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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크리스토퍼빈의 죽음 - 욕심은 마음을 힘들게 한다

크리스토퍼빈의 죽음

 욕심은 마음을 힘들게 한다

 

 <크리스토퍼 빈의 죽음>은 크리스토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크리스토퍼 빈이라는 화가가 진짜 있고, 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공연정보를 많이 알 수록 재미와 집중도는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지 포스터만 보고 갔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고 와서 크리스토퍼 빈을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화가는 나오지 않았다. 영문으로 구글링하니 크리스토퍼 빈 닷컴이 있다. 커피회사다.  1933년에 만들어진 <크리스토퍼 빈>이라는 영화도 있더군. 정녕 크리스토퍼 빈이라는 화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이 극에서 크리스토퍼 빈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어떤 화가여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극은 욕심에 대한 이야기니까.

 

 이 극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캐릭터는 헤게트다. 의사인 그는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외상으로 진료를 해 주며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극이 진행되면서 그가 바뀌어가는 모습은 기괴하거나 부조리하지 않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우리네는 헤게트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처한 상황에서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터이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그들에게 닥친 불행은 크리스토퍼빈의 그림 때문이다. 그들이 화가의 작품이 고가라는 것을 알기 전과 달라진 것은 1500달러의 돈이 생겼다는 것과 좌절감이다. 물질적인 면만 본다면 분명 이익을 보았다. 단지 빈의 그림이 수백만달러짜리 였기에 그의 그림으로 생길 수 있는 돈을 놓쳤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은 그것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로 인해 그들은 기뻐했고 분노했고 좌절한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그의 그림이 값비싸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일들이 생겨난다. 인간의 욕심은 불현듯 어떤 기회를 만나서 커진다. 애초에 헤게트는 수백만달러의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단 돈 몇십달러의 돈도 맏지 않기 일수였으니까. 수십억의 복권당첨자가 이전과 같은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헤게트는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이 시점을 회상하며 수백만달러를 가질 수 있을 있었는데 하는 생각때문에 답답할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고 해도 자신이 추하게 면했던 그 순간 때문에 자존감을 지킬 수도 없다.

 

 

 헤케트 외에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크리스토퍼 빈의 그림이 부상하면서 그를 둘러싼 나방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예술은 뭘까. 일상을 사치스럽게 재현하는 일인가? 예술은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뛰어난 것인가? 한달에 이백만원정도 버는 화가가 되어 평범한 작품을 남기는 것과 평생 이백만원정도 벌어 밥굶기를 반복하는 화가이지만 죽은 후 크리스토퍼빈처럼 인정받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을까? 생전에 행복한 것이 백만배 나을 것 같다. 뭐...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후자겠지만 죽은면 아무것도 모른다. 무슨 소용인가. 자, 그럼 이 극의 교훈은 살아서 행복하자 인가? ㅋ 그래 사랑하면 손 잡고 도망가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린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면 포기한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다시 그린다. 아, 나 지금 뭐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