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김해 여행] 분산성, 구불구불 성벽 넘어 김해가 내려다보인다



 분산성은 김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언제나 인기가 좋은 곳이다. 나는 등산도 할 겸 걸어서 올라갔지만 분산성 400미터 앞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어서 산을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넓게 펼쳐진 김해와 곡선이 아름다운 돌담(?)처럼 산성이 좋여있는 좋은 곳이었는데 하필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도 좋은 곳이었지만 파란 하늘에 선명한 시야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선명한 날씨였다면 오랜시간 성곽에 앉아 있다가 야경까지 찍고 내여왔을텐데. 날씨 좋은 날 다시 김해에 다녀와야겠다.






 올라가는 길에 사충단(경남 기념물 99호)을 지나게 되었다. 1592년 왜적은 동래성을 함락한 뒤, 구로타 나카마사가 이끄는 제3대를 앞세워 김해 부성을 공격해 왔다. 이에 송빈, 이대형, 김득기, 류식 네 분께서는 각기 장정을 이끌고 김해성에 들어가 이곳을 지켰다. 그러나 김해 부사였던 서례원은 부성을 버리고 도망하였고 경상우 병사 조대곤도 창원 병영에 많은 군대가 있었음에도 구원하지 않았다. 네 분께는 김해 향민들을 이끌고 싸움을 독려하면서 성을 지키다 순국 하였는데, 이분들이 임진왜란 의병의 효시였다. 임진왜란 후 국가에서는 이분들에게 통정대부 등의 관위와 벼슬을 내리고 그 뒤 가선대부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 묘단은 바로 위의 네 충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쟁 후 1708년 김해부사 이봉상의 발의로 김해부민이 진례면에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세워 3충신을 향사하였다. 1833년에 국가로부터 표충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1868년에는 송담서원 표충사가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1871년에 왕명으로 사충단을 설단하고 4충신을 향사하였다. 매년 음력 4월 20일에 4충신에 대한 향례를 지내고 있다.





 한참을 올라가니 떡하니 나타나는 자동차들 ㅋ  분산성 400미터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 주차장이 있다. 이곳까지 차를 타고 와서 분산성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분산성과 반대방향으로 김해천문대가 멀지 않다. 은하사에서 걸어놓은 알록달록한 깃발은 티벳불교에서 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분산성(사적 66호)은 김해시내, 김해평야와 낙동강, 그리고 남해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분산(330m)의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산성이다. 현재는 시내 쪽 경사면에서 약 900미터 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도 조사되었다. 성안에 있는 3개의 비문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분산성은 고려 말에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옛 산성을 돌로 쌓았고 조선말 1871년에 김해부사 정현석이 고쳐 쌓았다 한다. 그러나 성안에서는 가야 신라 토기편들도 출토되고 이 고대 산성의 주류였던 테뫼식산성이란 점 등에서 신라나 가야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김해 시민들에게는 만장대라는 이름으로 친숙하다.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 복원된 봉수대 뒤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도장이 새겨져 있다. 산성 안에는 해은사가 있다. 해은사는 가락국의 허왕후가 바다에서 왔던 것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에 승병이 주둔하였다고 전해진다.





분산성이 일자로 쌓여있다면 이렇게 멋지지 않을 것이다. 굴곡진 몸매를 가진 분산성 ㅋ 






 차를 타고 온게 아니라 저~ 아래에서부터 걸어올라왔기에 경치 좋은 곳에서 한 템포 쉬었다. 이렇게 설정 사진도 찍어주고. ㅋ 날씨가 찌뿌둥한데 햇살을 뜨거운 아이러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오른쪽의 이런 모습. 수로왕릉도 보이고, 시장, 경전철, 수로왕릉비, 김해향교, 박물관 등이 다 보인다. 뿌옇게...






 봉수대로 향하는 계단 옆에 정기만이 만장대에 나무를 심었다는 글이 적혀있다. 물론 한자로. 왼쪽 사진에 가운데 바위에서 노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그 글이다. 나무 한그루와 그 옆에 예쁘게 쌓여진 봉수대가 인상적이다.




 날씨가 좋지 않았음에도 올라오면서 계속 감탄하고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봉수대가 최고의 뷰포인트다. 사방으로 모두 전망을 볼 수 있다. 날씨만 좋았다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모델로 사진을 많이 찍었을텐데... 역시 날씨가 아쉽다. ㅎ




 계속 가야와 관련된 유물을 보고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서 일까? 저 아래 도시가 2천년 전의 가야로 보이고 저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야 사람처럼 보인다. 독특하게도 왼쪽에 경계를 넘어서면 넓은 논이 펼쳐진다. 논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계절 따라 느낌이 참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김해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봉수대에 가까운 곳에 대원군 친필암각이 있다. 메인 길에서 뒤로 살짝 들어가면 1870년경에 쓰여졌다는 만장대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분산성이 아닌 만장대인 이유는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분산성과 함께 만장대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