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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김천 여행] 보물이 가득한 천년고찰 직지사



 김천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빼먹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직지사다. 김천 여행의 우선순위로 꼽히는 곳으로 직지사 주변으로 직지문화공원, 김천세계 도자기박물관, 백수문학관이 위치해 있고 황악산 하야로비공원도 조성중이다. 직지사 주변으로는 직지문화모티길, 사명대사길도 조성되어있어서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도 먼저 직지사로 향하기를 권하게 된다. 김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우선 직지사로 향하면 된다. 그래서 나도 직지사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왜 이곳이 손꼽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지사는 정말 큰 사찰이었고 보물로 가득했다.


홈페이지  : http://www.jikjisa.or.kr

주소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 황악산 직지사

전화번호  : 054-429-1700~4

입장료     : 어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천원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직지'라는 명칭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번 중수되었다. 고려 때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어졌다. 조선초에는 조선 8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크게 흥성시켰다. 이곳은 많은 국사, 왕사가 수도 정진하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 정심선사가 조선조의 법난 때 이 곳에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보물 1576호),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670호),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호), 대웅전 앞 동,서 삼층석탑(보물 606호),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607호),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물 1186호) 등의 중요 문화재와 많은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직지사 입구 오른쪽, 꽃밭 사이에 낮은 기와집에 예쁘게 직지사 전통다원 다반향초가 자리하고 있다. 직지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들려 따뜻한 차 한잔 하기 좋은 곳이다.   

 




 직지사는 워낙 큰 절이어서 길도 잘 정돈되어있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은 편이었다. 사찰 곳곳이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더지도 봤다.





 직지사의 사천왕은 1665년 만들어져 아직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350년이나 된 것이다. 그래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한참 보수? 복원? 작업 중으로 천왕문으로 출입하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들어가야해서 아쉬웠다.





 하늘은 푸르고 살랑살랑 바람은 부는데 곳곳이 잘 정비된 사찰을 거니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나무들이 푸르른 여름도 좋지만 나무들이 알록달록 물드는 가을도 참 좋은 곳이 직지사다.




 비로전은 천불전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종 2년(1661) 인계 스님이 창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노사나불을 모셨으며, 그 뒤로는 천불상이 자리한다. 이곳 직지사는 조선시대 천불상을 모셨던 세 절(직지사,마곡사,대흥사) 가운데 하나이다. 천불상이 처음 조성된 것은 조선 효종 7년(1656) 경잠 스님에 의해서였다. 정조 8~9년(1784~1785)에는 천불에서 부족했던 259위의 불상을 경주 기림사에서 조성하여 옮겨 모시면서 옛 불상 741위를 채색하고 중수하여 온전히 천불상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로전 앞에 위치한 문경 도천사지 삼층석탑(보물 067호)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옛 절터에 있던 3기의 석탑 중 하나이다.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1976년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이 탑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탑이 한 곳에 서 있는 경우는 그밖의 예가 남아 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 탑은 삼층섭탑이면서도 이중기단이 아닌 단층 기단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예들이 문경, 상주, 선산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특색으로 이해되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보물 1576호)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이다. 어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의 중심점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선 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선조 35년(1602)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역시나 여러차례 중창되었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세 분의 부처님이 앉아 계신 수미단은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소박하게 조각하였다. 폭이 9미터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관세음보살을 그렸으며 다른 벽면도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하였다.


 대웅전 내부에서 그 유명한 삼존불탱화(보물 670호)를 볼 수 있었다. 아쉽지만 불공을 드리고 있는 보살님이 계셔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대웅전 불상 뒷벽에는 각 부처들의 설법 장면을 그린 석가모니후불탱, 약사후불탱, 아미타후불탱 등 3폭의 불화가 걸려 있다. 비단 바탕에 그린 이 불화들은 모두 길이 6미터가 넘는 거작으로 영조 20년(1744)에 직지사의 세관 스님을 비롯한 16명의 화승들이 그린 것이다. 각 폭마다 여래를 중심으로 보살, 나한, 천왕, 신장 등을 배치하였고 채색은 적색, 녹색, 황색을 주조색으로 설채하였다. 짜임새 있는 구도, 각 존상 표현에 보이는 뛰어난 묘사력, 차분한 색조와 조화로운 배색, 화려하고 섬세한 세부 표현 등이 어우러져 장엄한 불교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직지사 삼존불탱화는 작품성과 규모에 있어 조선 후기 불화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 606호)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과 함께 원래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의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 기단인 것이 특징이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만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1층부터 차례로 5,5,4단의 처마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상륜부는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이 탑들은 단층기단이면서 1층 몸돌이 2,3층 몸돌에 비해 훨씬 높은데다 폭보다 높이가 한층 커서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강해 보인다.




 사명각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여 대사의 자취를 기리는 건물이다. 사명대사길을 걷고 와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제 사명대사 출가한 직지사와 그를 기리는 건물인 사명각까지 보고 가게 되었으니 어디선가 이름이라도 들으면 남같지 않을 것 같다.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고 40년전 중건되었다. 사명 유정(1544~1610)은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의 법명은 유정, 호는 송운 사명이고 시호는 자통홍제존자이다. 명종 15년(1560) 이곳 직지사에서 신묵화상을 은사로 승려가 되었다. 출가 후에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를 찾아가서 참선, 수행하며 진리를 탐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라 승병장으로 활양하였으며 전쟁 후에는 강화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잡혀간 포로 3500명을 귀환시키는 등 호국애민을 몸소 실천하였다. 1610년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명부전은 지방보살과 시왕 및 그들이 거느리는 권속들을 모신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조차 모두 성불한 뒤에야 자신도 부처가 되겠다고 맹세한 자비의 보살이며, 시왕은 살아생전 인간의 죄업을 심판한다는 저승의 재판관 열 분이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양식 건물이다. 내부 기둥 4개와 외부 기둥 12개가 그리는 평면이 모두 정사각을 이루는 특징과 단단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직지사가 워낙 큰 절이다보니 기거하시는 스님분들도 상당한가보다. 이렇게 큰 건물과 수 많은 장독대들이 사찰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나저나 직지사에는 정원사라도 있는 것일까. 나무들이 참 정돈이 잘 되어있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이루어진 삼존상을 봉안하고 삼존상의 좌우에는 16분의 아라한을 모셨다. 아라한은 줄여서 흔히 나한이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응진 또는 응공이라고 한다. 이 말에는 '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라한은 석가모니불의 제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이룬 수행자들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각각의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