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김해여행] 수로왕릉에서 시작하는 가야로 떠나는 여행



 김해 여행은 가야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김해는 1세기부터 4세기까지 가야 연맹체 중심국이었던 가락국(금관가야)의 수도였다. 바로 그 가락국의 시조가 수로왕이기에 수로왕릉이 김해 여행의 중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해 여행을 한다면 수로왕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성이나 위치면에서 탁월한 선택이다. 수로왕릉은 사적 73호로 납릉이라고도 불린다. 시기적으로 보면 경주에 있는 신라의 왕릉과 비슷해야할 것 같은데 그 보다는 조선의 왕릉과 비슷해 보인다. 그건 조선시대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후에 정비를 하고 그 후 오랜시간 그대로 보존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조선의 능처럼 상석, 석단, 능묘를 갖추었다. 그 후에 인조, 고종 때도 수로왕릉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 국가의 시조들에 얽힌 이야기가 늘 그렇듯이 수로왕도 신화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2천년전 사람이지 않은가. 하늘에서 떨어진 여섯개의 금으로 된 알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이 수로왕이라고 한다. 알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모두 6개의 가야국 각자 왕이 되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난 수로왕이 이 연합체의 대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알에서 태어난 수로는 순식간의 어른이 되어서 어른이 되었고 가락국의 왕이 되었다. 그 후 150년이 살았다고 한다. 수로왕의 탄생설화에 대한 해석은 간단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이라는 것, 여러개의 알 중 하나라는 것은 그의 힘이 막강하지 않아서 연합체를 이루어 국가를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 수로왕릉 앞 하마석(고관들도 이 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




 '가야'는 다른 삼국과 달리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발달한 문화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그 시조의 수로왕은 인도에서 온 허황옥을 아내로 맞는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물론 이에 대한 의문들도 있어서 그저 바다 건너 외국에서 온 것일 뿐 인도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사청

춘,추대제시 제수(음식)를 만들거나 보관하는 장소로 1700년(숙종 26년)에 창건 되었고 1792년 중수가 있었으며 1795년과 1935, 1980년 3차례에 걸쳐 중건 되었다.


안향각

춘,추대제전에 예조에서 보내온 향과 축을 봉안하는 곳으로 1792년에 2층 3칸 건물로 창건되었으나 1824년에 1칸으로 건립되어 1932년 한번의 중수가 이루어졌고 1987년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숭선전

가락국 시조 대왕, 시조 왕후 허씨의 위패를 봉안하여 향화를 받드는 전각. 가락국 2대 도왕 원년(서기 199년)에 창건되어 1698년에 새로이 제각을 건립하였고 1792년 4칸으로 중건. 1878년에 순선전으로 선액 되면서 3칸으로 건립되었다.


신도비각

가락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된 비로 1885년(고종 22년)에 3칸으로 창건되어 1926년과 1954년 두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


성생대

이곳은 가락국 시조대왕과 왕비의 춘추대제때 진설할 시생(돼지)의 의식을 진행하는 곳이다. 이 의례를 성생례라 하는데 제례 하루전인 음력 3월 14일과 9월 14일에 초헌관 주관하에 제집사들이 참여하여 진행된다.




좌로부터 가락국태조왕 숭선전. 납릉.후릉 중수비와 가락국 태조왕릉 중수기적비, 중건신도비명.





 여행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로왕릉은 뒷편에 18,000평에 이르는 왕릉공원을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이 또 꽤나 멋지다. 수로왕릉을 찾는 여행자들이라면 왕릉만 보고 가지말고 공원에서 뒹굴거리며 놀다가는 것을 추천한다. 수로왕릉에서는 봄, 가을로 수로왕와 허황옥 왕비에게 제향을 올리기에 이 때 맞추어서 가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 커질 것이다. 수로왕은 김해 김씨의 시조이며 허황옥은 김해 허씨의 시조다. 김해는 가야의 멸망 이후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의 땅이 되었지만 그 땅은 가야에서 그대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가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멋지고 여행자들을 발길을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