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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미얀마 여행기

아난다파야, 여덞 인도 스님이 왕에게 만들어준 환영

아난다파야

 여덟명의 인도 스님이 찾아와 짱싯따왕을 찾아와 아난다파야는 지어졌다

 

"어느 날 여덟 명의 귀한 스님들이 왕궁에 탁발을 왔다. 왕은 그들의 발우에 쌀을 채워주고 나서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스님들은 대답했다. '간담마더나Gandhamadana 산에서 왔습니다.'

짱싯따Kyanzittha 왕은 신심이 깊었고, 그들에게 우기에 이용할 수 있는 사원을 지어주었다.

그들이 머무는 우기 3개월 동안 짱싯따 왕은 매일 그들을 자신의 왕궁으로 초대했다.

어느 날 왕은 그들에게 난다물라Nandamula 동굴의 모습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그것을 아난다Ananda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아난다가 만들어졌다. 여덟명의 인도인 승려들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왕의 눈앞에 나타나게 했던 그것은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있는 동굴 사원을 본뜬 것이었다. 더위 때문에 바싹 마르고 타들어가는 평원에 눈으로 덮인 동굴을 세웠으니 꿈이 현실이 되었다.

* G.H. 루스 G.H. Luce. 페마웅띤 Pe Maung Tin의 <유리궁전 연대기>. 전체 『미얀마 산책』 발췌

 

아난다 파야는 올드바간의 입구라 할만한 타라바 게이트 들어가기 전에 있다.

딱히 이곳을 먼저 가려던 것은 아니고 사람이 길가에 식당들이 꽤 보이기에 '아, 드뎌 본격적인 올드바간이구나'싶어서 들어갔더니 아난다 파야였다. ㅎ

 

 

 아난다파야는 바간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이다. <미얀마 산책>의 이야기처럼 짱싯따 왕에 의해서 지어졌는데 1091년의 일이었다. 인도에서 온 승려들에 의해 아난다파야의 모습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아난다파야는 인도 벵갈 지역에 있는 사원들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 몬 양식이라 한다. 아난다파야는 동서남북으로 입구가 있고 높이가 51미터이다.

 

 

 

부처의 표정이 보는 위치에 달리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입술을 뚱하게 내밀고 화난표정이지만 멀리서 보면 한껏 웃는 표정이다.

그것은 안쪽 통로는 승려들이, 바로 그 바깥 통로는 왕이 다닐 수 있는 참배 통로였기 때문이다.

부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당시 힘있던 사람들로 그들에게 부처는 엄격했던 것이다.

반면 가장 바깥쪽 통로는 일반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로 그들에게 부처는 한없이 인자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면에 커다란 부처상이 하나씩 서 있다. 작은 부처상이야 지천이다.

 

 

 

남쪽 방향에 있는 가섭불이다.

가사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 부처의 자비를 나타낸다고 하던데... 왜?

 

 

부조보다는 그림을 좋아라한다.

 

 

 

나 혼자서도 사진 잘 찍고 있는데 청소하던 아저씨가 나타나서 여기서 찍어라 저기서 찍어라. 여기서 보면 정말 예쁘다는 둥 한다. 분명 이런식으로 가이드하려고 하다가 돈 달라고 하겠지? 됐다고 난 필요없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네.

그리고 결국 돈 달란다. 뭐 막무가내로 달라는 건 아니고 팁 좀 주면 안되냐고. 그래서 캄보디아 돈을 줬다. 이럴 때 쓰려고 여행다니면서 남은 돈들을 가지고 다니거든. 근데 아저씨 정말 좋아한다. 돈이 예쁘다고. 아저씨가 너무 활짝 웃으면서 좋아해서 덩달아 나도 기분 좋아지고 말았네. ㅎ

 

 

확실히 아난다파야는 바간의 다른 사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푸른하늘 아래서 돌이 되어 참선하라. 곧 그대의 뒤에서 후광이 나타날 것만 같다.

 

 

 

 

 

 

 

 

아난다파야로 들어가는 큰 길에는 양쪽으로 큰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간판이 영어로 되어있고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곳이다.

그러니 한 끼를 먹을 때 3000짯은 생각해야한다.

 

 

반면 그 옆으로 천막으로 되어있는 식당이 있는데 이곳은 로컬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나는 모힝가를 주문했다. 400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