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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거제 여행] 옥포대첩기념공원, 전설의 시작을 알린 임진왜란 해전의 첫승 옥포대첩을 기념하다.



 옥포대첩은 임진왜란 중 최초의 해전에서 승리였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명량'의 흥행 때문인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옥포대첩기념공원은 현재 기념관, 사당, 탑, 옥포루로 구성되어있는데 2018년까지 이곳에 3천억을 투자해서 테마공원으로 꾸민다는 계획도 발표되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옥포대첩기념공원도 실상 몇 년 남지 않은 것이다.


운영시간  09:00 ~ 18:00

입장료    어른 1천원, 청소년/군인 600원, 어린이 400원

주차요금  소형 1천원, 대형 2천원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1

전화번호  055-639-8129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25년 임진년(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때 처음 왜적을 무찌르고 대승첩을 거둔 옥포대첩을 영구히 기념하고,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며 계승하기 위한 곳이다. 임진년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상주, 충주를 거쳐 5월 2일에는 마침내 서울을 점거하고, 6월 13일에 평양에 이르면서 전국 곳곳에서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율포 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 4월 29일 구원요청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도는 경상도와 더불어 일해상접한 요새라는 명석한 판단으로 출전을 결단, 5월 4일 축시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전라좌수영을 출발 경상도로 향하였다.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지낸 다음 5월 5일 새벽 전 함대를 지휘하여 원균과 만나기로 약속한 당포로 향하였다. 닷새 밤을 당포 앞바다에서 보내고 6일 아침에야 전선 1척을 타고 도착한 원균을 만나 왜적의 정세를 상세히 듣고 남해현령과 경상도의 진장들의 전선 6척을 증강편성하고 거제도 남단을 거쳐 송미포 앞바다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7일 새벽에는 일제히 송미포를 출발 외적이 머무르고 있는 천성, 가덕도를 향하였다. 오시경 이윽고 이들 91척의 함대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던 판옥선상에 전방의 척후선으로부터 옥포선창에 적선이 있음을 알리는 신기전이 날아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여러 장병들에게 적선의 발견을 알림과 동시에 전열을 가다듬고 준엄한 목소리로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주의와 함께 공격개시의 군령을 내렸다. 이 같은 맹렬한 공격으로 옥포선창에 정박하고 있던 적선 50여척 중 26척이 격파되니 한창 강성하던 적의 기세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청사에 빛나는 옥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 유서 깊은 옥포만두에서 1991년 12월에 기공식을 갖고, 기념탑(높이 30m), 참배단, 옥포루, 기념관 등을 건립, 1996년 6월에 준공하다.




 사당에 들어갈 때는 유의할 점이 몇가지 있다. 옥포대첩기념공원 사당은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 효충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문은 신도로 출입이 제한되며 사당 출입 시 오른쪽 문을 이용하여 입장하여야 한다. 참배 후 왼쪽 문을 이용하여 퇴장하여야 한다. 오른쪽 계단을 이용할 때는 오른발을 먼저 넣고 왼쪽 발을 마지막에 모은다. 왼쪽 계단을 이용하여 나올 때는 왼쪽 발을 먼저 떼고 오른쪽 발을 마지막에 모아야한다.




사당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그 주위의 병풍의 군인인 이순신 장군과 걸맞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 한켠에서 한가롭게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는 이곳의 의미를 알까? 어쩌면 400년전, 임진왜란 때부터 거제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지내 온 고양이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당 한켠에는 임진왜란 해전에서 사용된 거북선과 판옥선의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거북선은 원형의 1/4 크기로 만들어져있다. 거북선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필요치 않을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생각하고 판옥선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실제 크기의 1/6로 만들어진 것이 전시되어있었다. 평전선 선체 위에 상장을 얹고 신방을 세워 방패의 기능을 하게 하였고 포혈을 내여 곡사방포를 가능하게 하였다. 중앙에는 장대를 높게 설치하여 수장의 지휘가 원활하게 하였다. 화력은 천지현황포와 장군전, 신기전, 활 등으로 무장하여 포격 후에는 적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작전수행이 가능하였다. 특히, 병사 중에는 노 젓기와 항해술이 능숙한 병사들의 기동성이 배의 기동력을 높게 하였다. 난전중이나 근접전 중에도 노군과 치군은 적으로부터 안전한 2층에 위치 노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으며 모든 전투함의 기본이 되었다. 조선 수군의 주력전투함으로, 거북선 건조의 기본이 되었다. 160~190여명의 탑승인원 중 100~120여명이 노군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포술과 궁술로 왜적을 무찔렀다. 생각보다 탑승인원이 굉장히 많은데 그 중에 노군이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이 놀랍다. 커다란 배의 동력을 오로지 인력으로 해결해야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싸우는 군인보다 노를 저어야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 했다니...






 왼쪽 사진은 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가했던 조선의 군인들의 모형이고 오른쪽은 양지암의 모형이다. 양지암은 현재 거제시 능포동에 있는데 옥포해전의 승리를 가능케하게 했다는 바위다. 어떻게 양지암이 옥포해전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명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도대체 왜! 이 바위가 옥포해전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에 대한 설명도 함께 제시해 주면 좋았을텐데.






 전시관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더 쉽고 빠르게 살펴보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학익진법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전술이다. 학이 날개를 편 형태의 해상전술로 영국의 해전사 연구가 벨라아드는 "해군 전문가는 물론 해군 장교의 시각에서 볼 때 이순신의 학인진은 숙련된 함대의 표준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은 왜선단의 선두와 후미를 동시에 봉쇄한 뒤 사령선에 포화를 집중시키는 공격형 전술이다. 학익진은 현대 해상전에서도 응용이 가능한 전술로 전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당과 기념관을 지나 기념탑으로 오르는 길에 옥포루가 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옥포루에 앉아 새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방금 기념관에서 보았던 학의진이 바다 위로 펼쳐지는 것만 같다.





 옥포대첩 기념탑은 30미터 높이로 우뚝 솟아있다. 그 뒤쪽으로 이순신 장군의 조각이 양각되어있는데 그 모습이 백원짜리 동전에 있는 것과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