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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부산 동구 곳곳을 누벼라] 이중섭의 범일동 풍경과 마사코 전망대



 이중섭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크다.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도 그의 삶과 그림들을 마주하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게 되는 것 같다. 이중섭은 1950년 말부터 1954년까지 부산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진주, 통영, 제주를 전전했기 때문에 실제로 부산에 머문 기간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중섭의 생애 많은 부분이 고단했던 시기지만 특히 부산은 원산에서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와서 부두일을 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비새는 판자촌에서 살아야했던 불우한 시기였다. 유복하게 자라서 유학까지 가면서 그림을 그려 이름을 알렸던 그는 전적으로 역사의 흐름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했던 셈이다. 그의 삶과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부산 동구에 생겼다. 이중섭의 범일동 풍경 거리로 불리는 곳으로 400미터의 길 끝에는 그의 아내 마사코 전망대가 있다.





 골목길 담장에서 그의 삶과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이중섭 갤러리가 마련되어있다. 갈림길에서 길이 헷갈리면 주위를 살펴보면 그의 대표작인 황소가 그려진 타일이 붙어져있는 곳으로 향하면 된다. 이중섭의 황소와 느릿느릿 걸으면 되는 것이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시대에도 유복하게 살아갔던 이중섭에게 고난은 사실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한반도 북쪽에 살고 있던 그에게 공산주의로 물들고 있던 당시 상황은 힘겹기만 했다. 그는 남과 북 어느쪽의 정치색과도 무관한 순수 예술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농이었던 그의 형은 총살당하고 그도 부르주아 예술가로 낙인찍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다행히도 해군 화물선을 얻어타고 부산까지 피난을 올 수 있었다. 그 후 먹고 살기 힘들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벽화로 만들어져있는 천도 복숭아 그림에는 이와 얽힌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시인 구상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선물을 살 형편이 못 되어서 담배 은박지에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 가지고 갔다고 한다. 지금은 이 그림이 누구의 소유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들이 수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복숭아 그림도 엄청난 가치를 할 것이다.





 이중섭의 피난시절과 범일동 이야기들을 담은 이중섭 골목 갤러리를 지나면 희망길 100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의 편지와 그림을 볼 수 있다. 희망길이어서 그런가? 계단의 끝에서 비쳐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나의 소중하고 귀중한 귀여운 사람이여! 잘 있었소?


 이중섭의 삶에 대해서 모른다면 그저 오글거리는 편지들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 작은 문장만으로도 울컥함이 있다. 일본 식민지시대에 일본인과의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결혼 후 가족을 힘겹게 하는 것도 심정으로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화가였던 그가, 육체적 노동이라고는 해본적 없던 이중섭이 부두에서 일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별... 그 후 그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사망한다.






 희망길 100계단을 오르다보면 60년전 이중섭의 가족이 살았을 법한 판자촌이 나온다. 주변에는 이중섭의 그림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판자촌 화실도 있다. 이중섭의 그림 중에 [판잣집 화실]이 있다. 그 그림을 보면 그가 가족이 떠난 후 이런 판잣집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방 안에는 술병과 그림들만이 가득하고 그는 누워서 웃으며 담배를 피고 있다. 웃고 있지만 쓸쓸한 미소다. 생활이 힘들었지만 가족이 함께 했을 때는 판잣집 생활도 행복했었다고... 마사코 여사는 이야기한다.






 희망길 100계단 끝에는 마사코 전망대가 있다.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의 이름을 딴 전망대다. 마사코 여사의 한국 이름은 이남덕이다. 이중섭이 남쪽에 온 덕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지어준 것이다. 아이들과 일본으로 떠나 이중섭이 일본으로 건너 올 날만 기다렸지만 이중섭은 몇 년되지 않아 죽고 그 후 50년을 마사코 여사는 이중섭을 그리워하며 살아갔다. 마사코 전망대는 그가 [범일동 풍경]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에 세운 전망대다. 2층 건물로 이중섭 갤러리와 주민들이 모임장소로 쓰이고 의자가 놓여진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앉아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범일동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풍경이 비치는 유리 위에 쓰여진 편지를 읽고 있으니 이중섭이 이곳에서 범일동 풍경을 바라보면 편지를 쓰고 읽고 했을 것만 같다.





 60년전에는 왼쪽에 보이는 산비탈에 지어진 주택들이 모두 판자집이었겠지? 산비탈이 끝나는 곳부터는 높은 건물들이 높게 솟아 있다. 저 많은 집들에도 어떤 이가 창 밖을 내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