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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백두대간 탐방열차 영주편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서서히 밝아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눈 앞으로 떠오르는 것은 붉은 태양이 아닌 풍등이다. 누군가의 소망을 담은 풍등이 하늘거리며 높은 하늘로 떠오른다. 풍등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어느새 눈길은 풍등을 향한다. 보이지 않을만큼 날아올랐던 풍등은 내려올 때도 하늘거리며 내려온다. 단지 붉게 타오르던 모습은 사라지고 풍등의 형태를 간직한 검은재가 떨어진다. 그렇게 풍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일출을 놓칠 뻔했다.  붉은 태양은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들의 기쁘게 했다. 뿌연 수평선 때문에 일출을 포기하고 이미 떠난 사람도 꽤 되었다. 끝까지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만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듯 구름 뒤에서 뜸을 들이다 나온 태양 덕에 정동진역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명을 다한 듯 하다. 


 


지난 토요일밤 11시 30분 서울역에서  백두대간 탐방열차가 출발했다. 밤새 기차에서 선잠을 잔 여행객들은 새벽 5시 정동진에 도착한다. 즐비한 순두부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새까만 바다 너머로 아침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한눈에 삼각대가 즐비한 곳이 일출을 보기 좋은 포인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출과 같은 하루임에도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무언가 특별한 것인양 기대에 부푼다. 일출을 본 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임을 깨닫게 되는 것인지 다시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깜빡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일출이 사람들에게 주었던 '어떤 것'은 밤새 기차에서 선잠을 잔 사람들의 피로함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나보다. 그새 산골을 철커덩거리며 천천히 달리던 열차는 승부역에 도착한다. 이곳에 왜 기차역이 있을까 싶은 산속이다. 역설적이게도 깊은 산속에 우두커니 놓인 기차역은 인기가 많다. 삶을 위해 기차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여행을 온 사람이 백에 아흔아홉이다. 차가 닿지 않는 승부역에 사람들을 쏟아냈던 기차는 다시 그들을 주워담고 떠난다. 승부역은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적막함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기차가 영주역에 닿으면 사람들은 모두 내려 버스로 옮겨탄다. 은행나무 단풍길이 아름답다는 부석사에 내리면 추운겨울 앙상한 나무들과 눈덮힌 산이 사람들을 기다리지만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때 세워진 절이다. 무려 천년이 넘은 사찰인 것이다. 무량수전을 비롯한 5개의 국보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문화해설사는 부석사 곳곳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기차 가득 타고 온 사람들이 많다. 번잡한 절은 사찰의 매력을 경감시킨다.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해 주변을 둘러본다. 부석사는 큰 절이다. 산 기슭을 타고 뒤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조사당과 선비화, 석조여래좌상을 만나게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보다 사람들이 없는 뒷쪽 작은 건물을 가득채우던 돌로 만들어진 석가모니가 더 인상적이었다. 


 



부석사와 가까운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소수서원은 150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원이다. 서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공부를 하는 곳이다. 소수서원 앞에는 강이 흐르고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저 멍하게 그것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곳이다. 웬만한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선선한 바람에 풍경을 바라보고 재밌는 책을 있으며 이곳에서 한평생 살아도 될 거라는 생각을 할 것만 같다. 어쩌면 재밌는 책(?)이 없어서 입신양명하여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다.



소수서원을 지나면 선비촌이 나오는데 민속촌같이 꾸며진 곳으로 특별한 인상을 주는 곳은 아니다. 단 하루임에도 긴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마지막으로 풍기 인삼시장으로 향했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의 느낌이 물씬 나는 풍기에 높다랗게 큰 인삼판매 건물이 있고 그 주위 길가로 작은 인삼, 홍삼 가게들이 즐비하다. 겨울 해는 짧다. 어두운 뒷골목을 어슬렁거려봤자 특별한 것은 없다. 풍기역 앞에서 인삼 음식을 군것질하는 것으로 꽉찬 하루의 여행이 끝난다.


 




 

이른 새벽 기차가 정동진역에 도착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정동진 역 앞에는 많은 순두부이 있다. 아무래도 순두부로 유명한 강릉이 가깝기 때문인 것 같은데 24시간 영업하는 집이 많다.


풍등을 구매해서 이름과 소원을 적으면 불을 붙여준다. 제대로 펴서 날리지 못하면 바로 코앞에서 불타고 만다.



날이 밝아오지만 수평선으로 자욱한 구름때문에 사람들은 반쯤 포기하고 넋 놓고 풍등을 바라보면 어느새 해가 떠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에는 일명 '고소영 소나무'도 유명하다.


정동진을 떠나 산 속을 달리는 기차의 창 밖으로 난데없이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굉장히 싼 임대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눈 내린 텅 빈 논 사이로 노루들이 뛰어다닌다.


부석사의 외진 곳에 닫힌 건물 문을 열자 그 작은 건물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석상들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