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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투어


 원도심은 신도심과 대비되는 용어로 과거에 도심 역할을 했던 곳을 의미한다. 원도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퇴색된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원도심은 그 역할을 다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많은 원도심들이 개발과 문화를 통한 변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원도심이 이미 가지고 있는 역사성 또한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대전 원도심은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개통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전 원도심의 역사는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군산과 대구에서는 20세기초의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여행 루트가 큰 관심과 인기를 누리면서 여행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대전 원도심도 이들 도시 못지 않게 많은 근대문화유산들을 가지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근대 건축물만 해도 스무개 남짓된다. 게다가 골목을 누비다보면 오래된 건물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들의 역사성을 밝히고 발굴해나간다면 더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낼 수도 있어보인다. 이제는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문화유산들을 엮어서 알리는 일이지 않을까? 구슬로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은가. 

 대전 원도심에 근대 건축물이 몇 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본격적인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투어에 나서기 전 꼼꼼한 조사를 했더니 정말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가까운 거리에 밀집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대전원도심 근대문화유산 투어는 보통 대전역에서 출발하는 투어가 될 수 있지만 대전 원도심의 기본적인 정보를 얻고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옛 충남도청의 전시관에서 공부(?)를 한 후에 출발해도 좋다. 아래 지도를 두고 마음대로 빨간 점을 이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있는데다가 그것들이 모두 가까운 곳에 근접해 있는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대전 원도심으로 근대문화유산 투어를 떠났으면 좋겠다.





 철도청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3호)


 대전역 동광장이 아닌 서쪽으로 나가면 주차장 사이에 철도청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 3호가 있다. 주차장 가운데 긴 나무 건물로 자리하고 있어서 대전역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로 눈에 띈다. 1956년 철도청(현재 한국철도공사)이 필요한 물건이나 재료를 보관하던 창고로 세워졌다. 지난 2005년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 168호로 지정되었다. 50년대에 건물이 세워질 때는 '조달본부 대전주재'로 불리었으나 곧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로 바뀌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무 트러스 지붕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건물 내부 가운데에 기둥이 없어서 창고로서 공간을 활용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외부 마감재로 목재 널판지를 사용해서 통풍성이 뛰어나 적재해 두었던 자재나 물건들이 상하지 않게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창고가 3호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1,2호도 있었기 때문이다. 4호도 있었던 것 같다. 주변으로 주차장이 조성되면서 문화재로 지정된 3호 창고를 빼고는 모두 철거되었다고 한다.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 3호는 근대 건축물 중에 목재 건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더 소중한 문화재다.




주소 : 대전 동구 소제동 291-6

소유자 : 한국철도공사

문의 : 대전역 역무과 042-259-2429


▼ 대전전통나래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모습(좌)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전국 최대의 철도관사촌이었는데 현재 40채 정도의 관사건물이 남아있다. 대부분 경부선 철도공사가 진행됐던 1930년대 일본인 철도노동자들을 위해 일본식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이 독립 후 철도청 간부들이 숙소로 이용하면서 일본 가옥의 특징이었던 다다미방 등을 온돌방으로 바꾸면서 내부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오랜시간 낙후한 지역 남아있었는데 현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제관사42호]로 불리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도 마련되었고 골목 골목에 벽화도 그려졌다. 대전전통나래관에서는 전통문화를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좀 더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응원하게 되는 곳이다. 하지만 골목골목 오래된 공간을 돌아다니고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만한 공간도 없을 것이다.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현 다비치 안경)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은 현재는 다비치 안경 대전역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처럼 비록 은행 이름은 바뀌어도 그대로 은행 건물로 쓰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의 자본으로 운영된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독립 후 산업은행 대전지점이 되었다. 그 후 1997년까지 산업은행이 사용하다가 현재는 등록문화재 제19호로 다비치 안경이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침략하기 위해서 세운 은행이다. 외관을 보았을 때 당연히 2층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1937년 천장이 높은 1층 건물로 세워져서 50년간 이어졌다. 1989년 효율적인 건물 활용을 위해 2개 층으로 나뉘어졌다. 만주와 독일에서 들여온 화강암으로 기단을 쌓았고 건물의 상단 부분과 외벽에는 테라코타를 이용해서 미적 요소를 고려했다. 건물의 외관이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관청 건물로서 르네상스풍의 근엄하고 견고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유리창이 큰 것은 특징적이다.




주소 : 대전 동구 중앙로 198

소유주 : (주) 다비치안경체인

전화번호 : 042-224-6100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 (현재 신한은행 대전역 금융센터)

 대전역 앞 북적거리는 시장 앞에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신한은행 대전역 금융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조흥은행 대전지점은 1912년 6월 17일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상업은행인 한성은행 대전지점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1943년 10월 1일 조흥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1957년 현재의 건물이 세워졌다. 2층 건물로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장식없이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봐도 꽤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독립 후에도 당시의 많은 은행과 관공서 건물이 일제의 제국주의 영향으로 권위적이고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차별화된다. 지난 2002년 5월 31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 20호로 지정되었다.




주소 : 대전 동구 대전로 783

소유주 : 신한은행

전화번호 : 042-253-5071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은 대전역에서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나오는데 현재는 건물 내에 장수타일 전문점, 동성보일러, 동국대학교동창회 등이 운영되고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우리나라에 설립한 국책회사로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이라는 법률까지 만들어서 한국과 일본 이중국적으로 되어있었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독점하고 착취하는 역할을 했는데 특히 조선식산은행과 함께 우리나라 농민들을 수탈하는데 앞장섰다.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은 1922년 세워져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등록문화제 제98호로 지정되어있다. 독립 후에는 체신청(현 우정사업본부)과 대전 전신전화국으로 이용되었다. 1984년에는 신한철강이, 1997년에는 신도철강주식회사가 매입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로 지붕 위에 반원형의 캐노피가 인상적이다. 정면 2층 위쪽의 페디먼트를 중심으로 양쪽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위쪽 처마선 아래에는 수평 돌림띠가 둘러져 있으며 창틀 상인방은 정교한 부조로 되어있다. 





주소 : 대전 동구 대전로 735

소유주 : 김석진

전화번호 : 042-272-8003 (장수타일 전문점)





 한전대전보급소


 한전대전보급소는 아쉽게도 담장이 있고 그 안으로는 접근이 안되서 담장 너머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주변 주택들도 재개발을 기다리는 듯 폐허 상태였다. 1930년 대전 최초의 근대 산업시설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 99호로 지정되어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2층 높이의 발전소 건물과 3층 규모의 업무시설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솟을 지붕을 가지고 있으며 발전소와 일반 업무 시설을 하나로 연결시켜 산업시설로서의 효율을 높이려고 했다. 내부 천장은 기계를 이동할 수 있는 철제 빔이 설치되어있다고 하며 건축적인 완성도가 높은 건물로 평가받는다. 높은 건물로 인해 당연히 2층 건물로 보이지만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처럼 1층 건물로 지어져서 현재는 2층으로 나누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시설이기에 천장이 높아야했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2005년까지 한전 창고로 사용되다가 문화재로서 보전하기 위해 증축한 부분을 없애고 전력연구원 연구시설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휴일에 찾아갔기 때문에 텅 비어있어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지붕 위에 만들어진 솟을 지붕은 건물 내 열기를 밖으로 빼내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변전소길 22

소유주 : 한국전력공사





 대전 대흥동 뾰족집


 대흥동 뾰족집은 2008년 등록문화재 제 377호로 지정된 후 2010년 대흥1구역이 재개발되면서 무단 철거되었다. 그 후 지금의 위치에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1929년 당시 대전 철도 국장의 관사로 건립되었다. 외관에서부터 독특함을 가지고 있어서 눈에 띄는 건물이다. 대흥동 뾰족집은 일양 절충식 가옥이라는 정식명칭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뿔형의 독특한 지붕 때문에 사람들에게 뾰족집으로 불리었기에 지금은 그 이름을 아예 대흥동 뾰족집으로 바꾸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우뚝 솟은 맞배지붕을 가지고 있지만 거실의 지붕은 원뿔형으로 솟아 있어 중세의 성을 축소해 좋은 모습이다. 과거의 명칭이 알려주듯이 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기본적인 내부 공간은 1920년대 일본 가옥의 특징을 가졌는데 세부적인 데코레이션은 중세 서양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2층에는 다다미방과 도코노마가 있으며 철도 국장의 관사가 아닐 때는 한때 군인 관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주소 : 대전 대흥동 37-5번지





 대한여중강당 (현 대전광역시교육청 대전갤러리)


 대한여중강당은 지붕의 유러한 곡선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현재는 대전광역시교육청 대전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1937년 지어졌으며 문화재자료 46호로 지정되어있다. 초가지붕을 연상하게 하는 아르누보풍의 부드러운 지붕선이 특징이다. 지붕처마 아래는 고전주의적인 수법인 치형쌓기로 벽돌을 쌓아 처마선을 받쳐주고 있어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측면은 모서리 벽돌쌓기 수법으로 멋을 살렸으며, 네모진 창을 넓게 설치하여 지붕선과 나란히 조화를 이루며 환기를 원활히 하고 있다. 지붕은 마름모형의 망형 스레트를 파도치는 모습으로 이어서 생동감 있게 연출하였다. 앞쪽과 뒤쪽 벽에 넓은 창을 만들어서 자연채광이 좋다. 대전평생학습관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갤러리로서의 대관 역시 대전평생학습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변에 인상적인 예술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맛집들도 많고,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대흥동성당과 대전창작센터도 바로 앞에 있는 등 위치가 좋다.





주소 : 대전 중구 대흥동 418-1

소유주 : 대전광역시교육청

전화번호042-220-0510 (대전평생학습관)





 대전 대흥동성당


 대전 대흥동성당은 2달전인 2014년 10월 30일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되었다. 대흥동성당은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성당건축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종탑과 거대한 성당임에도 내부에 기둥이 없이 지어져서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뻥 뚫린 넓은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측면의 창은 십자가를 향하고 있어서 햇살이 내리째는 날에는 미사를 보는 신자들의 눈을 부시지 않게 하고 십자가 빛나게 만드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성당 정면에도 창문이 많아서 채광이 참 좋았다.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와 마주하고 있어 대흥동성당을 둘러보고 길 건너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다.





주소 : 대전 중구 대흥동 189

전화번호 : 042-252-9611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은 1958년 [농산물검사소 대전지소]로 세워졌다. 2008년부터는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건축물의 역사성이 인정되어서 등록문화재 제 100호로 지정되어있다. 지난 1999년에는 [대전시 좋은 건축물 40선]에 꼽히기도 했다. 대전에서 처음으로 건축사사무소 문을 연 배한구가 설계한 건물이다. 서양의 기능주의 건축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중반 건축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멘트물씻기의 공법으로 콘크리트조를 연상시키는 기단부를 만들고 지붕 아래로는 함석을 씌운 콘크리트의 수평띠를 둘러서 안정감 있는 건물의 외관이 만들어졌다. 건물의 각 층은 계단실을 중심으로 기둥 없는 2~3개 공간이 기억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동선을 통해 기능성을 극대화 한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건물 입면에는 사각 프레임을 각각 설치하였고 정면에는 프레임 안에 수직루버를 설치하여 태양광을 조절하고 있다. 우측입면 역시 프레임을 설치하여 입체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태양광 조절을 하고 있으며 특히 우측 입면 프레임은 황금비율의 구성을 하고 있어 건축가의 미적 의지를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161

전화번호 : 042-255-4700





 한밭복싱체육관


 한밭복싱체육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권투체육관이다. 높은 빌딩들 사이, 좁은 골목 속에 단층짜리 건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밭복싱체육관은 1960년대 초 개관해서 세계 챔피언이었던 염동균, 아시아 복싱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오영세 등 지금까지 15,000명이 넘는 이들이 복싱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기사를 찾아보니 몇년 전 사라질 위기를 겪었던 것 같은데 그 문제는 잘 해결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곳은 사실 문화재로 등록되거나 한 것이 아니기에 보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 해보인다. 어떻게 활용해야할까? 대전원도심 근대문화유산 투어가 활성화 된다면 한밭복싱체육관에서 30분에서 1시간 복싱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그 안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운영시간평일 오후 1시 ~ 오후 10시 30분. 일요일과 공휴일 휴관.

주소 : 대전 중구 은행동 142-4

전화번호 : 042-226-2180





 옛 충남도청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 및 도지사실 전시관)


 옛 충청남도청은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과 도지사실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가 되어서도 충청도의 중심은 공주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대전에 충남도청이 생기고 철도가 놓이면서 대전은 큰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은 대전광역시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충청도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충남도청은 오랫동안 대전에 있었고 충남도청이 이전된 지는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무려 80년간 충남도청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옛 충남도청은 1932년 지어져서 독립 후에는 미군정청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한국 전쟁때는 잠시동안 정부 중앙청 건물로 이용되면서 육국본부와 미군 전방지휘사령부가 자리잡기도 했다. 옛 충남도청 건물은 물리적 세월만으로 문화재가 아니라 이 건물이 거쳐온 역사 또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어보이는 대목이다. 건물 외벽에 한국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의 길이가 90미터에 이르며 영화 [변호인]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옛 목동성당 (현재 거룩한말씀의 수녀회 성당)


 옛 목동성당은 1921년에 건립된 대전 최초의 성당이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12명의 사제가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선교사와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곳이기기도 하다. 새하얀 작은 성당은 아름답게만 보이는데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슬프기만 하다. 전체 외형은 단순하게 처리된 중세 고딕양식을 적용하였고, 정면 중앙부의 종탑과 3랑으로 구성된 장방형 평면 등은 성당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부구조는 기둥들에 의한 수직적 분리와 목재 리브의 수평적 연속성이 조화를 이루어 카톨릭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제단부에는 세 개의 아치를 두어 다른 공간과 구별되는 위계성과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현관 창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프랑스에서, 내부 벽면의 '십자가의 길' 부조와 첨탑의 십자가는 독일에서 각각 수입한 것으로, 모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68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으로 양도되었기에 이미 현재의 수녀회 성당이 된 지도 40년이 넘은 셈이다.




 대흥동 성당처럼 일반 성당이 아닌 수녀회 성당이다보니 내부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내부에 들어가보는 것은 생각치도 않았는데 성당 외부 사진을 찍고 있는 날 발견한 수녀님이 내부도 예쁘니까 들어가보라고 문을 열어주셨다. 성당의 내부도 아기자기하니 정말 예뻤다. 바닥이 마루로 되어있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했는데 나무 기둥과 나무로 이루어진 아치들이 예쁘다. 관리가 굉장히 잘 되고 있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도 외관에 흰 페인트를 덧칠하고 있었다.





 옛 대전형무소 망루와 우물


 대전형무소는 1919년 5월 일제에 의해서 독립운동가를 가두기 위해 처음 지어졌다. 현재는 60년대 말 도심이 확장하면서 형무소를 이전에서 망루 하나와 우물만 남아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가 1939년 규모가 확장되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인민군에 의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기도 했다. 당시 학살 된 인원이 수천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물에서 건진 학살된 이들의 사진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남아있는 우물이 그때의 그 우물이었던 걸까?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아났다. 형무소가 이전되기 전에는 화가 이응로가 수감되기도 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삼성초등학교 구교사 (현 한밭 박물관)


 2층 규모의 붉은 치장쌓기한 건물로 일제가 1911년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한 뒤 대전에 처음 생긴 초등학교이다. 현재 문화재자료 제50호로 한밭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부선 철도 부설공사로 인해 일본인의 이주가 늘자 일본인 아동을 교육하는 소학교의 필요성에 의해 건립되었다. 당시 유리를 많이 사용하던 추세에 맞춰 전후면을 비롯한 양측면에 유리창을 많이 넣었고 현관은 충남도청처럼 귀빈 승용차가 현과 입구에 차를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입면에는 원형창을 설치, 내부 채광을 도입함과 동시에 주변의 직사각형 수직창과 대조를 이루게 하여 미적인 측면을 배려하였다.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앞쪽에 많은 유적들이 놓여 있었다. 와, 국보급 유물도 있는 거야 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복제품들이다. 그 중에 쓰러져 있는 황국신민서사지주만은 진짜였다. 황국신민서사지주는 1940년 황국신민화 정책이 절정에 달하고 있을 당시 제작된 것으로 1995년 9월 대전광역시 산내초등학교 교정에서 발견되었으며 일제의 황국 신민화 정책이 우리에게 얼마나 잔악 했었나를 일깨워 주기 위해 1997년 4월 4일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강화하기 위해 일상생활 중에 '서사(맹세하는 말)을 외울 것을 강요하였다.




 대전 원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여행 루트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될 것 같다. 우선 대전역과 가깝다는 뛰어난 접근성으로 현재 대구와 군산 등으로 몰리는 젊은 여행자들도 기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어보인다. 게다가 각각의 건축물의 근접성이 좋다. 물론 몇 곳은 꽤 떨어져 있는데 이런 곳은 제외하거나 편리한 대중교통을 제시해주면 될 것 같다. 건축물들이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지 않고 도심에 있어 전통시장, 로데오 거리에 인접해 있다는 것도 여행자들에게 큰 장점이다. 이미 근대문화유산으로 성공적인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도시들이 있다. 그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한다면 좀 더 손 쉽게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후발주자의 장점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뭔가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