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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대청호오백리길]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김정선생 유적지 둘러보기



 흥진마을 갈대&억새 힐링 숲길에서 백골산성 가는 길에 잠시 시선을 왼쪽으로 돌이면 김정선생 유적지가 보인다. 잠시 대청호오백리길을 벗어나 200미터정도만 걸으면 된다. 대청호오백리길을 걷는 여행자에게도 부담없이 들렸다갈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이 곳은 조선 중종 때 형조판서 겸 예문관제학을 지낸 충암 김정(1486~1521) 선생과 관계된 유적이 자리한 곳이다. 선생은 조광조와 더불어 향약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큰 업적을 남겼고,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가 금산에 유배된 후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았다. 1978년 대청댐 수몰로 물에 잠긴 대덕군 동면 내탑리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기면서 신도비, 충암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별묘, 산해당 그리고 그의 부인의 정려각 등도 함께 옮겼다.





 김정선생 유적지로 향하는데 대문에 백구 한마리가 사납게 짖어댄다. 그 때 안에서 어르신이 나와서 백구에서 한마디 하자 내가 돌아갈 때까지 한번도 짖지 않았다. 아, 주인의 위대함 ㅎ 김정선생 유적지에는 거주자가 있는 한옥집도 같이 있다. 아무래도 김정선생의 후손이지 않을까 싶다.






 김정 선생은 1507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갔다. 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다가 유배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그 후에 다시 기묘사화로 진도를 거쳐 제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1521년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제주도에서 사약을 받아 죽었다. 김정 선생이 사망한지 24년이 지나 복관되었는데 죽은 후에 복관되면 무슨 소용인가? 그나마 후손들의 명예 지켜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 후 100년 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기까지 했다.





 울긋불긋한 가을 나무들과 어우러진 김정선생의 사당은 꽤나 멋스러워 보인다.




 커다란 문인석이 무덤을 지키고 서 있다. 비석이 오래된 무덤임을 보여주는데 주변에 꽤 많은 무덤들이 산재했다. 김정선생 일가와 후손들이 모두 이곳에 묻혔나보다. 최근에 봉분을 다시하고 떼를 다시 입힌 것 같기도 했다. 사후지만 영의정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인지 무덤도 크다.






 무덤의 주인에 대한 일화를 적은 비석은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한자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슬프다. ㅠ 뭐, 대충 청나라의 침입에 비분강개해서 의병을 일으켰다는... 뭐 그런 내용인 거 같다.






 묘 옆에는 충암김정선생부인정려문도 자리하고 있다. 충암 김정 선생의 부인인 은진송씨의 정려문이다. 송씨 부인은 상청당 송유의 현손녀로 진사 여익의 딸이다.  1521년 김정선생이 제주에서 사사되자 같이 세상을 떠나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있어 자결을 못하고 효도로 부모를 공향하였다. 이후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8일 동안 전폐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효도스러운 마음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받게 하기 위하여 1803년 정려되었다. 당시의 효와 정절의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