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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궁산에서 놀자!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양천향교까지

 

 

 궁산은 면적도 그다지 넓지 않은데다가 높이도 고작 74m에 불과한 작은 산이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동산이 87m 밖에 안된다고 항상 무시하곤 했는데 그것보다 작은 것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20분 남짓이면 되는 궁산은 반나절 정도의 즐거운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여유를 부린다면 하루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궁산 아랫자락에는 겸재정선미술관과 양천향교가 있다. 또 궁산은 우리동네에 있는 동산과는 달리 꽤나 유서깊은 산이어서 1500년 전 신라의 양천 고성지, 진경산수화의 완성자인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 수백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던 도당 할머니를 모신 성황사가 자리잡고 있어서 나들이객들의 상상력 자극한다. 물론 여기에 돗자리와 맛있는 간식들이 함께한다면 한강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한껏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궁산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집결장소였으며, 6.25동란 때도 국군이 주둔했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지였고 조선시대에는 우리고장 행정의 중심지였다. 

 


 

 

 궁산 일대를 나들이 할 때 어디를 먼저 가느냐는 순전히 가는 사람 마음이다. 가벼운 산책을 먼저 하고 싶다면 우선 궁산에 오르면 되고 시원한 에어콘 바람 쐬면서 그림 감상을 먼저 하고자 하면 겸재정선미술관부터 가면 되겠다. 늦은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나는 궁산에 먼저 오르기로 했다. 20분이나 올랐을까? 벌써 정상에 도착해 버린다. 궁산의 정산부에는 둘레 200m 가량의 평지가 존재한다. 바로 이 부분이 양천고성지다. 마침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성황사 쪽 일부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지금도 마구 보물이 솟아나고 있나보다. 궁산 나들이에 나섰다가 천년 된 신라 유물 하나 주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을... ㅋ 이미 궁선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정선 선생이 3백년전에 다 주어갔을 지도 모른다. ㅎ

 

 발굴조사는 7월 15일까지 계속되는데 시행처는 강서구청 문화체육과 (2600-6077)이며 조사기관은 한얼문화유산연구원이다. 유물이 얼마나 나올 지 알고 발굴 조사기간이 딱 정해져 있는 지 궁금하다.

 

 

 

 

 양천고성지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이었던 궁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이 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궁산은 한강변에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로, 산의 남쪽에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난다. 한강 건너편 북쪽에는 행주산성이 있어서 방어에 유리하다. 기록에 따르면 성벽의 길이는 218m다. 성벽은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토루를 쌓은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의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다량으로 채집되었고  강 건너에 있는 행주산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볼 때 양천고성도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함께 한강 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성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기 전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궁산의 정상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금 생뚱맞게 생긴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성황사다. 이 사당은 성황사 신의 위패를 모신 묘당이다. 성황사의 신은 여신으로 궁산 주변 마을 사람들은 옛부터 도당 할머니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조선시대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성황사 재성산이라 하였다. 성황사 신은 산아래에 거주하는 민초들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여러 악귀를 몰아내며 재앙과 돌림병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이에 궁산 주변 사람들은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날 제물을 차려 산신제를 올리고 굿을 한다. 흥미롭고 재밌는 건물인데 건물을 조금 더 옛스럽게 지었을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궁산 정상부에서는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서울시 한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조성한 포토아이랜드로 지정되어있다. 이 곳은 겸재 정선이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며 그리 그림 '소악후월'과 비슷한 역사적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도시철도가 달리고 있지만 산과 강은 그 시절과 그대로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양천 현아 뒷산 기슭 강변 악양루터에 재건한 것이었다.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등 진경이 펼쳐져 조관빈, 윤봉구, 이병연 등 당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고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제 정선이 이곳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소악루의 원위치는 [여지도서], [양천군읍지]와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강서구 가양동 산 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주변의 변화가 극심하여, 한강변 경관 조성 및 조망을 고려하여 1994년 현위치에 신축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화강석 8각 주초에 민흘림의 원주를 세우고 5량집 겹처마구조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하고 주위에 난간을 둘러 한강경관을 조망토록 배치했다.

 


 

 


 

  겸재정선미술관

 

겸재정선박물관은 얼마전까지 겸재정선기념관으로 불리다가 이름이 바뀌었다.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전시와 미래지향적 모습을 보일 것 같다.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마주하게 되는 겸재 정선의 그림들은 정말 놀라움을 갖게 한다. 그리고 강렬한 욕구를 가지게 되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것이다. 만약 겸재 정선 선생이었다면 이 포스팅 상단에 있는 궁산과 주변의 약도를 퍼오지 않고 직접 그렸겠지? 정말 멋지게 그려넣었을 것이다. 궁산과 그 안의 소악루 그 뒤로 흐르는 한강과 궁산 앞쪽에 자리잡은 겸재정선미술관과 양천향교까지. 블로그를 하다보면 약도를 넣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블로그에 지도 넣기 서비스나 해당 기관의 지도를 퍼오는 것이 전부인데 내가 원하는 것만 넣어서 멋스럽게 넣고 싶을 때가 많다. 직접 그려넣는다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겸재 선생처럼 일가를 이루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블로그 포스팅에 약도 정도 그려넣을만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는 거다.

 

 

 


 운영시간 

평일 : 10시 ~ 18시 (동절기 ~17시)

주말 : 10시 ~ 17시

전시해설 시간 : 오전 11시, 오후 3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


홈페이지 : http://gjjs.or.kr/

전화      : 02-2659-2206,2207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 47길 36(가양1동 243-1)


 찾아가는 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출구로 400m 직진 후 sk주유소 끼고 우측으로 100m (곳곳에 안내 팻말이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버스 6631, 6712, 9602, 강서0, 6633, 672


 지난 5월부터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할인된 가격으로 함께 둘러볼 수 통합관람권이 만들어졌다. 각각 보려면 1천원씩 총 2천원이 필요했는데 이제 1300원으로 두 곳을 모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통합관람권은 1주일간 사용이 가능하므로 한 곳을 둘러보고 1주일 내에만 다른 곳을 보면 된다. 


구분

 어른 (19~64세)

 청소년 (7 ~18세)

 개인

 단체

 개인

 단체

 겸재정선미술관

1000

 700

 500

 300

 허준박물관

1000

 700

 500

 300

 통합관람권

1300

 1000

 700

 500


무료 관람   : 만6세이하, 65세이상,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및 보호자 1인, 다둥이행복카드 소지자.

무료관람일 :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설날,추석의 전후일, 어린이날, 3.1절, 광복절, 개천절.


▼ 관람권은 자판기를 통해 구입하기 때문에 현금 잔돈을 준비해야한다!


  미술관은 1층으로 들어가는 길과 궁산 아랫길 3층으로 들어가는 길로 2곳이 있다. 3층으로 들어가는 길에 거대한 붓 동상(?)이 서 있는데 그 옆에 망동산터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개화산 및 안현(안산), 목멱산(남산) 등에서 올리는 봉화를 살펴보고 주변 풍경을 관망 할 수 있는 망동산터라는 것이다.




  2층의 겸재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방문객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단발령망금강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전시실이다. 음악과 꽃잎이 흐날리는 정선의 그림을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 궁산에 올라갔다 내려왔기 때문에 땀을 식히며 겸재정선의 그림 세계로 들어가는 첫발로 안성맞춤인 전시공간이었다. [단발령망금강]은 정선의 기년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신묘년풍악도첩] 중 제일 첫 장면으로, 맨 처음 단발령을 넘어가며 금강산의 장관을 처음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고개에 와서 금강산이 너무 아름다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리라는 결심을 한다는 사연이 전한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서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 많은 작품을 통해 표현하였다. 정선은 특히 금강산을 즐겨 그렸으며, 금강산 전체를 한 폭에 담은 금강전도도 여러 번 그렸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본 <금강내산도>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 폭에 집약한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금강산을 내,외로 구분하여 내금강의 전체 모습을 표현하고 오른쪽 아래 장안사로부터 시작하여 왼쪽 아래 표훈사, 그 위의 정양사로 이어진 토산 줄기 위로 하얀 화강암 봉우리들이 무수히 늘어선 금강산의 장관을 잘 표현하였다. 화면 위쪽 좌우에는 당대의 대문장가인 김창흡과 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조구명의 화제가 적혀있는데 김창흡은 내금강은 '신기하고 배어나며' 외금강은 '장대하고 넓다'라고 서로 다른 특징을 잘 표현하였다.


 


 겸재정선의 그림들이 워낙 가치가 높다보니 대부분의 전시물들은 모사된 작품들이다. 게다가 겸재정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보다는 중앙국립박물관 소장이라고 붙어있는 전시물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재정선미술관은 흥미로운 곳이다. 그건 그의 그림들이 매력적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본다. 그의 그림이 매력적이기에 그의 삶 또한 관심이 가고 그가 다녀 본 장소들을 상상하게 된다.



 


 같은 공간을 30년 차이를 두고 그린 총석정도 인상적이다. 왼쪽이 36세에 오른쪽이 63세에 그린 것인데 원숙미가 높아졌다는 평을 받는다.





 한반도의 최북단과 최남단을 제외하면 그가 가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지도를 펼쳐두고 그가 그린 그림과 해당 지역을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 솟는다. 물론 내가 가서 남길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어설픈 사진 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림 잘 그리고 싶다. 흠. 겸재 선생은 멀리 갈 필요없이 서울 곳곳을 그린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그 그림과 현재의 그 곳 사진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전시물도 재밌었다. 겸재가 돌아온다면 금강산의 솟아오른 바위들을 멋드러지게 그리는 것처럼 서울의 빌딩숲도 멋지게 그려낼 것만 같다.



 


 요즘은 단순한 구경이 아닌 체험이 대세인 시대인만큼 이 미술관에도 체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진경산수화 그려보기, 나만의 뱃지 만들기, 겸재 탁본 꾸미기, 옛 그림 진경화첩 꾸미기 등을 할 수 있다. 체험공간의 책상이 굉장히 작아서 10살 이하의 아이들에 맞춰져있다. 주말 가족 방문객이나 단체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공간인가보다.





6월 한달간 김한 작가 1주기 유작전이 열리고 있다. 김한 작가는 지난해 82세의 나이로 별세한 원로 화가다. 1931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서 6.25 전쟁 때 월남해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화가로 활동해왔으며 1995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았다. 유작전이어서 그런지 그림 뿐 아니라 생전 화가가 사용하던 그림용품들도 함께 전시되어있어서 흥미로웠다. 미술관으로 이름도 바뀌었으니 더 많은 지역 사회의 화가들에게 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양천향교


관람시간 : 10am ~ 16pm
월요일 휴관


  여행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향교다. 그래서 향교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양천향교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라는 점에는 특별하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서울에 자리잡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조선의 교육과 사상, 유교에 대해 이야기해 줄 기회가 되는 것이다. 양천향교도 그 역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향교는 크지 않지만 근처에 향교와 관련된 꽤 큰 건물도 있고 자원봉사자들도 꽤 많아서 향교 해설을 원하는 방문자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무료급식도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있는데 양천향교 주변의 어르신(65세 이상) 및 저소득층 지역주민을 위하여 매주 수요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양천향교 앞에는 이 향교가 배출한 인재들에 대한 비석이 서 있다. 입구에는 물론 홍살문이 서 있다. 홍살문이란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이다. 홍살문의 원음은 홍전문이다. 붉은 화살로 된 문이란 뜻이다. 홍살문이 설치된 곳에서 오리(2km)이내에는 하마비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함과 동시에 유학을 국시로 정하고 유학을 토대로 교육기관을 대 확장함에 한양에 성균관과 사학을 두고 각 군 현에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를 설립하였다. 양천향교도 당시 태종 연간(서기 1411년 경)에 설립되었다. 향교는 공자님을 큰 선생님으로 모시고 여러 성현의 덕을 기리는 제향 공간인 내삼문 안에 위치한 대성전과 큰 가르침을 펼치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 동재, 서재 그리고 제향과 강학을 지원하는 부속시설인 교직사 등으로 구성된다. 양천향교는 대성전에 5성위와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여 문묘 기능을 하며 유학을 연구 강론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년중 제일 큰 행사인 석전대제는 지방수령이 석전제를 올리는 것을 전통으로하여 본 향교는 강서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석전제를 올린다. 구한말 갑오개혁(1894년)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 인해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되고 문묘 기능만 허용되었다. 그 후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관내유림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교궁 중수 및 비품 등을 구비하였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서 서울 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서울시의 유일한 향교가 되었다. 1965년 12월 4일 서울시 향교재단 인가를 받아 경기도 향교재단으로부터 양천향교의 재산을 인수하였다. 같은 해에 대성전과 외삼문을 보수하였다.

 


 



  향교 앞에 유예당이라는 작은 건물과 객석, 마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전통문화마당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전수하는 공간이다. 지난 2007년 강서구청에서 신축했다고 한다. 둥그렇게 마련된 객석과 주위의 나무들, 유예당이라는 건물이 꽤나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어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공연을 보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