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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중국 서안 병마용갱 2호갱, 시간은 그들을 조각내놓았다.


전시관을 나와 2호갱으로 향했다. 2호갱은 농부들에 의해서 1호갱이 발견 된 후에 1호갱에서 20미터 거리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니 숫자는 그저 발견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 부서진 채 쓰러져 있는 많은 토기병사들을 볼 수 있으며 발굴을 하다만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연출 된 것 같은 이리 저리 나뒹구는 조각난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부서진 토기병사들은 진나라를 침입한 항우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 상당하고 홍수로 인한 파괴도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도굴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제는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엄청난 크기의 땅이 하나의 나라가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중국 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작은 땅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위치에 있는 땅이었다. 수 많은 민족을 힘으로 눌러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그 후에 중국은 깨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하나의 나라로 존재한다. 중국에 존재하는 각 민족이 각자의 나라를 구성하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유럽은 작은 나라 수십개로 나뉘어져있고 불과 20년 전에 EU로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졌다. 그럼에도 잡음이 많다. 서로의 다름이 갈등으로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그 큰 땅에 하나의 국가로 존재함과 동시에 수 많은 민족으로 나뉘어져있다. 다른 당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 일당체제로 불만을 억누르고 있다. 진시황제와 뭐가 다르지? EU의 갈등과 중국내 민족간 갈등을 비교할 수 있을까? EU 안의 각각의 나라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서로의 주장을 할 수나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 어떤 '다른' 발언을 할 수 없다. 티벳은 여전히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고 내몽골과 서북쪽 지역도 힘으로 누르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잘 살고 있다면 다른 민족이라도 갈등과 대립은 표면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EU의 갈등이 경제적 수준차에서 기원하는 경우가 큰 것처럼 중국도 그렇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고작 15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진시황제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예수보다 오래된 기원전 이야기에다가 제대로된 기록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확한 사료가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병마용갱, 만리장성 같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들을 남겨놓았기에 그에 대한 상상력은 무궁무진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단지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에 지나지 않는데 조각난 채, 흙 속에 쳐 박힌 채 존재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감정이입이 되는 것만 같다. 진시황제는 자신의 릉과 이 병마용갱을 만드는데 70만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수은이 흐르는 강을 두고 수 많은 보물과 병사를 두었다고 한다. 물론 사마천의 기록은 그의 죽음 후 100년이 지난 후의 것이기에 100% 빋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바로는 도굴을 피하기 위해서 인부들과 장인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근데... 사실 훔쳐갈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골동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겠지만 옛날에는 그저 흙으로 만든 큰 인형에 불과한 것이잖아. 금은보화도 도자기도 아닌 그저 흙으로 만든... 그러니 2천년 동안 누군가 발견했다면 이 토기인형들은 놓아두고 그들인 들고 있던 무기와 함께 묻었을지도 모를 보석들만 가져갔을 것이다. 사마천의 기록처럼 이 일대에는 실제로 토양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은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2호갱의 복도에는 온전한 상태의 토기 병사들이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있다. 이렇게 성한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운데 사진을 보면 허리쯤 갑옷에 빨간 색이 보인다. 처음 병마용갱이 발견 되었을 때는 병사들에게 색채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2천년간 채색이 남있었는데 발굴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색이 날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발굴을 늦추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뭐... 중국에 발굴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도 하겠지만.




처음 병마용갱을 발굴했던 이들의 환희는 엄청났을 것 같다. 이천년전 병마용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색까지 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그 색들이 바래져 사라졌을 때는 더 경악했을 것 같다. 이걸 다시 파 묻을 수도 없고 당황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