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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단종의 공간에서 영월여행

 

대통령 선거가 단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다. 대통령이 되고자 처음엔 정책을 내세웠지만 결국에 헐뜯고 있다.

최고의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면 무엇을 해서라도 그것을 잡고 싶을 것이다.

단종의 숙부도 그랬나 보다. 대선과는 달리 내놓고 왕이 되고자 왕을 비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카인 단종을 힘으로 왕위에서 끌어내렸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불안했겠지.

정당하지 못한 이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래서 열입곱 어린 단종을 죽인다.

 

 

영월여행 1박 2일의 둘째날은 단종의 공간을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무덤인 장릉, 단종이 꿈에서 보았다는 그의 원당인 금몽암, 원찰인 보덕사를 둘러보았다.

아침에 간 곳은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면서 영월로 유배되어 갖힌 청령포다.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1577-0545 
 매표시간 : 9시 - 17시

 둘러보는데 40분 - 1시간 소요

 

    입장료
  어른 개인 2천원 단체 16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개인 1200원 단체 800원
 *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삯이 포함된 가격임
 * 군민은 50% 할인 됨
 * 국가유공자와 그 배우자, 장애인, 65세 이상 어르신은 200원
 * 보호자와 함께한 6세 이하는 무료
 * 단체는 삼십명 이상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쌓여있고 뒤쪽은 절벽인 육육봉으로 되어있어 천혜의 유배지로 불린다. 사실 단종이 이곳에 머문 것은 단 두달 뿐이다.

유배되었던 그 해 여름 홍수로 인해서 청령포가 잠기는 바람에 영월의 관아로 처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령포의 지형적인 모습과 쫓겨나 영월에 처음 머물렀던 곳이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게다가 단종이 머물렀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서 단종의 삶을 떠올리게 하면서 쓸쓸해지는 곳이다.

 

 

 

이 강을 건너지 못해서 갖혀있었나 할 만큼 강 폭은 넓지 않다.

하지만 이 강을 건넌다고 해서 단종이 갈 수 있는 곳이 있었을까?

연민으로 그를 돕는 것만으로 삼족이 멸할 역적이 되는 것인데 누가 연민만으로 왕이었던 어린 소년을 도울 수 있었을까.

 

단종어소. 단종이 머물렀던 본채, 관노와 궁녀들이 살았던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인형으로 단종과 그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두었다. 처음부터 왕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

그저 양반댁 자제로 태어나 글이나 읽으며 결혼하고 자식낳고 잘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단종은 힘 없는 왕이 될 바에 왕이 아닌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누구를 원망했을까?

자신을 내쫓고 죽음에 이르게 한 숙부? 열한살의 자신을 남겨두고 죽어버린 아버지 문종왕을? 힘이 없어 쫓겨나고 죽어야했던 자신을?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뜻하지 않게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에 죽음을 맞이한 단종.

그의 시신은 청령포에 둥둥 떠있었다. 아무도 쉽게 손 댈 수 없었던 단종의 시신을 엄흥도가 몰래 가져다 땅에 묻었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한양을 보며 그리워했다는 노산대와 망향탑 돌무더기가 있다.

유배되어 영월로 내려오는 길에 그는 이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알았을 것 이다.

아니 상왕으로 물러서는 순간? 아니면 그 전 숙부가 계유정난을 일으켰을 때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너무 일찍 죽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했던 소년은 몇 년간을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야했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은 결국 오랜 공포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시간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단종이 죽지 않는 길은 다시 왕이 되는 것 뿐이었을 테니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관음송은 천연기념물로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다. 밑에서부터 둘로 나뉘어져서 같은 높이로 자라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령포 전체에 소나무가 많이 잘 조성되어있다.

걷기 좋은 고즈넉한 곳으로 조성되어있지만 이곳에는 단종의 이야기가 있어서 스며져있어서 고요하기만 하다.

 

 

 

 

 

 단종의 꿈 속에 등장한 암자, 금몽암

 

 

금몽암의 본래 이름은 지덕암이었다. 통일신라 때 처음 지어졌으니 무려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의 금몽암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태워졌다가 영조 때 다시 지어진 것이니 250년 정도 된 것이다.

단종이 꿈 속에서 이 암자를 보았다고 해서 금몽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 이곳에 있는 암자를 본 적이 있었던 걸까? 영월 산 속에 있는 암자를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어떤 산 속의 암자를 보았을까?

알고 있는 암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신하에게 '내가 이런 모습의 암자를 꿈 속에서 보았으니 찾아라'고 했던 걸까? ㅎ

금몽암은 한 때 단종의 진영과 위패를 모시던 원당이었다가 단종이 복위되면서 보덕사로 그 역할이 옮겨졌다.

 

 

 

  

 

 

 군왕신으로 모셔진 단종이 있는 보덕사

 

 

 

여행자들이 보덕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특이하게도 해우소다.
120년이나 되어 희소한 건물이라는 사찰의 해우소는 아직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왠만큼 급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망설여지는 공간이더라.

 

 

 

 

악령이 절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사천왕.

불교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기전 우리에게는 민속신앙이 있었다.

불교와 기독교, 카톨릭이 종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금도 점집이 셀 수 없이 많듯이 민속신앙은 사라지기 어렵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이를 포용해서 절 안에 삼신당이 있다.

보덕사의 삼신당에는 단종이 모셔져 있다.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죽음을 당한 그는 영월에서 신이 되었다.

 

 

 

우리의 무속 신앙에서는 한을 품고 죽은 인물들, 특히 유명한 인물이 신으로 모셔지는 경우가 많다.
최영 장군신을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단종 또한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단종은 죽은 후에 민가에서 무속신앙과 어우려져서 신령, 산신, 서낭신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삶을 살다가 죽어서 강을 떠다니며 시신도 수습되지 않았던 단종이지 않은가.
그는 신격화 되어서 군왕신, 노산군지신으로 불리워지며 모셔졌다.
특히 영월과 태백, 정선 등에서 수호신으로 받들여졌는데 단종의 고유제, 서낭제, 산신제도 모두 이것의 일환으로 열린다.

 

 

신이 되어 사당에 모셔진 단종.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신이 되어버린 단종.

힘있는 왕들을 오만하게도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서 무단히도 노력한다.

근데 힘이 없어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했고 죽임까지 당한 단종은 신이 되었다.

 

 

보덕사는 단종이 모셔져 있다는 것 말고도 꽤 인상적인 사원이었다.

독특한 조각물들이 마치 미얀마의 낫처럼 즐비했다.

 

 

 

 

 

 단종이 잠든 곳, 장릉

 

 

 

 

장릉은 왕의 능 같지 않게 형식과 규모가 굉장히 단촐하다. 단종이 복권되었지만 그의 흔적들은 하나같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 쓸쓸하기만 하다.

 

단종의 장릉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

 ☏ 033-372-3088

 관람시간 : 9시 - 18시

 소요시간 : 약 40분 - 1시간


 어른 개인 1400원 단체 1200원
 소인 개인 1200원 단체 800원
 * 군민은 50% 할인
 * 단체는 30인 이상

 

 장릉을 참배하면 직장인은 영전하는 기회를 얻고
 정치인은 당선되게 되는 영험함이 있다고 한다.
 단종 제향시 진설된 제물이 아들은 얻는데 좋다고 한다.

 

 

장릉은 참도가조차 일반적인 모습과 다르다. 참도는 일자로 길게 뻗아있어야하지만 장릉은 ㄱ자로 꺾여 있다.

애초에 이 땅 자체가 왕릉으로 택지된 곳이 아니어서 능만 언덕위에 있고 다른 건물들은 아래쪽에 배치되어있다.

조선왕릉 42기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1박 2일의 영월여행을 끝내고 단종이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한양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온다.

단종이 21세기에 태어난 열일곱 소년이었다면 앞에서 이어폰을 끼고 여행가방을 짊어진 소년처럼 한양행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겠지.

다음 영월여행은 그의 유배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여행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