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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김천 여행] 인현왕후가 머물렀던 아름다운 사찰 청암사



 김천에 있는 사찰 중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사찰은 아무래도 직지사다. 그렇다면 두번째는? 단연컨대 청암사 일 것이다. 청암사는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직지사가 큰 절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청암사는 아기자기하게 예쁜 절의 느낌이다. 청암사는 김천 불령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이다. 도선국사는 15세에 출가한 신라말 승려로 왕족이라는 설이 있다. 875년 도선국사가 2년 후에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고 2년 후에 고려를 세운 태조가 태어나서 고려의 왕들이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 후 800년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가 조선 인조 25년(1647)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혜원스님에 의해서 중건되었다. 그 후 몇년되지 않아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서인되어 궁에서 쫓겨나 청암사 극락전에서 지내게 된다. 인현왕후는 무려 3년간 청암사에서 머물면서 기도를 드렸다. 3년 뒤 다시 궁으로 돌아간 후에도 인현왕후는 청암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이 인연으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어서 불령산 적송산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어 궁에서 무기 등이 하사되었고 조선말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종 9년 (1905)에 당시 청암사 주지 대운당 스님이 잠결에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꾼 후 한양에 가니 어느 나이 많은 보살님 한 분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3년 동안 염불해 달라고 부탁하며 많은 돈을 시주했다고 한다. 이 돈으로 주지 스님은 쇠락한 극락전을 다시 짓고 만일회를 결성해서 극락전에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청암사는 이미 수백년전부터 스님들이 공부와 수행을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100명이 넘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교회를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인이 아니어도 절은 간다. 사찰은 종교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역사적 장소이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의 장소로 이미 천년이상 이 땅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청암사로 향하는 길은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다. 청암사 내에 이 물이 흐르기도 한다. 나무 틈에서 버섯들이 자라고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낙엽들이 쌓이고 있다. 잠시 걷기만 해도 세상의 번뇌를 다 잊을 것만 같은 곳이다.





  청암사의 입구에도 어느 절과 마찬가지로 큰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들이 보인다. 귀신을 쫓는 사천왕이 그려진 천왕문도 자리잡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얼마지나지 않아 우비천이라는 약수터(?)를 만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청암사는 소가 왼쪽으로 누워있는 와우형의 터이다. 이 샘은 소의 코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우비천이라고 하며 코샘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이 코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암사는 물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하며 이 물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하여져 재물을 멀리한 스님들은 이 샘을 지날 때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그럼 이 샘의 물은 콧물? ㅎ


 





 길 옆에서 흐르던 계곡이 청암사 내로 들어가면 길을 가로지른다. 그래서 그 위에 다리로 놓여있는데 이 곳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분명 수백년전부터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 바위에는 한자들이 잔뜩 새겨져 있다. 남부지방이어서 가을의 노랗고 붉음보다는 아직도 싱그로운 푸름이 가득해서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공간이다. 






 감탄하며 풍경을 즐기다 이제 다리를 건너려는데 다리 건너에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있다. 우리는 그렇게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담한 고양이라면 그냥 자연스럽게 내 옆을 지나갈 수도 있고 애초에 조심성 많은 고양이는 나를 보자마자 도망을 쳤을텐데 이 녀석은 내게 양보를 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이 다리를 양보하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이냐. 카메라를 꺼내 녀석을 찍고 있자 결국 내가 피할 뜻이 없음을 눈치 챈 고양이가 발길을 돌린다. 미련이 남는지 뒤돌아 보는 것도 잊지 않고.





 대웅전 주변에 여러채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고 뒤로는 소나무숲이 앞으로는 계곡이 흐른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 졸졸졸 흐를 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순간이 찾아온다. 찰칵거리는 내 카메라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서 민망해졌다.



 


 청암사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0호)은 신라 헌안왕 2년(858) 도선국사가 처음 건립하였다. 조선 인조 25년(1647)에 화재로 소실되자 벽암대사가 허정화상을 보내어 다시 건립하였다. 그 후 정조 6년(1782) 화재로 소실되어 20여 년 후 환우대사가 다시 건립하였다. 고종 34년(1897) 폐사되었으나, 1900년대 초에 대운 스님이 중건하였다. 대웅전의 기단은 2단 석축으로 조성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청기와를 얹고 용마루 양끝을 장식용 기와로 장식했다. 건물의 외부는 금단청, 내부는 모로단청으로 채색되어 있다. 건물 내부의 중앙 칸 뒤로 기둥 2개를 세워 불볍을 치고 불단을 꾸몄다. 불벽 뒤에는 탱화가 걸려 있다.

 


 청암사 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은 조선 후기의 탑으로 1912년 성주의 어느 논바닥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진다. 지대석 위에 2층의 기단을 놓고 탑신을 올렸는데 원래는 5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상륜부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현재 높이는 4.21m이다. 기단부터 1층 몸돌가지를 하나의 돌로 만들고 1층 지붕돌부터는 몸돌과 지붕돌을 별도의 돌로 만들었다. 이중기단 중 아래층 기단에는 귀기둥과 안기둥이 없으나, 윗층 기단에는 귀기둥을 돋을새김하고 각 면에 연꽃무늬를 하나씩 새겼다. 몸돌에는 귀기둥을 새기지 않았으며, 1층 몸돌의 각 면에 불좌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무겁고 큰 편이며 추녀 끝이 위로 들려져 있다. 아래층 기단이 너무 높고 윗층 기단이 좁아 안정감이 없으며 지붕돌과 몸돌의 비례가 맞지 않아 전체적으로 가냘프면서도 불안정해 보인다.


 




 대웅전에서 계곡물을 건너 가면 극락전, 보광전, 백화담이 있고 주위로 스님들이 키우는 채소밭이 있다. 기와를 새로 올렸는지 짙은 파랑의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아담한 건물이 참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풍경이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진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양이. 나와 다리에서 대치했던 녀석은 아니다. 그 녀석은 노란색 바탕에 더 짙은 노란색의 줄무늬를 가진 녀석이었는데 보광전 앞에 앉아 있는 녀석은 얼룩덜룩한 색을 가진 녀석이다. 나와 대치했던 노란 고양이는 내가 건너 간 후 눈치를 보다가 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보광전 한쪽으로 열린 문 앞에는 고무신 한쌍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안에서는 불경을 외는 스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 얼룩 고양이는 묵묵히 그곳을 응시하고 있다. 청암사와 인연이 있는 이의 환생일까? 불경을 듣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불경을 외는 스님이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분일 거라는 현실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청암사에 들어오려면 꽤 안쪽으로 들어와야한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고양이 여러 마리가 스님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걸 아는 영악한 고양이들이다.







청암사 여행 정보



홈페이지 : http://www.chungamsa.org/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8번지

전화번호 : 054 - 432 - 2652

* 문화재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지사와 달리 입장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