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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바보각시 - 누더기 천들을 기워 만든 이불같은 연극

연극 바보각시

 

 누더기 천들을 기워 만든 이불같은 연극

 

 

현실과 신화의 만남

파격적인 연극 언어와 시적 구성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통한

사랑의 본질을 표현한 수작

 

  <바보각시>의 카피 네줄에서 이해 할 수 없는 건 마지막줄이다. '사랑의 본질을 표현한'이라는 문구는 공연을 보고 난 지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분명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극에서 나는 그 어떤 인간의 사랑도 보지 못했으니까. 꽤 혼란스럽다. 맥락을 가지고 있어 논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장면들로의 전환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이 극 전체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말았다. 미륵의 등장이라니.미륵의 등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극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수 밖에 없다. 남자들이 바보각시를 묻은 곳에서 미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미륵은 상여를 타고 인간들의 추악한 면을 상징하는 듯한 가면을 떠안고 떠난다. 미륵은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자신이 떠안고 떠남으로서 세상엔 죄 없는 깨끗함만을 남겨두려고 한 것일까?

 

  <바보각시>가 기대되었던 이유는 연희단거리패에 의해 만들어진 공연이기 때문이다. <오구>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독특한 집단임이 틀림없고 오래전 <바보각시>에는 오달수도 출연했었다. <오구>가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굉장히 밝은 작품인 반면 <바보각시>는 굉장히 어둡다. 수십년전의 신도림역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모습은 막 전쟁이 끝난 거리의 풍경과 같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어졌는데 보통은 소극장에서 공연되어지는 공연이다. 대학로 소극장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달오름극장도 세트와 소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소극장에서는 어떻게 공연될이지 궁금했다. 찾아본 몇몇 사진 속의 공연장면은... 국립극장에서의 공연이 더 좋았을 것임이 분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먼 거리나 2층에서 보면 그렇지 않겠지만.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다가 큰 극장으로 옮기면 텅빈 공간이 많아질 것 같은데 마치 처음부터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했던 것처럼 꽉 찬 무대에 감탄했다.

 

 

 <바보각시>의 등장인물들은 <지하철 1호선>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을 드러낸다. 공통적인 점은 파출소장과 교주까지도 모두 남루한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양한 직업과 모습을 보여주지만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계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앵벌이의 믿음의 대상이 사이비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가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는 걸을 수 있었지만 믿음을 잃은 후 다시 거리를 기면서 대한매일을 팔아야했다. 우국청년이 나누어 준 찌라시는 사람들의 흰 가면이 된다. 우국청년의 말처럼 소시민으로서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보각시를 범한 남자들은 각시에게 수작을 걸 때부터 일그러진 괴물의 가면을 쓰고 있다. 각자의 복장을 하고 있고 철학적인척 정의를 수호하는 척 하고 있지만 그들의 내면이 가면을 통해 표면화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교주와 그와 관련된 종교적인 모습들이다. 대중을 선도하고 포교(?)행위를 영업행위라고 생각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믿음을 가지 이들은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네온싸인이 휘황찬란한 그의 수레는 도시의 그 무엇보다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지금도 그들은 지하철을 명동과 종로 거리를 누빈다. 종교자체에 대한 것이 아닌 종교인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대형교회와 일부 개척교회의 행위가 정말 비판 받아 마땅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까. 염려되는 것은 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륵의 존재다. 이것이 극 전체를 굉장히 종교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려서 이전에 등장한 목사와 대비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인 나도 움찔했는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극은 시종 음악이 흐른다. 기타와 드럼에서 국악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고 음악 또한 그만큼 다양하다. 바보각시의 포장마차가 돛을 단 포장마차가 되어 흘러가는 모습은 멋있었다. 각시의 포장마차는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돛을 가지고 있었구나.. 바보각시와 맹인가수는 정말 노래를 잘 부른다. 1층의 몇몇 남은 좌석을 비워두지 않고 2층관객들에게 자리를 옮겨 더 좋은 환경에서 공연을 볼 수 있게 배려하는 공연 관계자분들의 배려는 감동이었다. 소극장도 아니고 국립극장에서... ㄷㄷㄷ 하지만 파출소장의 연기가 거슬리는 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