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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영화처럼

어나더 어스 -또다른 내가 나를 찾아왔다

영화 어나더 어스

 

 다른 내가 나를 찾아왔다

 

 <어나더 어스>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 일 수 있는 가해자의 죄책감과 피해자의 불행을 또 다른 지구라는 다소 엮어내기 힘들 것 같은 소재로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나더 어스> 느린 템포와 하늘의 지구 등으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로다와 세 명의 가족을 잃은 존은 서로의 존재가 상처일 수밖에 없다. 만약 존이 없었다면 로다는 동료 청소부처럼 자신을 용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자멸했을 거다. 로다가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존과 로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로다가 존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죄책감과 연민에 기인한 것이 더 클 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진실을 밝힌 건가.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다. 존의 세상으로 나오게 한 것도 진실을 밝힌 것도 결국은 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함이었다. 존이 로다가 제2의 지구로 향하는 프로젝트에 응모했다고 하자 이야기 하는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에 로다가 반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바로 동굴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하늘 위의 지구가 그녀에게는 이 어둠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빛으로 보였을 거다. 존이 그 행성이 어떤지 어떻게 하냐고 가지 말라고 잡지만 로다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간다고 했다. 로라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지구에서의 삶은 예상되어지는 미래다. 자신은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그것을 떨쳐내지 못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지구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거울에 비친 듯 그대로 존재하는 제2의 지구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 곳엔 또 다른 내가 있다. 나와 똑같이 살아오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나. 그건 무얼 의미할까. 이 설정 자체가 사람을 몽롱하게 만든다. 도대체 또 다른 나를 만나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존이 두통을 앓고 있을 때 로다가 해주는 러시아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은가. 또 다른 지구는 허상일 지도 모른다. 삶의 돌파구를 위한 모두의 염원이 담긴 허상. 지루한 일상을 탈피할 놀라운 이야기거리로서의 허상.  

 

 

 

 <어나더 어스>는 존이 가족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제2의 지구로 떠나고 로다는 그의 희망찬 표정에 자신이 다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양 웃으며 끝난다. 마지막 장면은 로다 앞에 로다가 나타나면서 끝나긴 한다만. 로다는 로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제2의 지구에서 온 로다에게 로다는 물어 볼 말이 분명히 있다. 존의 가족이 살아 있는냐고. 깨진 거울 이론이 맞냐고. 아니면 그대로냐고. 로다는 로다를 보고 싶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냥 존의 가족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제 제대로 된 삶을 막 살아가려고 할 때였다. 그런데 진실을 바로 마주해야 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로다는 순간 자신을 보고 뒤돌아 섰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보았다 뒤돌아 갈 수 없다. 애초에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제2의 지구가 있음을 알게 된 이후에 그 지구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것처럼 로다는 자신을 모른 척 할 수 없다.

 

 근데 만약 존이 제 2의 지구로 갔는데 가족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하지? 그곳에도 존이 있다. 아내와 자식은 하나씩인데 남편은 2명이다. 물론 존은 완전히 같은 사람이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건가?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나? 단지 내 밖에 존재하는 내 자신이기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나? 문제는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