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우리가 만나는 계절

 여름, 가을, 겨울, 봄은 피할 수 없다.

 

 

 연극 우리가 만나는 계절은 옴니버스 공연으로 여름 '스노우드롭', 가을 '유치뽕짝', 겨울 '당신은 어디 있나요'로 구성되어 있다. 옴니버스 연극의 경우 내용의 분절성 때문에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단편소설은 단편소설집을 출간하고 단편영화는 단편영화제에서 발표되어진다. 반면 연극은 단편을 모아 공연되어지는 일이 드물다.그래서 이런 옴니버스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더욱 뜻 깊은 일인 것 같다. 세 편의 극은 사실 연작선에 있거나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공간적 배경과 흘러가는 계절을 놓아 두고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첫번째 이야기 스노우드롭은 제목에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극은 스노우드롭이 가진 꽃말인 절망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 위안을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남편이 집을 나가버린 여자, 가출했다가 유부남의 아기를 가져 임신 5개월이 되어 돌아온 딸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디테일의 문제가 있었다. 할머니가 사용하는 모종삽은 동네 분위기에 맞게 후지고 낡았으며 적어도 흙은 묻어있어야 하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새거였다. 우리가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보아왔던 갈등을 모아놓고 해결방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진부한 모습을 보인다. 극의 마지막 조명은 스노우드롭을 비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무대 앞에 할머니가 심어놓은 화려한 화단이 있어서 상징성과 시각적 돋보임이 떨어진다.

 

두번째 이야기인 유치뽕짝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별이었던 잊혀진 가수와 별이 될 수 있을 지 확신 할 수 없는 어린 피겨스케이팅 선수 중 누가 나을까? 이 이야기 흐름의 로맨틱 코메디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꿈이라는 가슴벅찬 것을 계속 반복해 부르짖으니까. 이 이야기의 안타까운 장면은 가수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인 당신은 어디 있나요는 결정적으로 이야기의 당위성이 결여되어 있다. 공연 홍보물에 적힌 '셋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오늘 죽을 것이고 한 명은 살아 남을 것이다'가 문제인 듯하다. 작가는 이것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럴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죽는 남자가 왜 죽는 지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 술에 취해 무단횡단을 해서 갑자기 죽는다는 전개는 무리가 있다. 첫번째 이야기가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에 반해 이 이야기는 세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남은 남자가 다시 소설을 쓴다는 내용은 과연 희망적일까? 그는 웃고 있지만 그의 부인과 아이는 그가 돈을 보내주지 못해 곧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희망의 뒷모습이다. 그 아이가 잘 커주면 다행이지만 나중에 그에게 당신때문에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두렵다. 이건 첫번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 딸이 고집을 피워서 나은 아이는 그녀의 생각처럼 잘 클까?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나를 왜 낳았냐고 그녀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우리네가 겪는 계절은 그렇게 무덥고 그렇게 차갑다.

 

 

 옴니버스 공연 우리가 만나는 계절은 우리 이웃이 계절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만 이 이야기의 내용들이라는 것이 칠팔십년대에 나올 법한 신파조의 진부한 이야기다. 분명 그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극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기에는 소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러기 아빠와 치매 할머니를 제외하곤 일상에서 그들을 볼 수 있을까? 계절을 표현하기 위한 나무가지의 교체가 인상적이었는데 결국 이 극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희망을 위해서 마지막 계절인 봄에 꽃이 핀 나무가지를 사용하는 건 어땠을까? 진부한 사용이지만 관객이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결국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특별한 이야기였지만 너무 많이 접해 오던 이야기였기에 특별해 지지 못한 이야기가 되어서 안타깝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