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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난징 총통부

 

 

 난징 총통부는 중국의 근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이 청나라에서 벗어나고 근대적 국가로 변신하고 있는 와중에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 이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세력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던 것도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난징 총통부는 바로 민주주의 세력인 국민당 정부의 총통부였던 곳이다. 국민당 정부는 이 건물을 1927년~1937년, 1945년~1949년 동안 사용하였다. 중공군이 1949년 4월 23일 난징에 입성하고 하루 후인 4월 24일 총통부가 중공군에 함락되자,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완 섬의 타이베이로 옮겼다. 당시 국민당의 힘은 엄청났는데 그들 스스로 부패해서 결국은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민당 군대의 장교가 자신들의 무기를 몰래 빼내서 공산당에 돈 받고 팔아먹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하여간 그 후에 이 건물은 남경시 군사관리위원회, 남경시 유물관리위원회, 강소성 인민위원회, 강소성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강소성 인민정부, 강소성 정치협상회의 등 다양하게 활용되다가 1998년부터 난징 근대사 유적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좌) 총통부 입구, (우) 사자상 - 본래 Liangjiang Viceroy's Yamen 밖에 서 있던 것. 1929년 난징정부가 설립된 후에 이곳에 세워졌다. 이 사자상은 현대 중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의 증인이 되었다.

 

 

 난징 총통부 박물관에는 공산주의 혁명 전에 일어났던 농민 반란인 태평천국의 난과 손문의 중화민국 건국 당시의 상황과 국민당의 오류들을 지적하는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1982년 총통부(태평천국 천왕부, 청나라 양강총독서)는 전국 중점문물보호기관으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 국가 4A급 풍경구로 선정되었다. 현재 총통부는 보존 상태가 훌륭한 중국 근대의 전통 건물과 서양식 건물, 독특한 역사문화 분위기, 진귀한 유물 및 자료 전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난징 총통부 근처에 카페타운인 [남경 1912]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 카페타운과 함께 찾는 곳이기도 하다.

 


 


 난징 국민정부는 국민을 대표하여 정치권력을 행사는 기관인 국민대회를 두었는데 1946년에 제헌국회를 소집하고 1947년 1월 1일 중국 최초의 헌법을 반포하였다. 그리고 1948년을 행헌년으로 정했다. 행헌이란 민주 헌정을 실시하고 헌법의 규정에 따라 선거를 통해 총통을 선출하여 총통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1947년 11월 국민당 정부는 손과를 주임으로 한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국민당 내부에서는 선거지도위원회를 설립하여 대회 대표를 선출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일을 맡겼다. 1948년3월29일 행헌국회가 난징에서 개최되었고 1679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4월19일 국민대회에서 장개석이 중화민국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4번의 투표를 거쳐 4월 29일에 이종인을 부총통으로 선출하였다. 5월1일 대회가 폐막되었다. 5월20일 장개석과 이종인은 총통과 부총통에 각기 취임하였다. 그 후 정부조직이 구성되어 옹문호, 손과, 왕총혜, 장백령, 우우임이 각각 행정원, 입법원, 사법원, 고시원, 감찰원 등 다섯 개 원(院)의 원장 직을 맡았다.

 

 

 

 대만의 국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와 다를 바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서로 교류와 여행도 가능해졌고 무엇보다 중국의 엄청난 성장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두개의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대만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월등한 위치였는데 지금은 참 모호해졌다. 경제적으로는 중국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였고 1만 달러 시대가 왔고 앞으로 결국 대만을 따라잡을 것이다. 공산당이 무너지게 된다면 결국은 대만은 중국에 흡수 통일 될까? 마카오나 홍콩과 같은 위치가 되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한국인 그룹은 눈에 띄지 않아서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가이드마다 오른쪽에 서서 엘리베이터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건물이 생길 때 함께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인가보다. 중국의 초기 엘리베이터 중 하나겠지.


 


 

 

 

 사실 국민당 정부가 난데없이 이곳에 총통부를 세운 것은 아니다. 조선의 궁인 경복궁 뒤에 청와대를 지은 것처럼 이 곳은 육조시대의 궁성 중심지였다. 1300년대인 명나라 때 이곳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귀덕후부, 한왕부였고 청나라 때는 강녕직조서, 강남총독서, 양강총독서였다. 청나라 강희제, 건륭제가 강남 지방을 순찰하러 왔을 때 모두 이 곳을 행궁으로 삼았다. 1853년 태평천국 군사들이 난징을 점령한 후 천경으로 개칭하고 역시 도읍으로 정하였다. 천왕 홍수전은 난징에 웅장한 천왕부를 건설하였다. 1864년 청나라 군사들이 난징을 수복하고 천조궁전에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1870년에 양강총독서를 재건하였다.


 




 

 

 1912년 1월 1일 쑨원은 난징 총통부에서 초대 총통이 되었고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닌 천하 만민의 것이라는 천하위공 간판을 내걸었다. 쑨원은 중국과 대만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김구와 같은 위치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구선생은 쑨원이 중국에서 국부로 칭송되는 것과는 달리 지금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기는 하다. 게다가 북한은 공산당의 일당체제를 넘어서 1인 독재체제니까 더욱 그럴테고.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을 일으켰음에도 공산당 일당체제여서 신처럼 떠받쳐지는 인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쑨원만큼은 그 명성이 훼손되지 않은 것 같다. 쑨원은 중국이 근대화하는데 앞장선 인물이고 초대 총통이 되었음에도 강력한 군대를 가진 위안스카이가 중국을 공화제 체제로 이끌어 간다는 조건으로 총통의 자리를 스스로 넘겨준다. 중국을 위하는 인물이기더 했지만 그는 정말 정치적인 인물이었던 같기도 하다.

쑨원 동상


 

 

 난징총통부의 정원에는 새하얀 털의 선명한 오드아이 고양이가 살고 있기도 하다. 


 


 

여행 정보

 

홈페이지 : http://www.njztf.cn

요금 : 40위엔

관람 소요시간 : 40~70분

 

운영시간
3월 ~ 11월  7:30 ~ 18:00
12월 ~ 2월  8:00 ~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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