상은 언제든 닥쳐올 운명의 잔인함 때문에 자칫 굴러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끝도 없이 떨어질 지도 모르겠다. 기울어진 세상을, 무대를 인간이, 배우가 어찌 할 수 없듯이 인간의 삶은, 이미 예정된 운명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 이야기 전부가 무대디자인에 담겨져 있다.  

 

 

아침에는 아비를 먹고

점심에는 어미를 먹고

저녁에는 제 두 눈을 파 먹는 동물.

 배우들의 연기, 의상, 조명과 음악등 모두 만족스러웠다. 단지 내 자리가 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단지... 내게 오이디푸스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극을 보면서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이야기의 신선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크게 극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가 그의 두 눈을 뽑는 장면에서 단지 조명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물감을 채운 둥근 석고(?)를 폭발시킨 것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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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8 23:54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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