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박물관은 1959년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다가 1996년 현재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다시 지어져 개관했다. 건물의 형태가 세발솥(중국 고대 청동기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상하이의 유물은 물론이고 상하이 주변(중국 남부 지역)의 유물 12만점이 보관되어 있다.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되어있는데다가 특별전도 열리는 관계로 꼼꼼히 상하이 박물관을 보고자 한다면 반나절 이상은 이곳에서 보내야할 지 모른다. 상하이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입장료는 무료(운영시간 9시 ~ 17시)이며 중국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기 때문에 도시 상하이만을 보려고 했던 이들도 막상 들려보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들렸을 때 열린 특별전은 <인상주의로 본 바르비종>으로 그곳만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었고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아무래도 박물관 자체는 무료이기에 상하이 시민이라면 자주와서 이곳의 유물들이 특별하지 않을테니 특별전만 보러오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장료 1만원은 내고 봐야하는 그런 그림 전시회가 유럽 미술관, 박물관과의 교류사업으로 무료로 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별전이 <Sterling Clark in China>였는데 1908~1909년 중국을 여행했던 서양인의 여행을 사진으로 담은 것인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진들이 많았다.


▲ 에스컬레이트로 오르내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그 동안 중국의 많은 유물을 보아왔기에 아무래도 그런 익숙한 한족의 유물보다는 소수민족의 문화가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수민속의 민속과 의복 등을 볼 수 있는 전시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박제된 인간이 아닌 실제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와 마을에 가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테지만 이미 박제된 그들만큼 철저히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21세기 중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고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21세기를 사는 지구인이라면 모두 같은 교육과 언론, 문명을 접하며 '현대인'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인류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티벳탄들이 참댄스에 사용하던 가루다 가면. 힌두교의 신들만큼 티베트의 유물들은 강렬한 느낌을 준다. 참댄스는 승무라고 볼 수 있는데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승려들인 이 가면을 쓰고 공연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생전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청나라 시대의 가면. 다양한 가면들이 전시되어있는 곳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이다. 다양한 가면들이 하나하나 인상적이지 않을 것이 없었다. 가면은 모두 얼굴이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보니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다양한 도장들. 사실 도장 자체는 흥미롭지도 않았고 예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종이 위에 찍어놓은 모습은 꽤 매력적이었다. 특히 노란 도장의 옆면에 새겨진 무늬는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종이 위에 찍은 모습은 묘했다. 근데 사실 그 부분을 찍는 건 아니잖아?



 중국의 종이와 우리나라 종이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선 인쇄매체는 보관을 목적으로 했기에 굉장히 고품질의 종이를 만들어내어서 왠만해서는 찢어지지도 해지지도 않았다고. 그래서 더 함부로 다루었고 중국은 보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아서 종이를 함부러 넘기기만 해도 쉽게 찢어지는 값싼 것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서 남아있는게 더 많다고. 굉장한 역설이다. 


▼ 남송시대에 연주하는 여인들을 그린 두루마기로 심플한 배경과 풍부한 색을 지니고 있다. 명나라 때 것으로 wen boren(1502~1575)이 8월의 산 풍경을 그린 것이다. wang chong(1494~1533)이 baoshan 여행 중 쓴 시들.



광서제가 사용했던 꽃무늬를 넣은 붉은 색 테이블과 의자. 광서제(1871∼1908)는 격변기에 3살의 나이로 청나라 황제에 올랐다. 수양대군에 의해 장악된 정권 속에 있던 고종처럼 당시 청나라는 서태후에 의해 장악되어있었다. 아무래도 근대 격변기의 동양 나라 지도자가 겪어야 하는 고난은 엄청났을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같은 개혁을 단행하려고 했지만 서태후의 쿠테타로 실패했다. 그 후 궁중에 유폐되었다가 외국 군대들이 베이징으로 밀려들어오자 서안으로 피하였다. 그 사이에 서태후가 광서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진비를 죽인다. 1901년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에도 유폐되어있다가 1908년 사망한다.  



20세기 운남지방의 여성의상들과 20세기 중반 대만의 물고기잡이 배. 소수민족 전시관에 대만의 배가 있다는 것은 참... 중국의 정책의 하나의 중국으로 대만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북한의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상하이 박물관 주변으로 인민공원, 상하이 도시계획 전시관, 상하이 미술관 등이 밀집되어있어 상하이 여행 중 하루를 보내기 좋은 곳이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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