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날아드는 가족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황제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인물로 알려진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그는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 황제의 자리에 군림했다. 그는 86세에 1차 세계 대전 중 사망했다. 백발의 노황제로 존경받던 인물인 그는 긴 삶과 황제로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황제에게는 1남 3녀의 자식이 있었다. 그런데 딸 조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그리고 요제프의 외아들인 황태자 루돌프는 31살에 애인 마리 베체라와 권총자살을 했다. 그 후 1914년 6월 28일 황제를 이어받게 된 조카 페르디난트와 조카 며느리가 사라예보에서 저격당하게 된다. 이 일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한발의 총성이다. 그리고... 그를 떠나 바람을 피웠지만 요제프가 평생을 사랑한 왕비 시시괴한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요제프의 아들 루돌프의 죽음은 아직도 많은 의혹이 남아있다. 그에게는 황태자비 스테파니가 있었고 알려진 애인도 있었다. 그런데 루돌프는 17살 베체라와 함께 죽은 것이다. 물론 루돌프는 그 동안 아버지인 요제프 황제와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래서 프란츠에게 이 일은 더 큰 충격이었다.
자신이 아들을 너무 몰아부쳐서 죽은 것이 아닌가하는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다. 재임기간 중 가족사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해 나갔다. 이면지를 활용해서 공문서를 작성할 정도로 근검절약했다는 일화도 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1848년 왕정을 전복하고자 한 민중봉기인 3월혁명이 일어나자 도망간 큰아버지를 대신해서 황제에 오르게 된다. 사촌동생인 엘리자베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흔히 시시로 불린다. 요제프가 시시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울었다고 한다. 당시 엘리자베트는 유럽을 대표하는 미인이었고 프란츠 역시 건장한 체격의 황제였기에 세간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문제는 이 둘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다. 요제프가 국민에게 사랑 받았던 것은 검소하고 끊임없이 일하는 워크홀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시시는 노는 것과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황족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도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시 집안은 대대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갈등이 생기면서 시시도 정신적인 문제를 보여서 요양을 하면서 궁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궁을 떠나 있는 동안 시시는 헝가리 귀족 안드라시 귤라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궁에 있는 요제프를 떠나있는 시간은 더욱 더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뜨럽게 헝가리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시시만을 사랑했다. 시시가 그런 황제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소개해준 여자와의 관계도 그저 친구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황제 가족의 비극은 끝일까? 아니다. 그의 동생 막시밀리안1세는 1867년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1916년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전쟁중 사망하게 된다. 존경받는 황제로 장수했지만 아내와 아들, 딸, 동생, 조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봐야겠던 요제프 황제.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했던 일중독의 그였기에 장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너무 슬프다.

문득 떠오르는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 동생과 조카까지...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주위 사람을 먼저 보내야하는 일이기도 한가보다.

 

Posted by 어바웃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