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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대한민국 여행

[아산 여행] 가장 오래된 민가 맹씨행단 (맹사성 고택)


며칠 전 아산 여행에서 찾아가지 못했던 맹사성 고택과 공세리 성당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아서 결국 다시 아산 여행길에 나섰다. 맹사성 고택은 거대한 은행나무 두그루에서 노랗게 물든 가을에 가야 가장 예쁘다지만 며칠 전 현충사에서 길을 예쁘게 수놓은 단풍들만으로도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기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갔다. 하지만 어제 겨울비가 내린 후여서 날씨는 굉장히 추웠고 바닥에 조금 남아있던 은행잎은 갈색으로 빛바래있었다. 이왕 겨울에 맹사성 고택을 찾는다면 눈이 소복히 쌓였을 때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맹사성 고택은 맹씨행단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행단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유학을 가르치던 곳을 의미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기에 그런 행단이라 단어가 유교교육장의 사용되었다. 얼마전 공자의 도시 취푸(곡부) 여행을 하고 와서인지 공자와 유교가 왠지 가깝게 느껴진다.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서니 고양이가 앞장서 맹씨행단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종종 뒤돌아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보기도 한다. 맹씨행단은 고택, 세덕사, 구괴정, 두그루의 은행나무로 이루어져있다.  구괴정에는 세종 때 황희, 맹사성, 권진 이렇게 삼정승이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아있다. 큰 나무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입구에 있는 나무는 회화나무로 32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교육의 장소와 궁에 심어져서 학문을 방해하는 것들을 쫓아낸다.



맹사성은 고려말과 조선초의 재상으로 우의정까지 지내고 문화분야에 기여하였다. 우리에게는 청렴의 대명사로 알려져있다. 한 나라의 정승임에도 그의 집은 작았고 심지어 비가 오면 물이 떨어지는 곳도 있어서 그릇을 받쳐놓았다고 한다. 한 당상관이 그 모습을 모고는 어찌 이러한 집에 사냐고 묻자 이런 집조차 없는 백성들도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에게 알려진 또다른 청백리는 황희정승이다. 하지만 실제로 황희 정승은 정치적 능력은 뛰어났으나 부정부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걸 왕 또한 대수롭지 않게 어겼다고 한다. 당시의 윤리와 지금의 윤리 기준이 다른 것 같다. 황희가 살았다는 집들을 보면 그와 관련해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민망하게 으리으리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맹사성에 얽힌 이야기는 조금 과장 된 면이 있을 지 모르지만 정말 인 것 같다. 그의 소박한 집이 6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맹사성 고택에는 아직도 맹사성의 후손이 살고 있다. 물론 옛날 집에 살고 있는 건 아니고 그 옆에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는 것이다. 주 출입로가 바로 그 집 안마당을 지나가게 되어있다. 문을 지나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 많은 은행들. 600년 넘은 두그루의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을 말려놓으셨다. 고택 쪽으로 향하다 은행나무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은행나무 앞에서 은행을 쓸어담고 계셨다. 아직도 은행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다. 한해에 은행에 몇개나 떨어질까 궁금해진다. 할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하니 얼굴이 환하게 꽃피시며 웃으신다. 나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어디서 왔어요?

  일산이요.

  혼자?

  네.

  헐.

ㅋㅋㅋ 할아버지가 허~ 라고 했을까? 난 분명 '헐'이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맹씨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고택으로 향했다.



600년전 맹사성이 심었다는 은행나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 때문에 맹씨행단을 찾는다. 가을에 이 거대한 나무가 노랗게 물들은 모습이 맹사성 고택과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꼭 가을에 그 모습을 놓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2014년 10월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세덕사에는 고려말 두문동 72현인 맹유, 맹희도, 맹사성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재밌는 것은 맹사성 고택이 원래는 최영장군 자택이었다는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 우리에게 충절의 대명사였던 최영이 이 집에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최영장군 집안에서는 평소 맹사성의 됨됨이를 좋게 보고 있었고 결국 최영 장군의 손녀와 결혼을 시킨다. 그 후 이 집을 맹사성이 이곳에 살게 된 것이다. 2014년에 정도전에 대한 드라마가 2편이나 방영될 예정이어서 그 드라마 속에서 최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집의 역사는 600년이 넘은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에 있는 민간가옥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맹사성 고택은 아담하면서도 예쁘게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양으로 생긴 집을 다른 곳에서 본 기억이 없다. 결국은 고려시대의 형태를 가진 것일테니 생소한 것일까?  이 집은 1330년 최영의 부친 최원직이 지어졌다. 조선이 세워지면서 최영 장군의 죽고 이 집은 쓸쓸하게 텅 비었다고 한다. 정란을 피해 맹사성 가족이 이곳으로 내려왔고 결국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



노란 은행나무를 보지 못해서인지 맹씨행단을 나오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동네를 배회하게 되었는데 어떤 집 앞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왠지 들어가보고 싶다. ㅋ 이 동네가 맹씨 집성촌인 듯 하다. 그 집 대문에서 맹씨 성을 가진 이름이 적혀있었다. 마을 뒤쪽 산은 설화산으로 설화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다. 설화산은 441미터로 높지 않은 산이어서 가볍게 오르기에 좋은 곳이다. 맹씨행단에 왔다가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좋을 것 같다.