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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중국 서안, 진시황제 병마용갱 둘러보기 첫번째 '전시관'


 서안을 대표하는 관광지를 넘어서 중국을 대표하게 된 곳이 진시황제의 병마용갱이다. 이를 보기 위해 전세계인들이 서안으로 향한다. 나 또한 서안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병마용갱을 보러 가기 위해서 이른 아침 유스호스텔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나고 서안 기차역으로 향했다. 중국 여행을 떠나오기 전 당연히 서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은 사실 서안에 있지 않았다. 서안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했고 그 버스들이 서안역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아래 보이는 파란 버스 외에도 초록색 버스 등 다른 버스도 있지만 이 파란 버스를 타기를 권한다. 가장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버스다. 처음에 갈 때는 초록색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 뻔히 8위엔이라는 가격이 적혀있는데 차장이 내게 1위엔을 더 달라고 하고는 실실거리며 웃었다. 1위엔이어서 그냥 넘어갔다. 파란버스의 경우는 갈 때는 7위엔 올때는 8위엔을 받는다. (갈 때와 올 때 요금이 다른 것도 이상하기 한데 7위엔과 8위엔이 쓰여있는 버스에는 두가지 승차권이 놓여있다. 돌아오는 차에서 중국인들이 올 때는 7위엔이었는데 왜 갈 때는 8위엔이냐고 따지자 이 승차권을 나누어주며 입막음을 했다. 그래서 승객들의 불만은 컸다.) 병마용갱을 가는 길에는 양귀비의 목욕탕이 있는 화청지를 지나서 가기 때문에 화청지를 갈 사람도 이 버스를 타면 된다. 병마용갱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이 걸린다.



병마용갱 입장료

3월 ~ 11월 : 일반 150위엔, 학생 75위엔

12월 ~ 2월 : 일반 120위엔, 학생 60위엔

입장시간 : 8시 30분 ~ 17시 30분

http://www.bmy.com.cn


입장권을 사고 1인당 5위엔을 내면 전기카트를 타고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다.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입구로 들어가면 큰 건물이 여러개 보인다. 왼쪽에 바로 보이는 것이 '전시관'이고 정면에 보이는 것이 Pit No.1 그 오른쪽에 Pit No.2 가 있다. 그리고 뒤쪽에 작은 건물이 Pit No.3이 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워서 우선 전시관으로 향했다.


1974년 서안 변방의 시골에서는 농부들이 땅을 파 내려가고 있었다. 우물을 파기위해서였다. 4미터 정도 파냈을 때 토기로 만든 인형이 나왔다. 근데 이 토기인형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땅을 팔 수록 계속 나왔고 화살과 창 등도 나왔다. 당시 고향에 머물고 있던 신화통신의 기자가 이를 보도했고 산시성은 발굴팀을 꾸려 대대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 병마용들은 깊이 5~6미터 벽돌 바닥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발굴이 시작된지 2주가 지나자 이것이 2km 떨어진 진시황릉의 유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글귀들이 발견되었다. 황제의 무덤에 함께 묻힌 부장품이 조금 떨어진 곳에 묻혀있다고 생각되어졌기에 곧 이 발굴이 끝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처음 발견되고 40년이 된 지금까지도 발굴은 계속되고 있다. 병마용갱은 230미터에 이르렀고 8천의 군사, 500마리의 말, 전차 130대가 발견되었고 지금도 주변부에서 계속 새로운 것이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미 발견된 것들을 흙더미에서 꺼내고 복원하는 것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진다. 병마용갱의 발견은 고고학자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발굴과 복원 작업을 하는 이들에 대한 과정이 담긴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때 젊은 고고학자로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발굴에 평생을 받쳤을 것이다.



흥미로운 발굴 과정에 대한 전시관을 벗어나 지하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병마용갱이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 어딜가나 북적이지만 이 곳은 장소가 협소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 곳에서는 보존상태가 좋은 마차를 볼 수 있다. 유리관 안에 들어있고 실내가 굉장히 어둡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다. 말의 크기는 실제 건장한 말들보다는 조금 작아보인다. 2천년전에 만들어져 땅에 묻힌 말과 마차가 다시 완벽한 형태를 하고 지하 유리 속에 들어앉았다. 그것들은 아직도 죽은 진시황을 호위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병사중 대표적인 형태의 병사 토기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다. 각 병사의 다른 헤어스타일과 직위에 따른 군복스타일이 눈에 띈다. 특히 서 있지 않고 무릅을 꿇고 있는 병사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더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황제의 실제 친위대원들을 하나하나 똑같이 만들어놓았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그들은 실제 살과 뼈는 100년도 되지 않아 흙이 되었겠지만 이렇게 토기로 만들어져서 아직도 살아있다. 진시황제는 인간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 토기병사들에게 영혼이라도 불어넣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왼쪽부터 중간관리, 고위관리, 기병이다. 병마용갱의 발견으로 당시의 군사조직은 물론 복장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삼국시대의 복장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추측하고 상상하는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살아있을 때는 수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진시황제인데 그가 남긴 이 유물들은 참 값지다. 물론 이것을 만들기 위해 이천년전 불행해져야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소녀상들은 Animal pit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Animal pit에는 수 많은 동물들의 뼈가 발견되었는데 황제의 사후 정원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동물들은 살아서 지하공간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죽은 후에 묻힌 것일까? 동물들도 토기로 만들지...



사실 내가 진시황제 병마용갱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재밌게도 로마 유물들이었다. 로마 박물관과 교류전을 하고 있어서 로마 유물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꽤 많은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전시회 보려면 만원씩 할텐데 비싼 병마용갱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로마 유물전도 보게 되네. 병마용갱처럼 세계문화유산이 아닌 중국의 일반 박물관들도 볼 거리가 많고 굉장히 잘 되어있는데 그것들은 무료다. 그리고 그 박물관들도 해외의 유수 박물관들과 교류전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만원 이상 내고 봐야하는 전시회들도 공짜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