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릉은 희릉, 효릉, 예릉 이렇게 3개의 릉과 의령원, 효창원, 소경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양시여서 고양시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소풍으로 많이 갔다고 하는데... 고양시에서 초,중,고를 나온 단 한번도 서삼릉으로 소풍을 온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북한산에 갔던 기억을 나는데 다른 곳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난해 영월에서 본 단종의 장릉 이후 처음보는 조선 왕릉이다. 조선왕릉은 모두 42기로 수도권 이곳 저곳에 펼쳐져 있음에도 천년전 신라의 왕릉을 더 자주보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앞으로 조선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왕릉을 하나씩 보러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모습이 비슷비슷하기에 특별한 모습을 한 곳만을 추려서 가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서삼릉 또한 조선 왕릉이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서삼릉이라는 이름은 왕이 있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해 있는 3개의 릉이라는 점에서 붙여졌다.



서삼릉 입구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두개의 묘가 앞 뒤로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효창원과 의령원이다. 효창원조선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 묘소이다. 문효세자(1782~1786)는 의빈 성씨의 소생으로, 1782년(정조 6년)에 태어나 5세의 어린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44년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의령원조선 영조의 아들 장조(사도세자)의 제 1자 의소세손의 묘소이다. 의소세손(1750~1752)은 이름은 정이며 3세의 어린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중앙여고 내)에 있었으나 1949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비문의 글씨는 영조의 어필이다. 두 개의 모두 어린 나이의 죽은 왕의 자손들이며 이장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위생관념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어렸을 때 죽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왕족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삼릉 팜플렛에 쓰여있는 서삼릉 추천 관람코스는 '매표소 -> 희릉 -> 예릉 -> 효창원 -> 의령원' 이지만 서삼릉이 크지 않고 꼭 그 코스로 돌아야 할 이유도 없기에 반대로 돌았다. 예릉조선 25대 철종과 그의 비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이다. 철종 바로 전 왕인 헌종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승하하자 대왕대비가 철종을 왕의 자리에 앉혔다. 그 때까지 철종은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어서 19살까지 살았다. 왕이 아닌 왕족이 권력의 변방으로 쫓겨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시골에 살던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왕이 되는 것은 정말 영화같은 일이다. 철종은 그렇게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촌부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되어버렸다. 갑작스레 왕이 된 그가 19세기 조선 왕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치는 썩을대로 썩어 있었고 세력이 없는 왕은 힘 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다. 철종은 자포자기한 것인지 농부였다가 이 정도 사니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정치는커녕 여색을 즐기다 병에 걸려 죽고 만다. 바로 그 철종의 무덤 앞에 섰다.



왕릉은 모두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제대로 공부해두면 다른 왕릉을 찾았을 때도 쉽게 구조를 파악하고 함께 간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 금천교는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금천교를 건너면 홍실문이 나타난다. 홍실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살문 오른쪽에 배위가 있는데 배위는 왕의 제사를 모실 때 우선 배위에서 절을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홍살문에서 가운데 보이는 건물인 정자각으로 향하는 참도는 신도와 어도로 이루어 지는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라고 한다. 어도는 약간 낮은 길로 임금이 다니는 길이다. 정자각은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집으로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황제는 한 일자 모양이다. 정자각 오른쪽 위로 비각이 있는데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으로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갑자기 왕이 되어버린 19살 청년은 설레임과 두려움에 사로잡혔겠지? 피 뜨거운 청년이었던 그는 왕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되 권력이 없음을 알았을 때 꽤 큰 상실감을 느꼈겠지?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극복한다. 철종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 관한 소설을 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철종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로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쓸쓸하게 끝나는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다. 




희릉의 모습도 예릉과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희릉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정경왕후는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1506년에 중종의 후궁인 숙의로 책봉되었고 정비인 단경왕후 신시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1515년 세자인 인종을 낳은 후 엿새 후 산후병으로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그녀의 나이 고작 스물 다섯살이었다. 조선의 여인들은 그것이 왕비라고 해도 주어진 삶을 살아야했다. 그녀들은 행복했을까?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했을까? 사실 그 삶에 대한 의문 조차 생각치 않을 시절이기에 어쩌면 행복했을 지도 모르겠구나.



서삼릉에 있는 인종과 그의 비 인성왕후 박씨의 능효릉소현제자의 묘 소경원은 비공개 지역이어서 일반인은 볼 수가 없다. 비공개 지역에는 효릉과 소경원 외에도 많은 태실과 왕자공주묘, 후궁묘, 폐비윤씨의 회묘가 있다. 희릉의 주인인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이다. 아들과 어미가 바로 지척에 묻힌 것이다. 스물 다섯에 자신을 낳고 엿새만에 죽은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 인종도 서른의 나이가 죽고 만다. 왕위에 오른지 8개월만의 일이었다. 그가 죽은 후 문정왕후의 자식인 명종이 왕이 되었기에 그녀에게 독살되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서삼릉 관람정보 


 관람시간 9:00 ~ 17:30(하절기 18:30까지). 매주 월요일 정기휴일.

 관람소요시간 : 약 1시간

 관람요금 : 대인 1천원. 그외 무료. 한복 착용자 등도 무료.

 

 서삼릉 해설사 운영안내 횟수 : 1일 2회
 시간 : 10시 30분, 14시 (관람객 요청시 수시로 운영함)
 내용 : 조선의 국장제도, 조선왕릉(서삼릉) 능제 등
 * 단체관람의 경우 예약(031-962-6009)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찾아가는 길

 

 서울 -> 1번 국도 파주방면 -> 지하철 3호선 삼송역 -> 일산 방향 좌회전 -> 농협대학 입구 우회전 -> 서삼릉

 대중교통 : 삼송역(3호선) 5번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 041번(900원, 9개 정거장)을 서삼릉입구에서 내려 600미터 걷기 



  주변 음식점

 

 너른마당 (031-963-665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198-214) 
 메뉴 : 통오리밀쌈 48,000원 바베큐모듬 45,000원 녹두지짐 12,000원 접시만두 12,000원 우리밀칼국수 8천원 떡만두국 8천원

 서삼능 보리밥 (031-968-5694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124)  
 메뉴 : 옛날보리밥 7천원 우거지수제비(2인분) 14,000원 코다리구이 1만원 녹두전/도토리묵/떡갈비/쭈꾸미볶음 8천원


  주변 볼거리


 원당 종마목장 (02-509-1682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79)

 서삼릉과 벽을 공유하고 있을만큼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서삼릉을 간다면 반드시 들려봐야 할 곳이다. 넓은 초원에 서 있는 말들을 볼 수 있다.

 오전 9시 ~ 오후 5시 사이에 이용할 수 있으며 무료다. 눈 온 후 눈 덮힌 설원 위의 말들을 보는 것도 또 다른 포인트.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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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i99 2014.01.24 12:22 신고 Modify/Delete Reply

    서오릉은 많이 다녔는데.. 서삼릉도 한번 둘러보면 좋겠네요^^

  2. 센스쉐프 2014.01.24 12:51 Modify/Delete Reply

    왕릉에 이런 통일된 체계가 있었군요. 금천교, 홍살문 등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잘 되네요. 저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왕릉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 해 줘야겠네요. 왕릉이기에 왕도가 더 높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이 있었네요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