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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울주 여행]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공룡발자국 화석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에 대한 지식을 얻고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 걸어갔다. 암각화까지 가는 길은 걷기 참 좋은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 옆으로는 대곡천이 흐르고 그 사이에 반구대, 반고서원, 연로개수기, 공룡발자국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사실 막상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하면 암각화를 박물관에서보다 자세히 볼 수 없고 심지어 긴가민가 할 정도로 풍화된 모습에 실망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과 암석화가 그려진 곳의 풍경은 여행자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천년 전 선사인들도 이 길을 걸었을까? 확실한 건 조선의 선비들은 이 길을 걸었다. 우선 암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것들을 살펴보자.

 

 

 

 

 반구대 울산 12경 중 하나로 산세와 계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마치 거북 한 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 반구대라고 하며 선사시대 유적인 국보 제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있어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이 곳에 흐르고 있는 강은 대곡천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곡천 주변에는 국보 제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하여, 국보 제 147호인 천전리 각석과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 13호인 반고서원 유허비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선사시대의 고기잡이, 사냥을 하던 모습 등이 각석된 암각화와 약 1억년 전, 전기 백악기 시대의 공룡들의 발자국 화석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또한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배지로서 그 인품과 학덕을 기리는 유허비가 남아있어 대곡천은 바로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하천이다.

 

 

 

 

 반고서원 유허비(3기)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13호로 반구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1년(1375)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1년 넘게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 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 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울주 대곡리 연로개수기은 대곡천 가장자리의 바위 면에 새겨진 일종의 마애기로 훼손이 심한 편이어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도 있다. 1665년에 쓰여진 글이 남아있는데 이 길의 이름인 연로라는 점과 누구의 시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내용으로 보아 이 길이 적어도 1655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의 이름인 연로는 벼루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고서원은 1712년 정몽주, 이언적, 정구를 추모하기 위해서 세워졌다가 1868년 고종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 (좌) 울주 대곡리 연로개수기, (우) 반고서원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이 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의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공룡들은 아열대 기후 아래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바나 지역의 하천평야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곡천에는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이다. 이 곳의 공룡발자국은 약 100제곱미터 넓이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용각류 팔용과에 속하는 것(60톤급)과 조각류 이구아나과에 속하는 것(고성룡족인)등 24여 개다.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공룡들은 이 일대를 평화롭게 배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의 지층은 경상계 하양층군 사연리층 중회색 사질이암층에 속하며, 이 공룡발자국 화석은 지질시대 울산지역에 대한 자연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개인적으로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보다는 천전리의 것이 접근이 쉽고 더 많아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천전리 화석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딜가나 포장되어있는 길이 많은데 흙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늪 위로는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어놓아서 역시나 발과 다리에 부담이 적다. 그래서인지 트래킹이 일순위이고 암각화 등을 보는 것이 2순위이신 분들도 길에서 종종 마주쳤다.

 

 

 

 

 20여분을 걸었을까?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했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건너 각단에 위치하고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진 주요 암면의 크기는 너비 약 10m 높이 약 3m이며, 좌우에서도 10여개의 암면에서 형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새겨진 형상들은 크게 바다동물과 육지동물, 도구와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특히 동물그림들은 생태적 특징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다. 바다동물로는 고래, 거북, 물개, 물새가 확인되며, 육지동물로는 사슴, 멧돼지, 호랑이, 여우, 늑대, 족제비 등이 새겨져 있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포경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선사시대 고래가 새겨진 유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유적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국제학계에 소개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울산과 동남해안 일대의 패총유적에 포함된 동물유체 분석결과와 울산만 고환경 연구 등에 따르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제작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 3,500년 전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건너 먼 곳에서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다. 가까이서 보겠다고 울타리를 넘어가면 절대 안된다.

 

 

 

 

 다시 발길을 돌려 이번에는 천전리 각석으로 향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걷기가 힘들다면 박물관 앞에 세워둔 차를 타고 다시 국도 35번으로 나가서 천전리 각석으로 향해야 한다. 직선거리는 가깝지만 그 사이로 직선 도로는 나 있지 않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걸어가는 곳도 나쁘지 않다. 단지 차가 박물관 앞에 서 있다면 다시 걸어와야 한다는 점. 차가 없다면 천전리 각석을 본 후 대곡박물관 앞으로 가서 버스를 타면 된다.

 

 

 

 천전리 각석에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세선화, 명문 등 여러 시대에 걸쳐 각종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추상적인 문양들 위로 신라시대행렬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의 세선화가 있으며, 신라시대 명문등이 덧새겨져 있다. 천전리암각화가 각석으로 불리는 것은 발견당시에는 암각화보다 신라시대 명문에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암면의 전면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형태를 볼 때 마름모꼴, 원형의 둥근 무늬, 물결무늬 등 형상들이 서로 연관 반복된 것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일종의 장식무늬로 여겨진다. 암면 아랫부분은 신라시대 세선화와 명문으로 인해 암각화가 대부분 훼손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선화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그림이다. 암면에서 식별이 가능한 그림은 말을 끄거나 타고 있는 인물상, 돛을 단 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도 발견된다.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 기미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짐작된다. 명문은 크게 둘로 나눠져, 법흥왕(法興王)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52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그림 위에 수천년이 흐른 후 낙서를 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식으로는 미친짓에 가까운데 신라시대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나보다. 이건 마치 지금 우리가 이 각석 위에 한글 낙서를 하는 것이랑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신라인들이 이 그림들을 그냥 아이들이 낙서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에 이런 것들의 연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도자기나 보석이 아니므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유물이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천인공노할 일인데 이런 것도 지금은 그 행위 때문에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는 것이 아니러니다.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 시대와 다른 사항은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과 같다. 약 1,750제곱미터 면적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대형 초식공룡인 한외룡을 비롯한 용각룡 열 마리의 발자국과, 중형 초식공룡인 조각류 이구아나룡에 속하는 고성룡 한 마리의 발자국 등 200여 개다. 걸어간 발자국 길은 보이나 그 발자국들이 평행한 행렬은 아닌 것으로 보아, 공룡들은 이 일대를 평화롭게 배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온 지층은 중회색이암 혼휄스의 비저색층으로 경상누층군 하양층군 사연리층에 속한다.

 

 발자국의 크기가 정말 커서 가방이 쏙 들어가고도 남는다. 천전리 각석 앞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변 산세, 계곡과 어우러져서 쉬어가기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1억년전 공룡들도 같은 생각은 한 걸까?

 

 

 

 

 

 여행 정보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 앞에 문화해설사의 집이 있어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제한 구역을 지켜야 한다. 벗어날 경우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입장료 같은 것은 없고, 어느 정도 걸어야하므로 걷기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