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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캄보디아 여행

캄보디아 뚜얼슬랭 박물관

뚜얼슬랭 박물관

 

끔찍한 캄보디아 현대사의 한페이지

 

 뚜얼슬랭 박물관은 과거에 고등학교로 사용되던 곳을 크메르 루주가 집권한 후에 보안대 본부로 사용된 건물이다.

지금은 그 끔찍했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뚜얼슬랭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보존되고 공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군사독재시절 남산에 있는 건물이 이런 역할을 했었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크메르 루주가 학살한 자국민이 무려 150만명이다. 이건 단순히 권력을 잡고자 한 게 아니라 미친거다. 제정신이 아닌게지.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다수가 크메르족이다. 크메르 루주라는 것은 붉은 크메르라는 뜻을 가졌는데

폴포트가 우두머리를 잡고 4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고작 4년이라는 기간동안 엄청난 범죄를 일으켰는데 그 일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불리게 만들게 한다.

결국 1979년에 베트남군와 캄보디아에 있는 반군이 힘을 합쳐서 크메르루즈를

몰아내지만 완전히 제압하지 못해서 90년대 초까지 내전이 계속되었다. 

몇 년전에 크메르 루즈 정권을 이끌었던 이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크메르루주가 집권해서 끔찍한 폭력을 휘두리기 전에도 캄보디아인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옆, 베트남이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이 캄보디아의 공산당과 북베트남이 손을 잡고 있다면서 캄보디아에 50만톤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이때 6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의 힘있고 잘 사니까 전범재판에 불려나올 일이 없다.

 

 

 엄숙한 곳이므로 웃지 말라는 표지판.

무서운 마음으로 있었는데 이거 보고 '풉'했다는... 왜 이렇게 익살스럽냐 ㅎ

 

 

 가난한 나라임에도 이렇게 큰 건물들을 현재 이용하지 않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모두가 미친게 아니기 때문에 크메르 루주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없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크메르 루주 정권 편에 서서 가해자가 되었다.

 

  

 뚜얼슬랭 박물관은 크게 건물 4개로 이루어져있다.

기본적으로 학교 건물이었으므로 복도와 교실들처럼 나뉘어진 방이 있다.

건물들마다 방의 크기와 용도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찼던 곳은 고문받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한 곳이 되었고

지금은 침묵으로 가득하다.

 

 

  

  학생들이 운동을 하던 곳에 크메르루즈는 교수대를 세웠다.

 

 

 그냥 텅 빈 공간들이 있었던 첫 건물을 지나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학살 당한 사람들의 사진과 옷, 유골까지 전시되어있다.

 

 

 

 정말... 어린 아이들이다.

 

 

 

 

 킬링필드 현장. 킬링필드를 도는 투어상품도 있다.

물론 학교에서 단체로 뚜얼슬랭 박물관과 킬링필드를 견학형식으로 가겠지만(가겠지?) 내가 갔을 때는 정말...

캄보디아 사람들이 없더라. 전부 외국인들 뿐이었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보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일까...

 

 

 

 복도에 서서 운동장을 내다보면 정말.. 평온해 보인다.

나무들에 꽃이 펴있고 사람들은 한가로이 거닐고. 언제나 권력자가 미친짓을 하려고 하면 분노할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

힘 없는 사람이 미치면 자기만 정신병원에 가면 되는데 힘 있는 사람이 미치면 멀쩡하던 수 많은 사람이 미쳐야하는 일이 생긴다.

 

  

 

각 건물 앞에서 건물이 사용되었던 용도가 쓰여있다.

 빌딩 C

1층. 벽돌로 이루어진 개인감방

2층. 나무로 이루어진 개인감방

3층. 집단 구금소

 

 

 

  

 

 

 텅빈 교실 가운데 의자 하나는 왜 놓여있을까.

 

 

 150만명이 총과 칼에 학살되고 질병과 굶주림에 죽게 만들었던 크메르 구주의 지도자들.

 

 

  

 앞에서도 언급했던 소시민들이다.

피해자가 되는 대신 크메르루즈의 편에 서서 가해자가 되었던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정말 가해자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너무나 큰 박해였기 때문에 캄보디아 사람들의 정권에 대한 분노는 굉장히 컸을 것이다.

이를 감시하고 일상에서 억압하기 위해서 작은 마을과 지역별로 사람들은 선발한 것이다.

그 숫자는 굉장히 많다. 그들을 처벌하려고 하면 다시 대학살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과거 정권과 관련되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캄보디아는 그들을 포용하기로 한다. 왼쪽의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의 사진이고

오른쪽의 농부가, 어부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니다.

 

 

 

 운동장에 놓여있는 교수대와 항아리는 이런 용도로...

 

 

 

  

 

 투어를 신청하면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까지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
뚜얼슬랭 박물관 안에 가게도 있다. 가게에는 킬링필드와 관련된 다큐와 영화, 책들을 많이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